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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역사의 산증인, 수표교

진짜 수표교와 가짜 수표교
등록날짜 [ 2015년08월17일 15시07분 ]

 

 

 

 

 

진짜 수표교와 가짜 수표교

짝퉁 수표교, 사라지면 좋겠다

 

 
 
▲ 수표교 장충단공원에 있는 수표교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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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것은 가짜다'

고전 연구자로 유명한 한양대 정민 교수의 책 제목이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2000)는 연암 박지원의 실학사상과 산문을 소개하고 풀어쓴 책이다. 서평을 쓰자고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수표교(水標橋)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럼 왜 여행기사의 첫 문장에 책 제목을 끌어다 쓴 것인가? 수표교에 비슷하게 생긴 '가짜'가 있는가? 

 

 

 

 

 

 


조선 개국과 함께 정비된

청계천

 


지금은 장충단 공원 한쪽에 위치해 있지만, 수표교는 원래 청계천에 있던 다리였다. 청계천이 복개된 후 홍제동에 머물렀다가 1965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50년 동안 현재의 자리에 터를 잡은 것이다.

조선 왕조가 한양으로 천도했을 때, 조정에서는 매년 반복되는 물난리로 골머리를 앓게 된다. 당시 한양의 하수시설이 빈약했기 때문이다. 이에 조정에서는 백악산(북악산), 인왕산, 남산 등 도성을 감싸고 있는 내사산의 물길을 한곳으로 모아 흐르게 하기로 했다. 그 사업이 바로 '개천(開川) 개설 사업'이었다. 개천은 청계천의 옛 이름이다.

태종 11년(1411)부터 세종 16년(1434)까지 대대적으로 벌어진 치수 사업으로 인해 청계천은 흔하디흔한 자연형 하천에서 명실공히 도성의 으뜸 하천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때 물길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게 됐는데 한양이 서고동저형 지형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 수표교 봄 꽃이 화사하게 핀 수표교.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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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역사의 산증인 수표교


하천이 개설됐으니 뒤이어 다리들도 하나둘 세워졌다. 청계천에는 24개의 다리가 들어섰는데, 수표교도 그중 하나였다. 수표교는 세종 2년(1420)에 세워졌는데, 처음 이름은 마전교(馬廛橋)였다. 다리 인근에 소와 말을 매매하던 시전이 있었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그러다 20년이 지난 후에 비로소 수표교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1441년, 강수량 측정을 할 수 있는 수표(水標)를 마전교 서쪽에 세우게 됐는데, 그 이후부터는 다리 이름도 '수표교'로 불리게 된 것이다. 

처음 물길이 잡히고, 300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청계천은 다시 바닥이 높아지게 된다. 상류에서 쏟아져 나온 토사가 계속 쌓이다 보니 하천의 바닥과 둑의 높이가 비슷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영조 36(1760)년, 청계천은 다시 대대적인 준설이 이루어진다. 수표교 부근에 준천사(濬川司)라는 기관을 세우고 작업을 시행하게 되는데, 57일 동안 무려 20만 명의 인원이 동원된 대대적인 준설을 하게 된다. 이때 수표교의 교각에는 경신 지평(庚辰地坪)이라는 각자가 새겨졌다.

 


 

 
▲ 경신 지평 조선 영조 때 새겨진 글씨.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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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으로 돌아가지 못한 수표교 


시전 상인들이 건너고 소와 말들도 건넜을 수표교에는 왕실 양식이 적용되어 있다. 다리 양옆에 난간이 설치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일반 백성들의 발걸음이 대다수였을 청계천의 다리에 왕실에서 쓰는 기법이었던 난간을 설치한 경우는 무척 이례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민간에서는 징검다리나 외나무다리와 같이 격식은커녕 안정성도 담보되지 않은 다리들을 주로 이용했었다.

수표교는 튼튼한 돌다리에다 양옆으로는 고급스러운 난간까지 설치되어 있다. 수량을 측정하기 위해 수표까지 세워졌다. 또한, 청계천 준설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렇듯 수표교는 청계천 다리 중 가장 으뜸이라고 할 수 있으며, 청계천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수표교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청계천이 아닌 장충단공원에 자리 잡고 있다. 청계천 복원공사가 종료(2005년)된 지 한참이 흘렀지만, 아직도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물을 흘려보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원래 수표교 자리에는 무엇이 들어섰는가? '짝퉁'이 들어서 있다. 품격 있는 '오리지널' 수표교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갈색페인트로 덧칠된 격 떨어지는 '짝퉁'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오리지널'의 고급스러운 석재 난간은 나무로 대체되었는데, 얼핏 보면 등산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데크처럼 보인다. 진짜 수표교를 보다가 가짜 수표교를 보면 탄식의 한숨이 터져 나올 것이다.

 


 

 
▲ 난간 진짜 수표교의 난간. 왕실에서 쓰이는 난간 양식이 민간 다리에 적용됐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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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간 가짜 수표교에서 바라본 청계천. 난간을 나무로 만들었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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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은 수표교 복원 사업


어떤 역사학자는 청계천 복원의 정점은 수표교를 원래 위치로 되돌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말을 빗대보면 아직 청계천의 복원은 끝나지 않은 셈이다. 필자도 그 말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 수표교가 자신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곳은 장충단공원이 아닌 바로 청계천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는 청계천시민위원회를 꾸려 수표교 복원과 관련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2020년까지 수표교는 원래 자리인 청계2가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이전 비용이 무려 800억에 달하기 때문이다. 또한, 노후화가 심해서 자칫하면 훼손된 상태로 복원될 수도 있다는 어려움도 안고 있다. 한편, 원위치인 청계2가로 옮긴다고 해도 그 주변의 경관들이 '오리지널' 수표교의 모습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맹점도 도사리고 있다. 실제로 청계2가 주변은 상가들이 정돈되지 않은 모습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

이런 문제점들 때문에 '오리지널'에 준하는 복제교를 세우자는 의견도 있다. 진짜 수표교는 그대로 장충단공원에 놔두고, 정교하게 복제된 다리를 만들어 청계2가에 세우자는 의견이다.

'오리지널'이 복원되든 복제본이 세워지든 갈색으로 덧칠된 현재의 '짝퉁' 수표교는 좀 사라졌으면 좋겠다. 진짜를 보다가 격 떨어지는 가짜를 보면 다리에 힘이 풀린다. 비슷하지도 않은 가짜를 보니 그저 답답함이 밀려올 뿐이다. 비슷하지도 않은 짝퉁을 좀 어떻게 해주셨으면 좋겠다.  

 

 

 
▲ 가짜 수표교 청계 2가에 위치해 있다.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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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 진짜 수표교와 가짜 수표교를 비교해 보고자 한다면
장충단공원(3호선 동대입구역) ▶ 동대문(오간수교) ▶ 청계천 ▶ 청계2가  (이동거리: 약 3.5km / 이동시간: 약 50분)

 

 

 

 

 

 

 

 

 

덧붙이는 글 |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

http://blog.daum.net/artpu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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