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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의 말 전문 박물관

경마공원에 숨어있는 특이한 말 박물관
등록날짜 [ 2015년02월17일 11시35분 ]
'애마' 자전거를 타고 서울 양재천 길을 따라 달렸다. 하천변을 따라 울창한 나무와 숲 사이로 산책하기 좋은 양재 시민의 숲을 지나 현대 미술관, 과천 저수지를 품은 서울 대공원까지 이어져 있어 자주 찾게 되는 길이다. 주말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마사회 경마장도 지나는데, 돈을 내고 경마를 하지 않아도 넓은 경마공원이 있어 한 바퀴 둘러보게 되는 곳이다. 

공원에서 산책 중인 '포니(Pony)'라 불리는 귀여운 조랑말들도 만날 수 있어 좋다. 경마가 시작됐는지 사람들의 함성이 들리고 날씬한 기수를 태운 늠름한 말들이 놀라운 속도로 박진감 넘치게 달리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당근을 좋아하는 채식동물 말의 달리는 모습과 울룩불룩 말근육은 볼적마다 신기하기만 하다. 경마공원을 한 바퀴 돌다가 발견한 곳이 '말박물관'이다. 기마민족의 기상을 알리고 유구한 역사를 지닌 한국의 말 문화를 발굴, 보전하기 위해 한국마사회가 1988년 설립한 곳으로, 국내 유일의 말 전문 박물관이란다.   

복을 빌거나 제사 의식에 쓰였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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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마공원을 산책중인 '포니'라 불리는 귀여운 조랑말.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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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 입구에서 멋지게 말갖춤을 하고 관람객을 맞이해주는 말 석상.
ⓒ 김종성

 


이곳에는 군사(전마), 교통(승용마), 통신(파발마), 농업(농경마)의 수단이었던 유용하고 귀했던 말에 관련된 갖가지 유물과 자료들이 보존돼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돌을 깎아 만든 실제 크기의 말이 멋지게 말갖춤을 하고 호위하듯 서서 사람들을 맞는다. 다갈색 말 한 필에 입체감을 넣어 그린 커다란 <준마도>가 눈에 들어오고, 바로 옆에는 실제 말 꼬리와 갈기, 편자(말굽에 부착하는 도구)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직접 만져볼 수도 있다.

전시관은 크게 둘로 나뉜다. 말갖춤 장비들의 시대별 유물과 말 문화 관련 유물이다. 말갖춤은 사람이 말을 탈 때 필요한 장비를 말한다. 실물 크기의 말을 재현해놓은 모형 말에 안장·발걸이·말방울 등 장비가 잘 갖춰져 있다. 현대엔 차에 돈을 투자하듯, 옛날엔 말을 꾸미는 장비도 가지가지였다. 말은 주요한 탈 것이자, 값 나가는 재산이었기 때문이었으니.  

가야 시대 재갈과 초기 철기 시대 말방울은 말과 함께해온 깊은 역사를 말해준다. 통일신라 시대에 순은으로 만든 방울 문양은 오늘날 어느 장신구보다 화려하다. 구한말 고종의 아들 영친왕이 사용했다는 안장에는 제왕의 적자를 상징하는 기린문이 뼈로 박혀 있다. 상어 가죽으로 된 안장까지, 말의 위상을 짐작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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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길을 끈 암행어사의 판결문서, 마패도장이 찍혀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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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을 기원하고 제사의식에도 쓰였던 흙으로 만든 말, 토제마(土製馬).
ⓒ 김종성

 


또한 부패한 관리를 벌주던 암행어사들의 마패와 말 우표, 동전, 조선 때 장수들이 말을 타며 입었던 갑옷과 투구 등도 눈길을 끌었다. 사건을 해결한 후 암행어사의 마패가 찍힌 판결문서가 전시돼있어 흥미로웠다. 

귀한 가축이다 보니 조선시대엔 <마경초집언해(馬經抄集諺解)>이라는 말의 질병과 치료 관련 의학서적도 있었다. 이밖에 1900년대를 전후해 우리나라 전체에 흩어져 사육되던 말의 종류와 형태를 표시한 <각도마필분포도>도 볼 수 있다. 근대에 들어와 우리나라에 최초로 경마가 시작된 건 일제강점기인 1922년이라고 한다. 

