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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이 된 자랑스러운 '남한산성'

트레킹 코스가 5개나 있는 큰 남한산성길
등록날짜 [ 2014년07월06일 15시16분 ]


 

 ▲  수백살 먹은 고목 느티나무들이 호위하고 있는 남한산성의 제일 큰 문, 남문

 

 

지난 22일 문화재청은 남한산성이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고 있는 유네스코 제38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의 등재가 최종 확정됐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이번 남한산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로 세계문화유산 10건, 세계자연유산 1건 등 모두 11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우리나라 유적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은 2010년 한국의 역사마을 양동·하회 이후 4년 만이다.

 

세계유산위원회는 남한산성을 17세기 초 비상시 임시 수도로서 당시 일본·중국의 산성건축 기술을 반영하고 서양식 무기 도입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군사 방어기술을 종합적으로 집대성됐으며, 7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축성술의 시대별 발달 단계와 무기체제의 변화상을 잘 나타내고 지금까지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어 살아있는 유산이라고 평가했다.

 

세계유산의 기준은 첫째,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 두 번째 진정성(Authenticity), 세 번째 완전성(Integrity)이다. 이를 다시 세분해 10가지 기준 중 어느 한 가지를 충족해야 세계유산이 된다.남한산성은 이 열 가지 기준 중 (ii) 특정 기간·지역 내 인류 가치의 중요한 교류의 증거, (iv) 인류 역사의 중요한 발달 단계를 보여주는 탁월한 사례에 부합했다.

 

남한산성은 조선시대뿐 아니라 삼국시대부터 천연의 요새로 중요한 역할을 하던 곳이다. 백제의 시조인 온조의 왕성이었다는 기록이 있고, 나당전쟁이 한창이던 신라 문무왕 12년에 한산주에 쌓은 주장성이라는 기록도 있다. 고려시대에는 몽고의 침입을 격퇴한 곳이기도 하고 일제강점기엔 항일운동의 거점이 되기도 한 곳이다.

 

작년 가을에 찾아갔었던 남한산성이지만 세계문화유산이 된 자랑스런 산성을 찾아가 위용이 느껴지는 성곽길과 왕이 머물었던 행궁, 오래된 사찰이 이어지는 산성길을 걷는 기분은 특별했다.

 

 


 

                             ▲  여러 나무들로 울창해 트레킹하기 좋은 산성길. 

 


 



역사와 문화 그리고 자연이 함께 숨쉬는 산성

 

(남한산성은)"한강 남쪽에 있고 중심지는 만 길이나 되는 산꼭대기 위에 있다. 옛날 백제 시조 온조왕의 옛 도읍이었던 곳이다. 안쪽은 평평하고 얕으나 바깥쪽은 높고 험하다. 청나라 군사들이 처음 왔을 때 병기라고는 날(刀)도 대보지 못하였고, 병자호란때도 성을 끝내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인조가 성에서 내려온 것은 양식이 부족하고 강화가 함락 되었기 때문이다". - <택리지>에서

 

도립공원이 될 정도로 규모가 큰 산성엔 남한산 등산로와 함께 동서남북 산성문을 잇는 약 12km의 성곽길이 있다. 산성까지 차도가 나 있어 수도권 전철 8호선 산성역(2번 출구) 앞 정류장에서 산성입구까지 데려다주는 마을버스가 있다. 창밖으로 수목이 울창한 가산길을 구불구불 올라 남한산성에서 가장 큰 남문에 내렸다. 남문을 산성 성곽길의 초입으로 삼은 것은 문 앞에 서있는 수백 년 묵은 고목 느티나무들이 보고 싶어서다.

 

나이를 많이 먹어 지지대를 하고 서있지만 아름드리 장대한 나무의 분위기가 남한산과 산성을 지키는 신목(神木) 같다고 느꼈는데, 아니나 다를까 매년 도당제라는 제사를 지낸단다 (마을의 평안과 행복을 빌며 나무 앞에서 지내는 제사를 보통 당산제라고 하는데 경기지역에서는 도당제라고 한다). 산성의 커다란 남문과 노거수 나무들이 어우러져 그림처럼 아름답다.

 

 


 

 ▲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지은 누각, 수어장대의 모습

 

 

우리 조상들의 돋보이는 미적 감각은 남문에서 성곽을 따라 서문을 향해 가는 길에도 볼 수 있다. 마치 성벽을 지키는 초병들처럼 크고 작은 오래된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어 성곽을 따라 이어져 있다. 성벽 밖을 향해 신묘하게 가지를 뻗은 소나무, 적송(赤松)이라 하여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붉은 피부를 드러내는 소나무, 거대한 아름드리 소나무들 사이엔 벤치가 놓여있어 다리가 아프지 않아도 앉았다가 가고 싶게 한다.

 

남문에서 서문까지의 산성 일대에는 주민들이 정성으로 돌보고 지켜온 소나무 숲이 72ha나 펼쳐져 있다. 서울·경기지역에서 노송이 넓은 군락을 형성하고 있는 유일한 곳이다. 이 소나무 숲은 일제강점기 때 마을 주민 303명이 국유림을 불하받은 후 벌채를 금지하는 금림조합을 만들어 보호해왔기 때문에 지금껏 숲을 유지하고 있다. 이 소나무 숲이 좋아서 남한산성을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하더니 그럴 만하다.

