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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하게 살이 오른 멸치들이 봄을 맞아 덩실덩실~

[부산여행] 제19회 기장멸치축제
등록날짜 [ 2015년04월28일 22시01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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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기장군                  

부산하모 기장멸치 아인교

제19회 기장 멸치축제

 

 

19회 기장 멸치축제가 20150424()~0426()까지 대변항 일원에서 봄 멸치의 귀환을 알린다. 24일 시작으로 멸치회 무료시식(12~13), 대형멸치회 비비기, 수산물 깜짝경매, 맨손 활어잡기 외 다양한 부대행사가 축제장 곳곳에서 열린다.

 

▲ 대변항 전경

 

축제현장이 많이 달라졌다. 매년 항구 끝자락 등대 앞에 세워졌던 무대가 항구 내 주차장으로 사용되던 공간으로 옮겨지면서 더욱 넓고 쾌적해 졌다. 중앙에는 대형 무대가 세워졌고 다양한 축제 행사가 주변에서 진행된다. 멸치를 터는 모습과 아이들이 물고기를 잡는 모습 그리고 축제 분위기를 물씬 느끼게 하는 공연이 이어졌지만 이와 반대로 항구를 따라 형성된 시장은 멸치와는 관련없는 엉뚱한 상술이 판치고 있어 일부 여행객은 인상을 찌푸리기도 하였다.

 

축제의 현장 대변항

 

 

▲ 잡은 장어가 통 속에서 탈출을 성공하는 모습

 

 

대형풀장에 바다장어와 숭어가 대량 풀어졌다. 무대에서 몸풀기를 마친 어린이 신청자와 주부 그리고 아빠부대까지 나누어서 풀장에서 맨손으로 고기를 잡는다. 코너에 몰린 고기를 쉽게 잡는 아이들부터 꽁무니만 따라 다니다 빈통인 아이들에게는 운영자가 그물로 고기를 잡아 넉넉하게 나누어 준다. 그런데 장어를 잡다 장어 이빨에 다쳐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았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장갑을 지급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 멸치무침

▲ 멸치튀김

▲ 멸치전부침

 

멸치로 다양한 요리를 선보이는데 올해는 멸치축제기간에 변화가 생겼다. 연탄불에 굽던 멸치구이가 보이지 않는 대신 멸치비빔회무침, 멸치튀김, 멸치전, 멸치국밥 등이다. 음식을 사려면 미리 금액을 지불하고 쿠폰을 받은 후 음식물과 교환하면 된다. 축제기간에는 이곳에서 멸치로 추어탕처럼 만든 국밥을 주문하여 먹어 볼 것을 권한다.

 

▲ 멸치를 손질하고 있다.

▲ 만선을 기원하며

 

이른 새벽 동해안을 향해 35km 정도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 그물을 투망한다. 대마도 경계선 까지 봄이면 산란을 위해 동해안을 찾는 멸치 어군을 찾아 나선 어선은 만선을 기원하며 2키로 정도의 그물을 투망하고 잠시 기다린다.

 

하루에 만리를 이동할 정도로 무리지어 이동하는 멸치를 잡는 방법은 일반적 포위하여 잡는 방식과는 달리 멸치가 진행하는 방향에 미리 일직선으로 그물을 쳐 놓고 그물코에 멸치가 파고들다 걸리는 형식이다.

그물을 턴다. 촘촘하게 그물코에 걸려 있는 알이 꺽차고 살이 오른 통통한 봄멸치는 대변항에서 은빛 비늘을 허공에 날리며 그물에서 털어 내는 작업이 시작된다. 여린 봄 멸치의 살점은 그물에서 떨어지면서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면서 살점과 비늘이 허공을 가른다.

 

 

기장군에 척화비가 있다는 이야기를 오래전부터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찾아본 적이 없었다. 축제기간 대변항을 거닐면서 대변초등학교 정문 옆에 서 있는 기장척화비를 만났다. 부산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41호인 척화비는 본래부터 초등학교에 있던 것이 아니었다. 척화비에 관한 안내 글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홍선대원군 척화비

 

척화비는 조선 말 고종 때 섭정의 자리에 있었던 홍선 대원군이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은 뒤 세운비석이다. 대원군이 제국주의의 침략을 배격하고, 쇄국을 강화하기 위한 굳은 결의를 나타내고, 백성들에게 서양 열강의 침략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신미양요 직후인 1871(고종 8) 4월에 서울과 전국의 중요한 곳에 세운 비석이다. 비문을 해석하면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였는데 싸우지 않으면 곧 화의하는 것이요, 화의를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 라는 것이다. 그 옆에 우리들의 자손만대에 경고하느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우다라고 작은 글씨가 적혀 있다.

