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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집담, 밭담, 산담, 잣담... 참 담도 많다!

”느랏느랏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 여행기 <폭삭 속았수다>
등록날짜 [ 2014년04월22일 10시45분 ]

동네 시장이나 마트에 갔다가 제주도에서 온 무나, 당근, 감자를 볼 적마다 제주의 들녘 풍경이 보이는 듯해 여행심이 발동하곤 한다. 그러고 보니 다른 계절엔 다 가보았는데 제주 봄 여행은 미처 가보질 못했다. 육지의 봄만큼이나 제주 섬의 봄날도 참 좋겠지··· 올봄엔 제주도에 꼭 가보자 마음먹는 와중에 좋은 책까지 발견했다.


이 책 <폭삭 속았수다>는 스무날동안 26개 코스 425킬로미터의 올레코스를 완주한 여행기이다. 그냥 걷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 길을 만든 사람, 길을 걷는 사람들을 만났다. 풍광 좋은 곳만 걷게 하지 않고 굳이 마을을 지나게 하고 도심 한복판을 걷게 하는 제주 올레 길의 장점이 잘 드러난 책이다. ('혼저 옵서예'가 혼자 오세요가 아니 듯 '폭삭 속았수다' 또한 전혀 다른 뜻이 담긴 재미있는 제주도 사투리다)

그런 올레 길의 특징 덕분에 제주의 빼어난 풍광, 슬픈 역사, 개성적인 풍습이 함께 만난 다채로운 기행문이기도 하다. 제주 여행의 풍성한 성찬이 차려진 책을 읽다보니 이 봄 제주도 여행을 떠나면 꼭 가보고 싶은 곳들이 생겼다.

청보리가 춤추는 가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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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삭 속았수다> 책 표지.

 

돌담을 둘러쌓은 밭들과 멀리 보이는 한라산과 송악산·산방산, 찰랑거리는 파도소리와 바다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느랏느랏 놀멍 쉬멍 걸으멍'(제주말로 '느릿느릿하게 놀면서 쉬면서 걸으면'이란 뜻) 차를 타고서는 느낄 수 없었던 제주의 참 멋을 알게 된다 - 본문 가운데

가파도는 '못살포'로 불릴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부는 모슬포에서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제주의 아우 섬으로, 더할 가에 물결 파를 쓴다. 이름답게 파도가 높고 바람이 세기로 유명하다.

봄날 이맘 땐 또 다른 물결이 섬에서 일렁인다. 섬 안에서 이는 푸른 물결의 정체는 청보리. 매년 4월 하순에서 5월 초순까지 '가파도 청보리밭 축제'가 펼쳐질 정도다.

가파도는 바다와 거의 수평이다. 섬 전체에 산이나 언덕이 없다. 섬의 최고점이 20.5m에 불과하다. 가장 낮은 섬답게 가파도에는 2층이 최고층으로 높은 건물이 없다. 제주도에 한국에서 가장 높은 산인 한라산과 가장 낮은 섬 가파도가 함께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나라에서 가장 낮은 섬 가파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17만 평 보리밭이 또 다른 매력인데 그 가운데 환상처럼 피어난 갯무우꽃과 유채꽃 풍경도 놓칠 수 없겠다. 한적한 오후엔 바람과 파도 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가파도는 사람이 그리운 섬이기도 하고 낮잠 자기 좋은 섬이기도 하단다. 특히 제주도의 아우 섬이지만 가파도의 골목길을 걷다보면 돌담의 색깔과 모양이 본도인 제주와 다르니 그 차이를 느껴보시길.

저자가 꼽은 가파도에서 유일하게 아쉬운 점 하나가 있단다. 길만 보이면 '공구리' 하려는 관공서에서 청보리 축제를 한다며 그 좋은 보리밭 평야에 모자이크처럼 선을 긋고 콘크리트 길을 깔아놓은 바람에 흙길이 사라진 것엔 실망했단다. 올레 길에 영향을 받아 전국에 여러 길들이 생겨나고 있다. 재미없고 지루한 '공구리 길'보단 인간미가 느껴지는 흙길을 걷고 싶다. 흙길이 얼마다 위대한 길인가 하는 것은 몇 번만 그 길을 걸어보면 안다.

삶과 역사가 담긴 완벽한 예술작품, 제주 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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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봄엔 어떤 풍경을 보여줄지 기대되는 제주 돌담.
ⓒ 김종성

 


오름에 있는 무덤도 그렇고 밭에 있는 무덤도 그 주위에 돌담을 쌓아놓았다. 방목하는 말이나 소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만든 담이다. 제주도에서는 무덤을 '산'이라 부른다. 그래서 산을 둘러싼 돌담 이름은 '산담'이다 - 본문 가운데

제주 여행을 하다보면 마을, 숲, 해변은 물론 오름에 올라서도 까만 돌담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래도 명색이 담인데 제주의 돌담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어떻게 저 혼자 있기도 위태로워 보이는 돌담이 거친 해풍을 막아내며 무너지지 않고 서 있는 것일까?' 참 신기했다. 어쩌면 저 숭숭 뚫린 구멍 덕에 돌담은 오랜 세월 바람을 막아낸 것은 아닐까.

저자는 제주 돌담은 구멍으로 바람을 분산 통과시키며 바람으로부터 섬의 안전을 지켜왔다고 말한다. 제주의 돌담은 바람의 방어막이 아니라 바람의 통로다. 섬사람들은 바람을 거스르고는 살 수 없어 바람이 지나갈 샛길을 만들어 주고 바람과 함께 살아간다고. 제주 돌담에 담긴 의미를 알게 되니 여행길에 마주치는 다양한 돌담이 그저 까맣게 생긴 흔한 담으로만 다가오진 않을 것 같다.

