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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지날수록 손해보는 풍경...시원한 해파랑 길

강원도 삼척에서 묵호까지 자전거 여행
등록날짜 [ 2015년04월28일 23시03분 ]

자전거 여행자에게 최고의 숙소는 찜질방이다. 자신의 몸을 태우면서 달려가느라 지치고 기진한 몸을  풀어주는 덴 뜨끈한 탕이 제격이다. 강원도 삼척시 주민들이 하나같이 추천하는 삼척온천도 그런 찜질방이었다. 입구에 자전거 보관용 거치대가 있어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세신'하는 풍경이 오랜만에 정다웠다.

 

세신(洗身)은 '때를 민다'는 뜻의 찜질방 용어로 때밀이 아저씨를 점잖게 '세신사'라고 한다. 삼척의 유명한 동굴들처럼 삼척온천에도 아늑한 1인용 '동굴'이 있어서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었다. 동굴의 기운을 받아서 였을까, 다음 날 아침 일어나보니 알지 못했던 낯설고 새로운 힘이 팔다리에 가득 차 있었다. 

   


옥빛 동해바다가 펼쳐지는 삼척 정라동 언덕동네, 새천년 해안도로   


▲  삼척항 맞은편 언덕위에 자리한 정라동 언덕동네.
ⓒ 김종성

 


▲  삼척 새천년 해안도로에서 보이는 푸르른 동해안 풍경.
ⓒ 김종성

 


오늘 자전거 여행 여정은 삼척에서 해안을 따라 강원도에서 가장 큰 오일장이 열리는 동해시 북평동과 언덕동네 위 멋진 등대가 기다리는 묵호까지다. 삼척항을 지나 새천년해안도로를 오르락내리락 달렸다. 거대한 시멘트 공장에 자리를 내주는 바람에 작게 쪼그라진 삼척항, 항구 언덕배기 위에 자리한 정라동 동네가 눈길을 끌었다. 주민들이 나와 김을 매는 아담한 텃밭에 대문 없는 집이 흔한 소박한 시골 동네 같았다. 골목 오르막길을 잠시 걸어 오르면 예상치 못했던 푸르른 동해바다가 팔 벌려 반겨주기 전까지는. 

저 멀리 수평선을 경계로 하늘을 닮은 푸르른 쪽빛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참 청명했다. 애마 자전거가 기다리는 언덕동네 아래로 내려가는 길, 주민들이 모여 논다는 마을회관으로 가는 동네 할머니에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다. 뉘 집 자식인가 가만히 나를 쳐다보던 할머니, "누구나?"라는 강원도 사투리가 섞인 짧은 물음에 웃음이 배시시 새어 나왔다. 얼마 전 전남 여수 고소동 언덕 골목길에서 마주친 할머니는 "누구까?"라며 물어왔었는데 둘다 참 정답기만 하다.

삼척항에서 해안가를 따라 삼척해변까지 약 4.2km의 도로는 이름도 거창한 '새천년 해안도로'라는 이름이 있다. 2000년에 개통해서 그렇게 지은 도로란다. 파도와 해풍이 깎고 다듬은 기암괴석과 초록의 소나무 숲, 짙푸른 옥빛 바다 위로 난 구불구불한 도로를 최대한 천천히 달렸다. 빨리 지나갈수록 손해 보는 풍경이 펼쳐져서다. 해안도로 들머리 공원에서 자전거 탄 동네 아이들을 보고 오른 손을 쭉 뻗어 앞으로 내보였다. 엉겁결에 '하이 파이브(손뼉맞장구)'를 한 아이들과 새천년 해안도로 오르막길을 넘고, 환호성을 지르며 내리막길을 내달렸다.

▲  해파랑 길에선 동해안의 멋진 해변들과 자주 만난다
ⓒ 김종성

 


작년 봄, 구독하는 자전거잡지에서 사은품으로 승선 초대권을 받았다. 인천에서 제주까지 가는 배표로 4월 말이 사용기한이었다. 봄날 제주엔 한 번도 가보질 못해서 무척 기뻤다. 4월 중순경 승선 예약을 하려고 해운회사에 전화를 했다. 

