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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김삿갓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김삿갓 유적지와 문학관 .
등록날짜 [ 2013년09월17일 08시21분 ]

 

 

 

 

김삿갓은 전국을 떠돌며 자신의 삶과 민초들의 애환을 시로 대변하면서

조선 시대의 문학에 큰 틀을 마련한 시인이다.

 

김삿갓을 자세하게 알게 되는 여행으로

김삿갓 문학관과 시비공원이 있고 묘지가 있는 곳까지 돌아보고 온 시간이었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김삿갓이란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김삿갓에 대해 무얼 알고 있느냐 물으면

선뜻 대답할 수 있는 말은 삿갓 쓴 방랑시인이 대부분일 것이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을 테니...

 

아름다운 경치로도 한몫하는 강원도 영월에 가면

그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주고, 그가 왜 유명한지 알게 된다.

김삿갓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어 좋았던 곳을  

사진으로 담아온 풍경과 함께 소개한다.

 

 

 

 

 


 

 

김병연(김삿갓 1807~1863)

조선 후기 시인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성심(性深), 호 난고(蘭皐)이다.

속칭 김삿갓 혹은 김립(金笠)이라고도 부른다. 아버지는 김안근(金安根)이며 경기도 양주에서 출생하였다.

1811년(순조 11) 홍경래의 난 때 선천부사(宣川府使)로 있던 조부 김익순(金益淳)이 홍경래에게 항복하였기 때문에

 연좌제의 의해 집안이 망하였다. 당시 6세였던 그는 하인 김성수(金聖洙)의 구원을 받아 형 병하(炳河)와 함께

 황해도 곡산(谷山)으로 피신하여 숨어 지냈다.

후에 사면을 받고 과거에 응시하여 김익순의 행위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답을 적어 급제하였다.

그러나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벼슬을 버리고 20세 무렵부터 방랑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스스로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생각하고 항상 큰 삿갓을 쓰고 다녀 김삿갓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전국을 방랑하면서 각지에 즉흥시를 남겼는데

그 시 중에는 권력자와 부자를 풍자하고 조롱한 것이 많아 민중시인으로도 불린다.

아들 익균(翼均)이 여러 차례 귀가를 권유했으나 계속 방랑하다가 전라도 동복(同福:전남 화순)에서 객사하였다.

 유해는 영월군 태백산 기슭에 있으며, 1978년 그의 후손들이 광주 무등산에 시비를 세우고,

1987년에는 영월에 시비가 세워졌다.

 



 

 







 

시비공원 입구에 들어서자

정암 박영국 선생의 공적비가 서 있었다.

 

정암 박영국 선생은 김삿갓이 이곳까지 찾아온 내력과

그가 살던 집터와 묘를 찾고 유시를 수집하여 책자를 발간하였고

김삿갓 유적의 발굴과 보전을 위해 평생을 바친 분이다.

 

 


 

 천천히 시비 공원을 걸으며

김삿갓님의 시가 있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하였다.

 

 


 

여기저기 시비들이 서 있고

김삿갓의 마음을 시로 표현한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喪配自輓 상배자만
遇何晩也別何催 未卜其欣只卜哀 우하만야별하최 미복기흔지복애
祭酒惟餘醮日釀 襲衣仍用嫁時裁 제주유여초일양 습의잉용가시재
窓前舊種少桃發 簾外新巢雙燕來 창전구종소도발 염외신소쌍연래
賢否卽從妻母問 其言吾女德兼才 현부즉종처모문 기언오녀덕병재

 

아내를 장사지내고

 

만나기는 왜 그리 늦은데다 헤어지기는 왜 그리 빠른지
기쁨을 맛보기 전에 슬픔부터 맛보았네.
제삿술은 아직도 초례 때 빚은 것이 남았고
염습 옷은 시집 올 때 지은 옷 그대로 썼네.
창 앞에 심은 복숭아나무엔 꽃이 피었고
주렴 밖 새 둥지엔 제비 한 쌍이 날아왔는데
그대 심성도 알지 못해 장모님께 물으니
내 딸은 재덕을 겸비했다고 말씀하시네.

 

 

*시집온 지 얼마 안 되는 아내의 상을 당한 남편을 대신하여 지은 시이며,
아내가 떠난 집에 제비가 찾아오고 복숭아 꽃이 피니, 아내를 그리는 정이 더욱 간절해짐을 표현한 시다.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고

마음을 가다듬고 돌아보았던 많은 시비가 있는 공원이었다.

 

 


 

허연 머리 너 김진사 아니더냐

나도 청춘에는 옥인과 같았더라

주량은 점점 늘어 가는데 돈은 떨어지고

세상일 겨우 알만한데 어느새 백발이 되었네.

 

위 시는 샘물을 떠 마시다

문득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읊은 시라고 한다.