집담, 밭담, 산담에 이어 잣담 까지 돌이 많은 제주도에선 어딜 가든 이렇게 돌담이 이어져 있다. 검정색으로 쓱쓱 금을 그은 듯 구불구불 끝없이 이어지는 제주도 돌담을 빼고는 제주도를 이야기할 수 없다. 제주 바닷가엔 처음 들어보는 '원담'이란 게 있단다. 해변에 돌을 쌓아 밀물 때 들어온 멸치 등이 썰물 때 나가지 못하게 만든 담이다. 마을에서 돌담을 쌓아 만든 '돌 그물'이다. 

밭과 집, 목장, 무덤 등을 둘러싼 검은색 돌담이 구불구불 끊임없이 이어진다고 하여 제주도 돌담은 '흑룡만리'라 불리기도 한다. 주변의 자연과 잘 어우러지는 소박한 검은 색 돌담으로 둘러싸인 밭 풍경은 여행자에게 그 자체로 훌륭한 볼거리이다. 규격, 표준화한 것 하나 없이 어느 담을 보아도 구불구불 제각기 다른 모양도 맘에 든다. 척박한 화산토에서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 누대에 걸쳐 돌을 쌓아올린 오랜 역사까지 담 안에 녹아 있으니 완벽한 예술품으로 손색이 없다.

너븐숭이 4·3 기념관이 있는 마을 조천읍 북촌리

제주 올레를 걸으면 누구나 드는 의문이 있다. 왜 풍광 좋은 곳만 걷게 하지 않고 굳이 마을을 지나게 하고 도심 한복판을 걷게 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이 출발점이다. 제주올레는 길을 통해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사람과 소통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 본문 가운데

제주 4·3 사건을 다룬 보기 드문 영화 <지슬>이 묘사하는 가장 아픈 내용은 총에 내몰린 마을 청년이 동네 사람들이 숨은 굴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장면이다. 제주도 사람들이 척박한 자연환경과 관권의 폭압, 왜구의 노략질 등을 견뎌낼 수 있었던 힘은 서로 상부상조하는 '수눌음' 정신에서 나왔다.

농촌에는 공동목장, 해촌에는 공동어장이 있고, 거의 모든 일은 계 조직을 통해 이루어졌다. 아홉 살에 고향을 떠나 일본으로 이민 간 사람들이 고향 발전을 위해 거금을 희사하는 곳이 제주도이다. 제주도 사람들의 생존 조건이자 자부심이 원천인 바로 그 공동체 의식이 4·3사건으로 인해 산산조각 나버렸다. 저자가 중산간 마을길에서 만난 고씨는 지금까지 남아 있는 가장 큰 아픔으로 공동체 의식의 파괴를 꼽았다. 한마을에서 대대로 가족처럼 의지하며 지내온 이웃들이 서로 등을 돌린 것만큼이나 불행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후손이 겪은 고초도 못지 않다. 부모가 죽었으니 정상적인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설사 공부를 했다 해도 연좌제라는 족쇄가 그들을 채워버렸다. 연좌제가 풀린 것은 1990년대 문민정부에 들어서였다. 마을은 마을대로 '폭도 부락'이라고 낙인 찍혔다. 당시 군경이 파악한 제주도 전역의 유격대 숫자는 5백 명. 5백 명 잡겠다고 미국이 '레드 아일랜디'로 지목한 후, 중산간 마을들을 불태우고 초토화시키며 주민 3만 명을 죽였다. 섬 인구의 10분의 1이었다. 광기가 아니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 동족에 의한 동족 대학살이었다.

19코스 함덕해수욕장 동쪽으로 서우봉이 우뚝 솟아 있는데, 이 봉우리를 넘으면 조천읍 북촌리이다. 이곳은 제주 4·3사건을 '공식 활자'로 써서 처음 세상에 알린 소설가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의 무대가 된 마을이다.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입은 곳이어서 비극을 상징하는 마을이 되었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청년은 "현기영 선생을 아느냐"는 저자의 물음에 '순이 삼춘'을 기억해내며 "남자들은 그때 거의 다 죽었다고 보면 된다"고 말한다. 여러 학살터 가운데 하나였던 너븐숭이(넓은 쉼터)에는 '너븐숭이 4·3기념관'이 들어섰다. 이곳에서 해설을 맡고 있는 고은숙씨는 사건 희생자의 유족으로, 당시의 일들을 상세히 들려준다.

"제주도 어른들은 인사를 해도 잘 받아주지 않는다. 너무 무뚝뚝하다"며 서운한 감정을 토로하는 올레꾼을 본 적이 있다. "대참화로(제주 4.3 사건) 인한 큰 아픔이 내재되어 있으니 어른들 얼굴이 어두울 수밖에 없고, 육지에서 사람들이 와도 아직까지는 마음으로 반갑게 맞을 수가 없다."

이후 정부에서 국가권력에 의한 대규모 희생이 이루어졌음을 인정하고 유족과 제주도민에 대한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고 희생자를 기리는 추념식을 거행하는 등의 조치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저자가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뇌리 속에 그리고 사건 당시의 총탄에 한 귀퉁이가 떨어져나간 등명대 건립비에는 이러한 아픔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혹여 제주 올레 길을 걸으며 "제주도 어른들은 인사를 해도 잘 받아주지 않는다. 너무 무뚝뚝하다"며 서운했던 감정이 남아있는 올레꾼이 있다면 함덕 해변가의 서우봉을 넘어 조천읍 북촌리 마을에 가볼 일이다. 

 

 

http://sunnyk21.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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