말은 고대로부터 물자의 운반과 교통, 통신 및 병기 등 폭넓고 다양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이렇게 인간과 가까이 지내다보니 회화, 도자기, 공예 등을 통해 예술작품의 소재로 승화하기도 했다. 실제로 출토되어 박물관에 전시 중인 토제마(土製馬)는 이름 그대로 흙으로 만든 것이다. 

이는 길상의 의미로서 서낭당 곁에 묻고 복을 빌거나 제사 의식에 쓰였던 물건이라고 한다. 제사에 소나 닭, 돼지 등 동물을 제물로 바치는 것은 고대부터 시작되어 오늘날에도 흔히 볼 수 있는 풍습이다. 하지만 값비싼 가축이었던 말은 제물로 바치지 못하고 짚, 나무 또는 흙으로 만든 모형으로 대신했다. 투박하나 소박하고 친근한 느낌이 묻어났다. 

저승길에 동행이 되어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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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마비(下馬碑)라는 석비에 말과 관련한 옛 관습이 새겨져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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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마공원을 산책하다보면 함성소리와 함께 박진감 넘치는 경마장면을 구경할 수 있다.
ⓒ 김종성

 


원래 모양 그대로 가져와 전시 중인 하마비(下馬碑)라는 비석도 눈길을 끌었다. 서울 종로 종묘와 명륜동 성균관 앞에도 똑같은 글이 새겨진 하마비를 보았기 때문이다. 대소인원하마비(大小人員下馬碑)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 비석 앞을 지날 때에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타고 가던 말에서 내리라는 뜻을 새긴 석비이다. 대개 궁궐, 향교 또는 명사, 고관의 출생지나 분묘 앞에 세워져 있어 그 분들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타고 가던 말에서 내리는 옛 관습을 알 수 있었다. 

말은 이렇게 무엇보다 사람과 가까운 동물이었다. 사람에게 이로운 동물이라는 생각이 유물 곳곳에 남아 있다. 말 모양 토기는 저승에 갈 때 주인을 데려다 주는 신비로운 존재를 상징한다. 그래서 말을 탄 저승사자 토기를 순장하기도 했단다. 

한국인의 시원(始原)은 몽골이라고 하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몽골에서부터 동쪽으로 흘러왔던 그들은 현재 중국의 동북부인 만주와 한반도로 이동했다. 그런데, 도대체 그 먼 길을 어떻게 이동했을까? 분명 말의 도움을 피할 수 없었을 게다. 우리 민족을 보다 따뜻한 곳으로 실어 나르는 데 힘썼던 말이니 만큼, 한민족의 뼈와 살 깊숙이 말의 역사가 새겨진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었다.

말박물관에서 말과 관련된 유물과 자료를 보다보니 문득 제주도가 떠올랐다. 고려시대, 원나라(몽골)는 우리 땅에서 말들을 가장 키우기 좋은 곳을 제주도라고 여겼다. 예로부터 말도 살기 좋은 천혜의 섬이었지만, 말을 관리하고 사육하는 목마장(牧馬場)으로 이용하기 위해 근 100년간 몽골에 예속된 채 식민지 지배를 받는 쓰라린 역사를 겪어야 했다. 그 영향으로 제주도에 가면 경마장이 없는데도 말들이 동네 개만큼 흔히 보인다.    

박물관 관람 외에 도슨트(docent,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에서 관람객들에게 전시물을 설명하는 전문지식을 갖춘 안내인)가 들려주는 말에 대한 역사와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미리 전화 (02)509-1283로 사전 예약을 하면 된다. 주말과 일요일에 하며 따로 비용은 없다.

ㅇ 교통편 : 4호선 경마공원역 2번 출구 경마공원내 
ㅇ 운영시간 : 10시~18시 (월요일 휴무) 
ㅇ 입장료 없음

 

                                    

                                                    http://sunnyk21.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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