성수기도 아닌데 자리 예약이 쉽지 않았다. 단체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생들이 있어서라는 직원의 말. '그럼 다음 주에 가야겠다' 그 잠깐의 결정이 내 운명을 바꿨다. 이후 봄날의 제주엔 아직도 못 갔고, 자전거 타다가 아이들을 보면 '하이 파이브' 하자며 손을 앞으로 내밀게 된다.

새천년도로의 끝 지점에는 하얀 모래가 일품인 삼척해수욕장이 펼쳐진다. 후진마을 앞에 있기 때문에 원래는 후진해수욕장이라 불렸는데, 어감이 좋지 않다 하여 '삼척해수욕장'으로 바꿨단다. 넓은 백사장과 울창한 송림이 어우러진 고즈넉하고 운치 있는 전혀 후지지 않은 해변이다. 해수욕장 바로 앞 삼척해변역은 동해 바닷가를 따라 추암, 묵호, 망상, 정동진역 사이를 오가는 '해안선 기차'로 관광객의 사랑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이어지는 증산해변과 촛대바위가 서있는 추암해변까지 바닷가 따라 자전거로도 지날 수 있는 산책로가 나있어 바다 풍경을 즐기며 지나가기 좋았다.   

왁자지껄 강원도의 힘, 북평 5일장 

▲  북평 5일장에서 만난 신기한 오골계.
ⓒ 김종성

 


추암해수욕장을 지나면서 삼척시에서 동해시로 들어서게 되고 잠시 바닷가와 이별하게 된다. 동해시 북평동과 동해항 일대에 큰 산업단지가 들어서 있어서다. 북평동엔 거대 산업단지만큼 커 보이는 장터가 서는데 바로 강원도에서 가장 큰 장터, 전국 3대 장터라는 북평 5일장이다. 3·8일장으로 한달에 6번 열린다. 오일장날이 되면 동해시의 이 작은 마을엔 한바탕 떠들썩한 판이 벌어진다.

삼척과 묵호항, 태백과 정선 등 인근 바다와 산에서 나는 온갖 산물들이 5일에 한 번씩 이곳 북평장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풍성한 물산은 물론 닷새에 한 번 세상 구경하려는 시골노인들과 인근지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골목과 거리, 인도 옆까지 발 디딜 틈도 없이 장터가 벌어지고 있었다. 

어찌나 사람들이 많은지 자전거를 끌고 다니기가 버거워 가게 한쪽 귀퉁이에 묶어놓고 다녔다. 골목골목마다 노점과 난전이 실타래처럼 얽혀있어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장터인지도 모를 정도로 넓다. 그동안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만났던 5일장 가운데 가장 크고 왁자지껄한 장이 아닐까 싶다.

▲  거리와 골목마다 사람들과 난전으로 가득한 왁자지껄 북평 5일장.
ⓒ 김종성

 


북평장은 무려 220년 전, 1796년(조선 정조 20년)에 생겨났다고 한다. 순수 우리말로 뒷드르, 뒷드루, 뒷드리, 뒷뚜르 장이라고 불리었는데 이 지역의 지명인 북평(北坪)의 고유어인 뒷들을 뜻한다. 뒷들은 삼척시의 북쪽, 즉 뒤쪽에 있는 넓은 들판이라는 뜻에서 유래됐다한다. 장이 서는 곳에 동해시의 식수원인 '전천(화살箭, 川)'이 흘러 지나간다. 하천 이름에 왜 화살이 들어갔을까 궁금했다. '전천'은 임진왜란 때 격전지였던 곳으로 전사자의 피와 화살이 하천에 가득 떠 내려와서 붙게 된 이름이라고 한다. 