 

척화비는 1882(고종 19) 임오군란 때 대원군이 청나라에 납치되고, 우리나라가 여러나라와 통교하게 되자 일본 공사의 요구로 철거되었다고 한다. 이 비석은 개항 당시의 절박한 사정을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이다. 이 비는 높이 144cm, 52.6cm, 두께 21cm 규모의 화강석으로 되어 있으며, 한자 12자가 새겨져 있다. 당초에는 대변항 방파제 안쪽에 세워져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항만을 축조하면서 바다에 던져버렸던 것을 해방 후 1947년경 마을 청년들이 인양하여 지금의 위치로 옮겨 놓았다.”

 

봄날이 찾아왔다.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향해 나아갔던 배들이 항구로 하나 둘 들어오면 힘찬 생동의 소리와 비릿함이 탐방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항구 끝자락에서 만나는 어촌 풍경의 절정을 만난다. 사월이 되면 대변항은 태평양을 단독 헤엄쳐 왔다는 알을 밴 멸치(대멸)을 떨어내는 작업을 하느라 항구가 부산하다.

 

그물 떨이 현장

 

수면 위 햇살은 끊임없이 리듬을 타며 쏟아진다. 그물에서 떨구어진 멸치는 은빛을 난반사하며 항구를 맴도는 갈매기를 깨운다. 대변항 멸치는 봄철(2-6)과 가을철(9-12) 두 차례 그물질을 한다. 특히 대변항에서 잡아 올리는 멸치는 멸치 중에서도 가장 큰 대멸(7.7cm 이상)이며, 가을 이후 이듬해 봄까지 다 자란 멸치를 대멸이라 한다. 가을에 잡은 멸치는 육질이 단단하여 횟감보다 젓갈용으로 주로 사용된다.

 

▲ 대변항 전경.

▲ 멸치떨이와 갈매기

 

▲ 연탄불에 올려진 멸치에 굵은 소금 뿌려 굽는다.

 

기장 대변항 멸치는 육수를 내기 위해 사용하는 멸치가 아니다. 알 밴 대멸을 손질하여 다양한 양념으로 끊여내는 멸치찌개, 손질한 멸치를 초장에 찍어 먹는 횟감 그리고 대멸이기에 가능한 연탄불에 석쇠를 올려 노릿하게 구워먹는 연탄구이, 가을에 담는 젓갈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는 먹꺼리이다.

 

먼 해역으로 달려가 온 몸으로 파도를 막아내며 만선을 염원하는 투망을 내린다. 어군탐지기에 멸치떼가 감지되면 그물을 내려 희망을 건져 올리기 시작한다. 임금님 상에 진상하였다는 살이 통통 오른 멸치가 그물코 마다 걸려 올라온다. 산란을 위해 동해바다를 찾은 굵고 실한 멸치를 가득 싣고 돌아 온 항구는 밤이 늦도록 그물코에 끼여 있던 멸치를 털기 위해 장단을 맞춘다.

 

묵직한 세월, 변치 않는 힘겨운 노동을 하는 어민들의 표정에 봄이 고스란히 묻어 난다. 기계로 해결 할 수 없는 일이다 보니 하나하나 사람의 손이 필요한 작업으로 원시적인 흔적이 묻어나는 어로 작업이다. 비릿한 바다 향기를 싣고 온 배에서는 그물을 털기 시작하면 그물에서 뛰쳐나온 멸치 한 점 공짜로 먹으려는 갈매기 경쟁이 치열하다.