 

 

 


 

 

自詠 자영
寒松孤店裡 高臥別區人 한송고점리 고와별구인
近峽雲同樂 臨溪鳥與隣 근협운동락 임계조여린
치銖寧荒志 詩酒自娛身 치수영황지 시주자오신
得月卽帶憶 悠悠甘夢頻 득월즉대억 유유감몽빈

 

스스로 읊다

 

겨울 소나무 외로운 주막에
한가롭게 누웠으니 별 세상 사람일세.
산골짝 가까이 구름과 같이 노닐고
개울가에서 산새와 이웃하네.
하찮은 세상 일로 어찌 내 뜻을 거칠게 하랴.
시와 술로써 내 몸을 즐겁게 하리라.
달이 뜨면 옛 생각도 하며
유유히 단꿈을 자주 꾸리라.

 

*세속에 물들지 않고 시와 술로 근심을 잊으며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풍류객의 모습을 그린 시다.

 

 


 

還甲宴 환갑연
彼坐老人不似人 疑是天上降眞仙 피좌노인불사인 의시천상강진선
其中七子皆爲盜 偸得碧桃獻壽筵 기중칠자개위도 투득벽도헌수연

 

환갑연

 

저기 앉은 저 노인네 사람 같지 아니하고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인가 하노라

슬하에 일곱 자식이 모두 도둑놈인 것이

하늘에서 복숭아를 훔쳐다가 잔치를 빛내누나.

 

 

*환갑 잔칫집에 들린 김삿갓이 첫 구절을 읊자 자식들이 모두 화를 내다가 둘째 구절을 읊자 모두 좋아하였다.
셋째 구절을 읊자 다시 화를 냈는데 넷째 구절을 읊자 역시 모두 좋아하였다.
*서왕모의 선도 복숭아는 천 년에 한번 열리는 복숭아로 이것을 먹으면 장수하였다.

 

 

 


 

 

소슬바람에 나뭇잎이 우수수 소리 없이 떨어지니

산골짜기에도 쌓이고

시냇물 위에도 떨어지누나

새처럼 아래위를 훨훨 날다가는 바람결 따라

저마다 동과 서로 흩어지네

 

본디 잎새야 푸르건만 누렇게 병들어

푸른빛 시샘하는 서리를 맞고

가을비에 더욱 애처롭구나

두견새야 너는 어찌 그다지도 정이 박약하여

지는 꽃만 슬퍼하고 낙엽에는 안 우느냐!

 

 

위 시는 가을에 어울리는 시로

낙엽이 바람에 휩쓸려 다니는 것을 보고

 가을의 쓸쓸함을 읊은 시다.

 

 

 


 

 

그의 뒷모습이 왜 쓸쓸해 보이던지...

 

그의 시 스스로 탄식한다는 "자탄(自嘆)"이란 시가 생각났다

 

슬프다 천지간 남자들이여

내 평생을 알아줄 자가 누가 있으랴

부평초 물결 따라 삼천리 자취가 어지럽고

거문고와 책으로 보낸 사십 년도 모두가 헛것일세

청운은 힘으로 이루기 어려워 바라지 않았거니와

백발도 정한 이치이니 슬퍼하지 않으리라

고향길 가던 꿈 꾸다 놀라서 깨어 앉으니

삼경에 남쪽 지방 새 울음만 남쪽 가지에서 들리네.

 

 

 

 


 

묘소가 있는 곳으로 가보았다.

달랑 돌비석 몇 개 서 있는 작고 초라한 묘지였다.

 

원래는 전라도 화순 동복 땅에 묘를 썼으나

삼 년 후 둘째 아들 익균이 지금의 자리로 묘를 옮겨 모셨다고 한다.

 

 

 


 

 

김삿갓의 초분지를 찾아 이곳 영월군 김삿갓면(하동면) 노루목 마을에

이장했다는 기록은 있었지만 알려지진 않았다고 한다.

그 후로 오랫동안 김삿갓의 묘는 잊혔는지도 모를 일이었는데

116년 만에 정암 박영국 선생이 찾아내 보존해 오다 지금은

이렇게 우리가 가서 볼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한다.

 

 


 

 

묘지 앞에 잠시 서성이다가 돌아서 나오는데

마음이 어쩐지 쓸쓸해졌다.

 

그의 시를 떠올리며 묘지를 내려왔다.

 

 

自顧偶吟 자고우음
笑仰蒼穹坐可超 回思世路更초초 소앙창궁좌가초 회사세로경초초
居貧每受家人謫 亂飮多逢市女嘲 거빈매수가인적 난음다봉시녀조
萬事付看花散日 一生占得月明宵 만사부간화산일 일생점득월명소
也應身業斯而已 漸覺靑雲分外遙 야응신업사이이 점각청운분외요

 

나를 돌아보며 우연히 짓다

 

푸른 하늘 웃으며 쳐다보니 마음이 편안하건만
세상 길 돌이켜 생각하면 다시금 아득해지네.
가난하게 산다고 집사람에게 핀잔받고
제멋대로 술 마신다고 시중 여인들에게 놀림 받네.
세상만사를 흩어지는 꽃같이 여기고
일생을 밝은 달과 벗하여 살자고 했지.
내게 주어진 팔자가 이것뿐이니
청운이 분수 밖에 있음을 차츰 깨닫겠네.

