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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의 숨결, 천안 유관순 기념관

등록날짜 [ 2014년07월24일 10시29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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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광천동 유스퀘어 에서 천안까지는 약210km이고 소요시간은 3시간 정도다.

아침 6시 5분 첫차를 시작으로 40~60분 간격으로 운행을하며 요금은 19,300원이다.

당일치기 수도권여행으로 천안을 선택하였다.

천안을 여행지로 선택을 하게된 이유는 천안12경중 제3경 유관순 열사의 기념관과 아우내 장터를 방문하기 위해서다.

광주에서 출발한 버스는 약 3시간정도 달려서 천안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천안터미널 버스정류장에서 대중교통인 천안버스 400번을 타고 유관순 기념관에 도착하여 여행을 시작한다.

 

 

 

 

유관순 기념관 입구는 열사의거리로 3.1만세운동과 관련한 사진및 전시물이 설치되어 있다.

 

 

 

 

 

 

유관순 기념관 안내도를 참고로 하여 유관순 기념관,초혼묘,추모각을 돌아본다.

 

 

 

 

 

유관순 기념관 입구에는 유관순열사 초혼묘봉안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기념관은 사적 제230호로 지정되었으며 열사탄신 100주년을 기념하고 열사의 자취와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산 교육장이 되도록 조성하여 2003년 4월1일 개관하였다. 유관순열사의 재판기록문 등 관련 전시물과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을 재현하였으며, 재판 과정을 담은 매직 비젼, 열사의 생애를 닥종이 인형으로 재현하는 등 열사의 출생에서 순국까지의 일대기를 전시물과 영상, 다양한 체험을 통해 살펴볼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일제의 고문 도구인 벽관 체험을 통해 일제의 잔악성과 열사의 험난한 감옥 생활을 잠시라도 체험해 봄으로써 열사의 불꽃같은 삶 속에 녹아있는 나라사랑 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마련 하였다.

 

 

 

 

 

 

 

유관순열사는 1902년 12월 16일(음력 11월 17일)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옛 지명은 충청남도 목천군 이동면 지령리)의 작은 마을에서 유중권씨의 3남 2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이소제 여사이다.

 

 

 

 

유관순열사와 같은 이화학당을 다니며 5년간 같은 기숙사생활을 했던 보각스님(1904년생,속명 이정수)은 유관순은 지기 싫어하고 고집이 세며 때론 18살의 소녀다운 장난끼 있는 아이였다고 말한다. 또한 열사는 얼굴이 희고 복스러우며 머리는 매우 총명했다고 한다. 당시의 학생들의 평균신장이 150cm일때 169.7cm였다.  키가크고 활달하며 배포가 있던 소녀였다.

 

 

 

 

1919년 4월 1일 아우내 장터에는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어 마침내 3,000명이 넘는 군중이 모였다.
유관순은 직접 만든 태극기를 주민들에게 나눠주며 자주 독립 쟁취를 위한 연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자 군중들이 동하여 만세소리는 천지를 진동했고 감격에 휩싸여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했고 이 소식을 듣고 온 일본 헌병들은 평화로운 시위를 하는 군중에게 닥치는 대로 총을 쏘아댔다.   이날 일본 헌병의 무자비한 총공격에 유관순의 부모를 비롯한 19명이 죽고 죄없는 주민 30여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유관순도 체포되었다.

 

 

 

 

유관순 열사는 서대문형무소 수감중에도 독립만세를 부르며 옥중의 동료들을 격려하고 그때마다 고문과 매질을 당했으나 일본에  굴복치 아니하였다.

 

 

 

 

 

기념관에는 독립만세 운동을 재현하여 놓았다.

 

 

 

 

벽관체험

이곳은 한사람이 들어가면 움질일 수 없이 좁은공간으로 이렇게 2~3일씩 가두어 놓면 전신이 마비되는 끔찍한 고문의 한 방법이다.

 

 

 

 

 

머리에 용수를 씌우고 끌고가는 모습이 재현되어 있다.

 

 

 

 

열사께서 입었던 옷과 신발을 재현해 놓았다.

 

 

 

 

 

1920년 9월28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후 장례식 모습을 재현해놓았다.

 

 

 

 

 

영상실 에서는 유관순열사의 생애와 아우내 만세운동을 영상으로 제작하여 보여준다.

 

 

 

 

 

광장 한쪽에는 유관순 열사가 만세를 부르는 모습이 동상으로 세워져있다.

갸녀린 어린소녀가 어떻게 저런 당찬모습을 할 수 있는지...

 

 

 

 

 

기념관을 방문한후 매봉산 중턱에 설치된 초혼묘가 있는곳으로 이동한다.

 

 

 

 

 

 

초혼묘 올라가는길 옆으로는 같이 동문수학 하던 이화학당 친구들의 시비가 세워져있다.

계단이 가파르고 힘들때면 시비에 새겨진 시 한편씩 읽고 올라 가기를 권한다.

 

 

 

 

 

 

초혼묘(招魂墓)는  돌아가신 분의 사체가 발견되지 않거나 매장 장소를 알 수 없는 경우 혼을 불러 묘를 쓰는 경우를 말한다. 유관순열사가 1920년 9월 28일 오전 8시 20분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 이화학당 주선으로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되었 으나 이후 이태원 공동묘지가 일제의 군용기지로 쓰이게 됨에 따라 미아리 공동묘지로 이장하는 가운데 열사의 유적은 흔적도 없이 망실되었다.

 이에 열사의 원한을 풀어 드리고 영혼을 위로하여 편 히 잠드실 초혼묘를 매봉산 중턱에 봉안하였다.
초혼묘는 6각의 뿔형태로 각 면에는 열사의 기도문을 비롯하여 비문을 적혀 있다.

 

 

 

 


초혼묘에서 유관순 열사에게 목례를 하고 추모각으로 향했다.

 

 

 

 

 

추모각에 설치된 유관순 열사의 영정은 2007년 석천 윤여환의 작품이다.

 

 

 

 

 

유관순 열사의 유언은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코가 잘리고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만은 이길 수 있으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은 견딜 수 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것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유관순 열사의 유언을 되새기면서 기념관을 빠져 나오는데 한여름의 더위는  어느새 사라지고 몸과 마음이 상쾌함을 느끼는 여행이었다.

 

충청남도>천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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