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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 '홍의장군', 곽재우장군 생가

등록날짜 [ 2013년10월06일 14시09분 ]

임진왜란때 활약했던 곽재우장군 의병장 생가에 있는 뿌리깊은 나무 세간리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302호]

곽재우 의병장은 자(子)는 계수(季綏) 호(號)가 망우당(忘憂堂)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500년 된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302호

은행나무는 살아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은행나무는 나이가 5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21m부터, 가슴둘레 10.3m로서 밑동에서 2m부터 가지가 뻗어 있다. 바로 옆의 느티나무와 함께 마을을 지켜주는 신성한 나무로 믿어지고 있다.

 


특히 남쪽가지에서 자란 두 개의 짧은 가지[돌기]가 여인의 유방같이 생겼다고 해서 젖이 나오지 않는 산모들이 찾아와 정성들여 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의병장 곽재우가 벌인 전투에 얽힌 이야기]

 

곽재우는 전투에 임할 때마다 항상 용감하고 한 번도 진 적이 없기 때문에 역사에서는 “군사 쓰는데 귀신 같아서 위엄이 세 나라에 떨쳤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항상 붉은 옷을 입고 다녔기 때문에 ‘홍의장군(紅衣將軍)’이라고 불렸다.


 


[의병장 곽재우가 벌인 전투에 얽힌 이야기]

 

곽재우와 의병대는 낙동강과 남강이 합쳐지는 나루에서 왜병과 대적하게 되었다. 곽재우는 군졸들에게 허수아비를 준비시키고 나서 “허수아비를 다 만들었으면 옷을 입혀 놓고 불을 붙여 흔들도록 하여라.” 라고 군졸들에게 명하였다. 왜군들이 보기에는 수백 명의 군사가 강을 가로서 막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만으로 왜군들의 사기는 움츠러들었고 아무래도 열세한 싸움이 될 것 같아 도망치기에 바빴다. 결국 곽재우는 큰 싸움 없이 위장전술로 왜군을 쫒아내고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의병장 곽재우가 벌인 전투에 얽힌 이야기]

 

또 어느 날에는 곽재우가 병졸들에게 관 겉에 옻칠을 해놓고 벌을 잡아오라고 시켰다. 그리고 나서 병사들이 모아온 벌 수 만 마리를 그 통에 넣어서 길가에 버려 두었다. 왜병들이 그 속에 보물이 있는 지 확인하기 위해서 문짝을 여는 순간, 수백 마리의 벌떼가 터져 나왔다. 당황한 왜적의 군대는 삽시간에 흐트러져 후퇴하고 말았다.


 


[의병장 곽재우가 벌인 전투에 얽힌 이야기]


며칠 후에 왜졸은 똑같이 옻칠한 관을 발견하였는데, 이번에는 속지 않으리라고 결심하여 그것을 모조리 불 속에 집어던졌다. 이번에는 관 속에 벌 대신 화약이 들어 있어서 크게 폭발하여 일개 부대가 완전히 몰살당했다.


 


[의병장 곽재우가 벌인 전투에 얽힌 이야기]

곽재우는 지략을 활용하여 최소한의 희생으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이로써 더욱 유명해졌다. 전쟁이 끝난 뒤에 조정에서 내리는 벼슬도 사양하고 지리산 속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곽재우장군 생가]

이 곳은 임진왜란 때 전국에서 맨 먼저 민중의병(民衆義兵)을 일으켜 왜적을 무찌른 곽재우 의병장의 생가를 복원한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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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우장군 생가]

황해도 관찰사를 지낸 곽월공의 셋째 아들로 남명 조식 선생의 외손서다.

1552년 (명종7년) 8월28일 지금의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인 이 마을에서 태어나 1585년 (선조18년) 별시과거에 급제했으나 글의 내용이 문제가 되어 뒤늦게 파방을 하여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기강변 돈지에 자그마한 강사를 지어 은거하면서 학문에 전념하였다.

 


[곽재우장군 생가]

1992년 4월14일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9일째가 되는 4월22일 장군을 비롯한 17장령들과 함께 책과 붓을 던지고 가재를 털어 병기와 군량을 마련하여 수천의 민중의병을 거느리고 경남의 중서부로 진격하는 왜적을 섬멸 하였다. 그리고 기강진, 정암진, 현풍, 창녕, 영산, 진주까지 출병하여 연전 연승의 전공을 세웠다.

  


[곽재우장군 생가]

신출귀물한 유격전과 위계에 의한 기습공격으로 왜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으니 세상 사람들은 천강 홍의장군이라 불렀다. 전란이 끝나고 유곡도찰방, 조방장, 성주목사를 지내셨고 1597년 정유재란때는 경상좌도방어사, 경상우도조방장에 승차하였고 영창대군을 신구하는 상소문을 올린 뒤 낙향하였다.

 


[곽재우장군 생가]

그 뒤 경상도 병마절도사, 수군통제사 등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부총관 한성부좌윤 함경도 관찰사를 잠시 역임 하였으나 당쟁이 극심하고 민심이 불안한 정국이라 관직을 버리고 박향하여 낙동강변에 망우정을 지어 은둔생활을 하시다가 1617년 (광해군) 66세를 일기로 서거 하셨다.

 


[곽재우장군 생가]

활달한 필체에 시문에도 능하셔서 문집인 망우집을 남기셨으며 장군의 체취가 배어있는 큰칼 등 유물은 보물 671호로 지정되어 충의사에 보관 전시되고 있다.

 


[곽재우장군 생가]

이곳 생가는 조선중기 사대부의 사저로서 전형적인 주조를 본떠서 안채, 사란채, 별당, 큰 곳간, 작은 곳간, 대문, 문간채 등올 구성된 전형적인 반가로 2005년 복원하였다.

 


우물이 독특하게 만들어져 있네요...

 


 

 

 

주소 : 경남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 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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