 

 

*세속의 번잡스러움에서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며 지내는 자신의 생활을 감회에 젖어 읊은 시이다.

 

 

 


 

묘지가 있는 곳에서 내려다본 시비 공원 풍경...

 

 


 

 

蘭皐平生詩 난고평생시
鳥巢獸穴皆有居 顧我平生獨自傷 조소수혈개유거 고아평생독자상
芒鞋竹杖路千里 水性雲心家四方 망혜죽장로천리 수성운심가사방
尤人不可怨天難 歲暮悲懷餘寸腸 우인불가원천난 세모비회여촌장
初年自謂得樂地 漢北知吾生長鄕 초년자위득락지 한북지오생장향
簪纓先世富貴人 花柳長安名勝庄 잠영선세부귀인 화류장안명승장
隣人也賀弄璋慶 早晩前期冠蓋場 인인야하농장경 조만전기관개장
髮毛稍長命漸奇 灰劫殘門飜海桑 발모초장명점기 회겁잔문번해상
依無親戚世情薄 哭盡爺孃家事荒 의무친척세정박 곡진야양가사황
終南曉鍾一納履 風土東邦心細量 종남효종일납리 풍토동방심세양
心猶異域首丘狐 勢亦窮途觸藩羊 심유이역수구호 세역궁도촉번양
南州從古過客多 轉蓬浮萍經幾霜 남주종고과객다 전봉부평경기상
搖頭行勢豈本習 口圖生惟所長 요두행세기본습 구도생유소장
光陰漸向此中失 三角靑山何渺茫 광음점향차중실 삼각청산하묘망
江山乞號慣千門 風月行裝空一囊 강산걸호관천문 풍월행장공일낭
千金之子萬石君 厚薄家風均試嘗 천금지자만석군 후박가풍균시상
身窮每遇俗眼白 歲去偏傷빈髮蒼 신궁매우속안백 세거편상빈발창
歸兮亦難佇亦難 幾日彷徨中路傍 귀혜역난저역난 기일방황중로방

 

난고평생시

새도 둥지가 있고 짐승도 굴이 있건만
내 평생을 돌아보니 너무나 가슴 아파라.
짚신에 대지팡이로 천 리 길 다니며
물처럼 구름처럼 사방을 내 집으로 여겼지.
남을 탓할 수도 없고 하늘을 원망할 수도 없어
섣달그믐엔 서글픈 마음이 가슴에 넘쳤지.
초년엔 즐거운 세상 만났다 생각하고
한양이 내 생장한 고향인 줄 알았지.
집안은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렸고
꽃 피는 장안 명승지에 집이 있었지.
이웃 사람들이 아들 낳았다 축하하고
조만간 출세하기를 기대했었지.
머리가 차츰 자라며 팔자가 기박해져
뽕나무밭이 변해 바다가 되더니,
의지할 친척도 없이 세상인심 박해지고
부모 상까지 마치자 집안이 쓸쓸해졌네.
남산 새벽 종소리 들으며 신끈을 맨 뒤에
동방 풍토를 돌아다니며 시름으로 가득 찼네.
마음은 아직 타향에서 고향 그리는 여우 같건만
울타리에 뿔 박은 양처럼 형세가 궁박해졌네.
남녘 지방은 예부터 나그네가 많았다지만
부평초처럼 떠도는 신세가 몇 년이나 되었던가.
머리 굽실거리는 행세가 어찌 내 본래 버릇이랴만
입 놀리며 살 길 찾는 솜씨만 가득 늘었네.
이 가운데 세월을 차츰 잊어버려
삼각산 푸른 모습이 아득하기만 해라.
강산 떠돌며 구걸한 집이 천만이나 되었건만
풍월시인 행장은 빈 자루 하나뿐일세.
천금 자제와 만석꾼 부자
후하고 박한 가풍을 고루 맛보았지.
신세가 궁박해져 늘 백안시 당하고
세월이 갈수록 머리 희어져 가슴 아프네.
돌아갈래도 어렵지만 그만둘래도 어려워
중도에 서서 며칠 동안 방황하네.

 

 

 


 

시비공원을 내려오는데 입구에 쏟아지는 계곡물을 바라보며

나는 그림자 없는 물빛을 상상해보았다.

그분의 그림자란 시를 떠올리며....