 

곧이어 남한산성을 축조할 때 지은 4개의 수어장대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중요한 건물이며, 수어청의 장관(將官)들이 군사를 지휘하던 곳인 '수어장대(守禦將臺)'를 마주한다. 입구에서 가지를 땅으로 늘어뜨려 방문객에게 인사를 하는 것 같은 '처진 소나무'를 지나, 2층 내부로 향했다. 이곳엔 '무망루(無忘樓) 라는 편액이 달려 있었는데,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겪은 시련과 8년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귀국하여 북벌을 이루지 못하고 승하한 효종의 원한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영조가 지은 것이라고 한다.

 

 

 

 

 

▲  행궁안에 있는 어좌(왕의 자리)와 일월오봉 병풍




▲  1682년 만든 남한산성 장경사 동종, 장경사 대웅전에서 볼 수 있다



 

행궁(行宮), 사찰, 옹성, 암문... 풍성한 트레킹 코스  

 

남한산성의 또 다른 필수 코스는 행궁(行宮)이다. 행궁이란 서울의 궁궐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하는 경우 임시로 거처하는 곳을 말한다. 특히 이곳 행궁은 전쟁이나 내란 등 유사시 임시 수도로 사용하기 위해 인조 4년(1626년) 지어졌다. 또 수도의 기능을 위해 '종묘'와 '사직'을 두고 있는 유일한 행궁이기도하다. 

 

조선의 행궁은 모두 23곳이 있었는데, 남한산성 행궁은 그중 유일하게 역대 왕들의 신주를 모신 종묘와 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사직을 갖춘 곳이다. 종묘와 사직은 곧 나라를 뜻하니, 왕이 이 곳에 오는 것은 나라 전체가 옮겨오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곳 행궁은 일제강점기 때 불에 타 터만 남았었다. 1906년 일제는 남한산성의 승군들을 토벌한다는 명분아래 성곽내에 있었던 사찰 20여곳을 모두 없애면서 행궁마져도 파괴해 버렸던것을 근래 10년에 걸쳐서 복원을 한 것이다.

 

산성(山城)이란 도성(都城)이나 읍성(邑城)과는 달리 전란(戰亂)과 같은 위급상황이 닥쳤을 때 임금을 비롯한 권력의 중심이 이동하여 적과 대치하며 항전을 벌였던 곳이다. 남한산성에도 억울한 죽음과 고통스런 삶이 함께 했던 회한의 사연들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을 것만 같다. 인조 임금이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하기 위해 나섰다는 서문을 지나다 마주친 주인 잃은 백구 한 마리에게서 버려지고 방치된 백성들의 서러움과 슬픔이 느껴지는 듯했다. 왕은 1637년 1월 30일 혹한의 추위 속에서 이 문을 지나 잠실 부근의 한강변 삼전 나루터까지 걸어서 가야만 했다.

 

 


 

▲  남한산성엔 이런 암문이 16개나 있다. 

 

 

남한산성은 험준한 자연지형을 따라 성벽을 구축하고 있어 적이 쉽게 공략할 수 없는 성이었다. 둘레 6297보, 여장 1897개소, 옹성 3개, 대문 4개, 암문 16개, 포대 125개를 갖춘 큰 성으로 여기에 왕이 거처하는 행궁과 9개의 사찰까지 성 안에 자리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쌓아올린 이 천혜의 요새는 병자호란이라는 치욕과 절망의 역사가 산 채로 매장된 곳이기도 하다.

 

인조는 산성에서 나와 삼전도에서 무릎 꿇었지만 남한산성은 함락되지 않았다. 청은 항복문서에 '청나라 군대가 물러가고 난 후 어떠한 경우라도 산성을 보수하거나 새로 쌓아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넣었다. 청나라 황제와 군대는 분명 남한산성의 위용을 보고 '난공불락'의 요새로 느꼈을 듯싶다.

 

성곽길 가운데 가장 길고 오르락내리락 변화무쌍한 북문길을 걷다보면 나무 벤치가 있는 쉼터와 함께 작고 좁은 암문(暗門)이 나온다. 암문은 성곽의 후미진 곳이나 깊숙한 곳에 적이 알지 못하게 만드는 비밀 출입구로, 남한산성엔 이런 비밀스런 문이 16개나 있다. 그 중 13번째의 이 암문 앞 이정표에 '벌봉(봉암)'이 표시되어 있다.

 

남한산성은 하나의 단순한 성곽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본성과 그 주변에 봉암성, 한봉성, 신남성과 같은 옹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옹성은 일종의 외성(外城)으로 적이 직접 성문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할 목적으로 성문 밖으로 또 한 겹의 성벽을 둘러 이중으로 쌓은 것을 말한다. 북문길에서 벌봉 방향으로 따라 가면 옛 성벽의 자취가 남아있는 옹성과 여장, 옹성의 암문 등 본성과는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여장이란, 성벽 위에 설치하는 구조물로 적의 화살이나 총탄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낮게 쌓은 담장을 말한다).

 

산성을 돌아보는 방법은 성곽 밖과 안으로 걷는 두 가지다. 성곽 밖을 걸으면 역사상 단 한 번도 함락된 적 없는 난공불락 남한산성의 위용을 감상할 수 있다. 산성에는 동서남북으로 큰 문이 있고 비밀통로인 16개의 암문이 있다. 이문들을 통하면 밖과 안을 교차하며 걸을 수 있다. 성곽 밖을 걷다가 안으로 들어오면 녹음이 가득한 자연 속에서 산책을 즐길 수 있다.

  

 

 

 

 

▲  트레킹 코스가 5개나 있는 큰 남한산성



http://sunnyk21.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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