가축장에선 오골계라고 부르는 털은 물론 발과 눈알까지 온통 까만 보기 드문 닭들이 나와 있어 눈길을 끌었다. 다리가 없는 장애인 아저씨가 각종 잡화가 쌓여 있는 낮은 수레를 끌며 시장통에서 당당하게 호객행위를 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곳이다. 영동지방에서 가장 큰 장이었고 전국 3대 장에도 꼽히는 대단한 장터다웠다. '강원도의 힘'을 제대로 느끼게 하는 곳이다. 올해부터 철도공사의 '팔도장터 관광열차'가 운행된다니 그럴 만하다. 

동해역에서 묵호역 가는 눈 시원한 해파랑 길

▲  삼척과 묵호 사이 동해안 해파랑길은 바다와 철길과 가까워 좋다.
ⓒ 김종성

 


▲  아름다운 동해 바닷가를 독차지한 해군 동해 체력 단련장의 속내는 골프장.
ⓒ 김종성

 


북평동 이웃동네인 송정동엔 푸르른 바다가 가까운 기차역 동해역이 있다. 동해역에서 북쪽의 묵호역까지 해안가를 따라 '해파랑 길'이 나있어 주민들에게도 여행자에게도 좋은 길이 돼 주었다. 동해바다와 잘 어울리는 이름의 해파랑 길은 포항에서 고성까지 연결을 목표로 한 동해안 탐방길이다. 

해안가를 따라 가다 다시 차도 쪽으로 자전거 핸들을 돌리게 한 곳이 좀 특이했다. '동해 해군 체력 단련장'. 차도 변 산책로를 지나면서 보이는 체력 단련장의 속내는 골프장이었다. 푸른 바다 넘실거리는 멋진 해안 길을 군 체력 단련장에 뺏긴 것도 좀 억울했는데, 체력 단련의 수단이 골프라니... 쓴웃음만 났다. 

▲  마음 짠하게 했던 기차길 옆 오두막집.
ⓒ 김종성

 


그런 여행자를 위로해 주듯 나타난 아담하고 작은 바닷가 한섬해변은 그냥 지나치면 후회한다. 고불개 해변까지 바다가 보이는 왕복 솔숲길, 짧지만 호젓한 분위기가 참 좋다. 바닷가 해파랑 길은 기차 길과 함께 이어져 있어 자전거 여행의 운치를 더해 주었다. '기차 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 옛 동요에나 나왔던 풍경이 나타나 마음이 짠하기도 했다. 기차선로 옆에 자리한 집은 옥빛 동해바다를 안마당 삼고 있었다. 애처롭고 아름다운 풍경이 저 멀리 언덕배기 위 묵호 등대가 보이는 해안가를 따라 이어졌다. 

자전거 여행자를 묵호역(동해시 발한동)보다 먼저 반긴 곳은 '묵호항역'이었다. 멀끔한 묵호역과 달리 화차들이 무연탄을 나른 흔적이 기차 길에 고스란히 묻어 있다. 바닷물이 먹물처럼 검다 해서 지은 묵호(墨湖)라는 지명에 딱 어울리는 화물역으로 1940년에 생겨난 원조 묵호역이었단다. 

당시엔 영동지역을 오가려면 철도가 유일한 수단이었던 데다 철암·황지에서 생산되는 무연탄을 항구로 보내기 위한 화물수송까지 맡았다. 한산한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북적였을 듯싶다. 결국 화물과 여객을 모두 담당하기엔 묵호역의 선로 상태는 포화상태를 맞게 되었고, 1961년 현 묵호역이 신설되면서 여객업무를 맡게 되었다.  

낮엔 벽화가, 밤엔 은은한 불빛이 정겨운 묵호동 '논골 마을' 

▲  검은 바닷가 동네 묵호의 흔적이 물씬한 묵호항역.
ⓒ 김종성

 


▲  항구, 중앙시장, 언덕동네 논골 마을이 어울려 모여있는 동네 묵호동.
ⓒ 김종성

 


1960년대부터 영동지역에서 생산되는 무연탄을 해외로 수출하기 시작하면서 묵호항은 항구도시로 발전하게 된다. 항구가 발달하면서 생긴 것이 바로 묵호등대다. 묵호항으로 들어오는 선박들의 수가 많아지자 1964년 묵호등대가 세워진다. 섬이 없고 광활한 동해바다 특징상 묵호등대의 빛은 무려 50km거리에서도 식별이 가능할 정도란다.  

