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
메인홈 > 지역여행 > 수도권 > 서울
서울
경기
인천
트위터로 보내기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글확대 글축소 스토리스크랩 스토리공유 프린트하기

남대문 시장, 옛날엔 수산시장이었다?

[서울 탐방] 칠패 시장과 남대문 시장
등록날짜 [ 2015년08월25일 11시52분 ]

 

 

 

 

 

[서울 탐방] 칠패 시장과 남대문 시장

남대문 시장, 옛날엔 수산시장이었다?

 

 

 

 

 

▲ 남대문 숭례문

                                                                                                                                     ⓒ 곽동운

 

 

 

 

"예? 남대문시장이 예전에는 수산물 시장이었다고요?"
"콕 집어서 수산물만 판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수산물이 에이스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요? 그거 메르스만큼 쇼킹한 말이네요!"

 

 

메르스가 한참 맹위를 떨치던 지난 6월경,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일대를 탐방하며 지인들과 나눈 대화의 일부다. 당시 남대문시장 일대는 썰물 빠지듯 사람들이 빠져나간 상태였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느낀 점이 하나 있었다. 사람들이 우리나라 재래시장에 대한 역사를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재래시장 탐방을 좋아하는 이들을 만나 봐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이런 말을 했던 분들도 있었다.

 

"대형마트 이전에 있던 게 재래시장 아니에요?"

 

 

 

 

 

▲ 남대문시장 남대문시장 로고

                                                                                                                                    ⓒ 곽동운

 

 

 

 

 

 

 

 

호남지역에서 최초로 나타난 장시

 

 

 

이 땅에 장시(場市)라 불리는 시장이 출현하기 시작한 건 14세기 말 무렵이었다. 처음 시장이 개설된 지역은 전남 나주 일대였다. 나주는 영산강을 끼고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어 예로부터 농업생산물이 풍부했다.

 

영산강을 거슬러 온 것들도 있었다. 바로 인근 바다에서 잡힌 수산물들이었다. 곡식과 수산물이 집산되고, 거기에 지리산 부근에서 채집된 임산물까지 더해지니 영산강 일대는 장시 출현의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그렇게 서해에서 잡힌 물고기들은 나주의 영산포까지 실려 왔고, 그 생선들은 나주평야에서 생산된 곡식들로 교환됐다.

 

영산포까지 실려 온 물고기 중에는 홍어도 있었다. 흑산도 부근에서 잡힌 홍어가 내륙 안쪽에 있는 영산포까지 오려면 시일이 필요했고, 그러다 보니 삭힌 홍어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삭힌 홍어 요리는 나주 영산포의 명물이 됐다.

 

 

 

 

 

▲ 남대문시장 남대문시장

                                                                                                                                     ⓒ 곽동운

 

 

 

 

 

 

 

 

백성들의 숨통을 트이게 해주었던 장시

 

 

 

 16세기가 되면 장시는 일장 혹은 10일장 형태를 띠며 전국적으로 뻗어 나갔다. 장시의 출현과 확장은 농업 생산성의 발달과 관계가 깊다. 농업기술의 발달로 생산물이 풍부해지자 잉여 산물이 생기게 됐고, 그 잉여 산물을 농민들끼리 교역하는 방식으로 장시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대형마트 이전에 재래시장이 있던 게 아니라, 사회적인 분위기가 무르익게 되자 하나눌씩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물산이 모이다 보니 떡고물이라도 떨어졌던 것일까? 장시는 흉년이 들었을 때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장시가 농민들의 호구책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최소한 장시에 들러붙어 있으면 국밥 건더기라도 얻어먹을 수 있었다. 한편, 가렴주(苛斂誅求)를 피해 도망쳐 온 농민들에게도 장시는 귀중한 쉼터 역할을 해주었다.