 

 

詠影 영영
進退隨농莫汝恭 汝농酷似實非농 진퇴수농막여공 여농혹사실비농
月斜岸面篤魁狀 日午庭中笑矮容 월사안면독괴상 일오정중소왜용
枕上若尋無覓得 燈前回顧忽相逢 침상약심무멱득 등전회고홀상봉
心雖可愛終無信 不映光明去絶踪 심수가애종무신 불영광명거절종

 

그림자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날 따르는데도 고마워 않으니
네가 나와 비슷하지만 참 나는 아니구나.
달빛 기울어 언덕에 누우면 도깨비 모습이 되고
밝은 대낮 뜨락에 비치면 난쟁이처럼 우습구나.
침상에 누워 찾으면 만나지 못하다가
등불 앞에서 돌아보면 갑자기 마주치네.
마음으로는 사랑하면서도 종내 말이 없다가
빛이 비치지 않으면 자취를 감추네.

 

 

 

 


 

 

김삿갓 생가를 복원해 놓은 곳이 있는데

1,8km를 걸어 올라가야 하는데 도저히 걷기 어려웠던 ...

입구에서 돌아서야 했던 마음이

돌아와서 생각하니 아쉽다

물론 올라가면 초가집 한 채 달랑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 길을 걸으며 느껴보고 싶었던 것들을 얻지 못하여 아쉬웠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그 길을 걷고 싶다.

 

 


 

 

김삿갓 문학관은

조선 후기의 방랑시인 김병연의 생애와 문학자료를 만나볼 수 있는 곳으로

2003년 10월 강원의 얼 선양사업의 하나로 개관하게 된 곳이다.

문학관에서는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김삿갓의 자료가 마련되어 있으며

그의 일생이 담긴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정암 박영국 선생이 평생을 받쳐 연구해온 김삿갓에 대한

자료가 함께 전시되어 있다.

문학관을 돌아보면 김삿갓에 대해 자세하게 알게 된다.

 

특히 나는 문학관 건물이 맘에 와 닿았다.

김삿갓을 표현하는 문학관답게 건물 위에 살포시 얹혀 있는 삿갓 모양의 건물이

이색적이었고 마치 건물을 바라보면 김병연님이 그 자리에 서 있는듯한 느낌이 들 만큼

멋스러운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문학관 한쪽에 서 있는 동상을 보고 돌아서면서

그의 마음을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영립이란 시가 생각이 났다.

 

詠笠 영립
浮浮我笠等虛舟 一着平生四十秋 부부아립등허주 일착평생사십추
牧堅輕裝隨野犢 漁翁本色伴沙鷗 목수경장수야독 어옹본색반사구
醉來脫掛看花樹 興到携登翫月樓 취래탈괘간화수 흥도휴등완월루
俗子依冠皆外飾 滿天風雨獨無愁 속자의관개외식 만천풍우독무수

 

내 삿갓


가뿐한 내 삿갓이 빈 배와 같아
한번 썼다가 사십 년 평생 쓰게 되었네.
목동은 가벼운 삿갓 차림으로 소 먹이러 나가고
어부는 갈매기 따라 삿갓으로 본색을 나타냈지.
취하면 벗어서 구경하던 꽃나무에 걸고
흥겨우면 들고서 다락에 올라 달 구경하네.
속인들의 의관은 모두 겉치장이지만
하늘 가득 비바람 쳐도 나만은 걱정이 없네.


 

*자신의 조부를 탄핵하고 시작한 방랑 생활. 언제나 벗이 되어 주며 비바람에도 몸을 보호해 주는 삿갓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리하여 '병연'은 그 이름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이때부터 이 시인은 '병연'이란 이름을 스스로 숨기고 잊어버렸다.
그리고 삿갓을 쓴 이름없는 시인이 되었다. 그가 읊은 자신의 '삿갓' 시는 표연 자적하는 자연과 풍류 속의 자기 운명을 그린 자화상이었다.

 

 




 

 

문학관 뜰에 김삿갓 문학상 수상자들의 시가 담긴 시비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전국을 돌며 걸식을 하고 또한 냉대를 받으면서

나그네의 설움을 표현한 그의 시들이 많은 것은

방랑자로 살아온 그의 삶이 그다지 순탄하고 행복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그는 집안의 몰락으로 인한 신분 사회에 대한 개인적인 반항을 극복하고

신분제도와 빈부의 격차 등으로 고통 받는 백성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지닌 사람이었고

금강산 유랑을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풍자와 해학이 담긴 시를 많이 남겼다.

 

김삿갓은 삐뚤어진 세상을 농락하고 기성 권위에도 도전하고 민중과 함께 숨 쉬며

 탈속한 ‘참여시인’이었고 ‘민중시인’이었다고 하겠다.

 

이번 김삿갓 문학관과 시비공원을 돌아보며

그의 정신을 깊이 알게 되어 의미 있는 여행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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