묵호동 언덕동네와 동해바다를 비추는 묵호등대의 불빛이 보고 싶어 해질녘까지 유명한 벽화마을이 된 묵호동 언덕 골목 '논골 담길'과 묵호항, 중앙시장을 돌아 다녔다. 묵호항을 품은 묵호동엔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중앙시장이 있다. 

'동쪽바다 중앙시장'으로 간판을 바꾼 중앙시장에서 상인 한 분이 시장 내 착한 식당으로 동해시에서 인증을 받은 3곳을 알려주어 저녁밥을 잘 먹었다. 4천 원 보리밥 뷔페 집, 3500원 칼국수 집, 회 비빔국수를 단돈 3천 원에 먹었던 1천원 잔치국수집 '까치분식'. 모두 묵호동 주민들과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작은 토박이 식당들이다. 

막상 해가 저물자 내 마음을 끈 것은 묵호등대보다 가로등 불빛이 은은하고 고즈넉하게 빛나는 묵호동 언덕골목길이었다. 낮에 보였던 예쁜 벽화들도 사라지고 좁고 컴컴한 골목길이 무섭게 느껴지지 않은 건, 머리 위로 지나가는 등대 불빛과 동해바다가 가까이에서 파도소리를 들려줘서인 듯싶었다. 낮엔 수더분한 달동네로 보였던 곳이 밤이 되자 집집마다 불이 켜지고 밥 냄새, 밥 그릇 소리가 들려오는 아련하고 정다운 풍경으로 바뀌었다. 

▲  동해바다와 묵호동 언덕동네를 따스하게 밝혀주는 묵호등대.
ⓒ 김종성

 


▲  바닷가 마을의 예쁜 벽화도 거친 바다의 풍파도 느껴지지 않는 묵호동 논골 마을의 고요한 밤.
ⓒ 김종성

 


 예예전에 외항선원들이 묵호항에 입항할 때 묵호 언덕동네의 휘황찬란한 불빛에 놀랐다가, 이튿날 아침 전날 밤 풍경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들어찬 판잣집들을 보며 또 놀랐다는 얘기가 그럴 듯했다. 묵호동에 드리운 고요한 어둠은 마치 한 겨울 내린 눈처럼 논골 마을에 그려진 예쁜 벽화도 거친 바다가 남긴 모진 풍파도 가려 주었다.

옛날엔 논이 있던 마을이라서 붙여진 논골 담길 어느 야외 카페에 앉아, 다양한 색깔로 변신하는 묵호등대가 연출하는 낭만적인 밤바다 풍경을 취하도록 실컷 바라봤다. 귀가시간을 자꾸만 미루다 결국 카페 주인장이 알려준 12시 5분 자정 녘 묵호역을 출발하는 서울행 무궁화호 기차에 올라탔다. 칠흑같은 어둠 속을 달려가는 열차의 창 밖으로 바닷가 언덕동네를 밝히던 묵호 등대가 자꾸만 아른거렸다.    

사람들은 봄은 산으로부터 온다고 한다. 묵호의 봄은 시린 손 호호 불며 겨울바다에서 삶을 그물질 하는 어부의 굳센 팔뚝으로부터, 신 새벽 어판장에서 언 손 소주에 담아가며 펄떡이는 생선의 배를 가르는 내 어머니의 고단한 노동으로부터, 언덕배기 덕장에서 찬바람 온몸으로 맞이하는 북어들의 하늘 향한 힘찬 아우성으로부터 온다. - 논골 마을의 벽화 글 중에서  


http://sunnyk21.blog.me 




 

강원도>삼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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