 

그래서 조선 왕조는 장시를 정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에 그치지 않고 금지령도 수시로 발령했다. 하지만 대세를 누가 꺾을 수 있겠는가? 막는다고 막아지는 게 아니었다. 장시의 성립과 발전은 순조류를 타고 역사적 흐름의 하나로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 남산공원 서울성곽 남산 구간. 남대문시장과 남산공원을 묶어서 탐방을 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 곽동운

 

 

 

 

 

 

 

 

한양의 큰 시장이었던 곳, 칠패 시장

 

 

 

조선 시대 한양에서 가장 큰 시장 세 곳을 꼽으라고 하면 칠패, 배오개, 종로가 꼽혔다. 이중 육의전을 중심으로 한 종로를 제외하면 칠패와 배오개는 아직도 그 명맥이 굳건히 이어지고 있다. 칠패는 남대문 시장으로, 배오개는 동대문 시장으로 연결됐다.

 

칠패 시장은 원래 소의문이라고 불렸던 서소문 밖에 펼쳐진 시장이었다. 서소문은 서대문(돈의문)과 함께 일제 강점기 때 철거가 된 상태라 현재는 그 터만 남아 있다. 그 터에서 조금만 더 가면 서소문 공원이 있는데, 그 일대가 칠패 시장이었다. 서소문공원과 남대문은 도보로 10분 남짓 걸린다. 한마디로 예전 칠패 시장은 남대문 쪽으로 옮겨와 계승됐다고 보면 된다.

 

그 옛날 칠패 시장은 다양한 물산을 자랑했다. 소금, 새우젓, 채소, 죽세공품 등등…. 하지만 칠패 시장 에이스 중의 에이스는 단연 물고기였다. 1844년에 한산거사라는 사람이 <한양가(漢陽歌)>라는 풍물 가사를 썼는데, 그곳에 칠패 시장에 대해 이렇게 묘사를 했다.  

 

 

 

우리나라 소산(所産)들도 부끄럽지 않건마는
타국 물자 교합하니 백각전(百各廛) 장할시고.
칠패의 생선전에 각색 생선 다 있구나.
민어 석어 석수어며 도미 준치 고등어며
낙지 소라 오적이며 조개 새우 전어로다.

 

 

 

<한양가>에서 언급됐듯이 당시 칠패 시장에서는 마포나루에서 올라온 각종 해산물이 파닥거리고 있었다. 근원을 따지면 칠패 시장의 어물전들은 노량진수산시장보다 훨씬 더 오래된 연혁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메르스 사태가 일정 정도 가라앉은 7월경에 다시 남대문시장을 찾았다. 시장은 다시 활기를 띠고 있었다. 양손 가득 물건을 들고 있는 외국인들의 모습도 많이 보였다. 결국, 남대문시장이 메르스를 이긴 것이다!

 

현재 남대문시장에는 칠패 시장의 비릿한 생선 냄새가 진동하지 않는다. 대신 '남대문시장에는 핵무기와 탱크 빼고 다 있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없는 게 없는 곳이 됐다. 시간이 흘러 위치도 약간 달라지고 취급하는 물품도 달라졌지만, 그 명성은 계속 이어져 왔던 것이다. 또한,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 여행 길잡이

: 남대문시장과 남산공원을 묶어서 도보 탐방해보자. 시작점은 시청역이고, 종료점은 장충단 공원이다. 약 2시간 30분 정도 소요 예상.

 

시청역 ▶ 숭례문 ▶ 남대문시장 ▶ 남산공원 ▶ 장충단공원

 

 

 

 

 

 

덧붙이는 글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

http://blog.daum.net/artpunk

 

 

 

 

 

서울특별시>중구
곽동운>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ID 내용 공감하기
- 작성된 의견이 없습니다.
이름 비밀번호
도배방지키
 64763640
트위터로 보내기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글확대 글축소 스토리스크랩 스토리공유 프린트하기
달빛이 내려앉은 아름다운 고궁여행 (2015-09-07 16:12:07)
서울 한복판에 왜 사과마을이 있을까? (2015-08-18 16:3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