 

멸치가 바닥으로 떨어지길 기다리는 갈매기

 

그물을 한번 후려치면 멸치는 허공에 머문다. 숨이 차오르고 땀은 비 오듯 흘러내리는 악조건 속에서도 멸치 털기는 계속 된다. 다리에 전해지는 뻐근한 통증을 참아가며 숨 돌릴 틈도 없이 멸치 비늘을 온몸으로 막으며 묵묵히 작업을 하고 있다. “어여차 어차구렁소리는 그물을 당길 때 하나 된 동작을 위해 내는 고된 소리이자 질퍽한 삶의 애환이 묻어 있다. 구렁소리에 맞춰 그물이 당겨지면 은백색이 허공을 가른다. 대변항에 비릿한 멸치비가 내리는 것이다. 살이 오른 기름진 멸치는 성질이 급하여 항구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죽은 상태다. 그물에 머리가 끼여 잡는 터라 대부분 머리가 성하지 않다.

그물을 떨기 시작하자 모여드는 갈매기떼

 

항구에 들어선 배들

그물떨이를 하느라 항구가 분주하다.

 

그물을 힘껏 후려치다 보니 멸치의 은빛 비늘과 그물에 묻은 멸치 살점이 얼굴로 튀어 오른다. 짠 내음과 비릿한 냄새가 힘들게 하는 작업은 쉴 틈 없이 이어진다. 비닐 우의에 장화를 신고 얼굴을 겨우 가린 채 어둠이 몰려올 때까지 힘을 모우는 고달픈 소리가 끊임없이 항구를 배회한다.

 

멸치떨이 작업장 뒤로 떨어진 멸치를 줍는 사람들

 

▲ 봄 멸치를 그물에서 떨고 있는 대변항

 

짭쪼롬한 바닷바람 부는 황량한 항구 도로변에 어부의 아네이자 한 집안의 며느리가 패기하나로 잡아온 고기를 엉성한 그물 위 꾸덕꾸덕 말려 좌판에서 팔기 시작하면서 오늘날 대변항 천막촌이 형성되었다.

 

▲ 멸치를 손질하고 있다.

 

항구 앞 천막촌 가계에는 대멸치를 다듬는 손길이 분주하다. 손수레 위에 그물을 올려놓고 햇살에 말려 내다파는가 하면, 대변항에서 멸치를 사서 곧장 택배로 원하는 곳에 보낼 수 있다. 주문을 하면 즉석에서 굵은 소금을 뿌리고는 비닐봉투에 담고 택배를 위해 다시 플라스틱 통에 담아 밀봉한 후 오후에 일괄 택배로 보내는데 가을이 점점 익어 가면 다시 이곳 대변항은 멸치의 비릿함으로 물들 것이다.

 

▲ 대변항에 가득 쌓여 출하를 기다리는 멸치

 

부산과 경주를 잇는 동해안에서 가장 큰 국가어항을 찾아 길을 떠난다. 19711212일 국가어항으로 지장된 대변항(大邊港)은 멸치(대멸)와 미역이 유명하다. 기장 항구 앞 일원에서 양식으로 키워내는 미역과 다시마 그리고 봄, 가을 대변항에서 그물을 털어 판매하는 대멸은 국내 멸치 생산량의 60% 이상 차지하며 함께 만든 젓갈은 국내 생산량의 15% 이상을 차지 할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항구이며, 1995년 만든 동방파제와 2001년 만든 남방파제가 거친 파도를 막고 있으며, 2016400억 원 국비를 투입하여 동방파제를 보강 및 확장 할 계획이다.

▲ 상자에 담겨 있는 대멸

 

먹이사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멸치는 청어목 어류로 예부터 우리나라에서 즐겨 먹는 물고기이다. 한 해 봄, 가을 두 번 산란하며 2~3년 짧은 세월을 살다간다. 은빛이 허공에 날리면 갈매기들의 시선은 은빛을 쫒아 순식간에 이동한다. 먹이를 낚아채는 모습은 치열하게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을 정도이다.

 

 

 

항구를 돌아 나오며 멸치 조금 구입하였다. 냉장고 한켠 오래묵은 김치를 꺼내 냄비에 넣고 파릇파릇한 마늘대와 양파를 뚝뚝 분질러 넣은 후 고춧가루를 조금 많다 할 정도로 뿌리고 짜작하게 조리면 얼큰하고 칼칼한 멸치찌게를 만들어 먹어 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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