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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곡열차 타고 찾아간 낙동강 비경길

경북 봉화군 양원역~승부역 사이
등록날짜 [ 2015년09월10일 12시40분 ]



 

 

 

 

 

협곡열차 타고 찾아간 낙동강 비경길

 

 

 

 
                        ▲  굽이굽이 이어지는 협곡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협곡열차(V-train).

 
 


몇 년 전부터 형형색색 화려한 색을 입은 기차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얼마 전 여수 갯가길 여행 때 타고 갔던 남도 해양 열차(S-train), 오지 구간인 중부 내륙권을 손쉽게 여행할 수 있는 중부 내륙 순환 열차(O-train), 온돌 마루·족욕실이 있는 서해 금빛 열차 같은 관광 열차들이 그 주인공. 그 가운데 백두대간 협곡 열차(V-train)는 어떤 여정을 품고 있을까 특히 궁금한 열차다. 

참고로 S-train의 'S'는 바다의 영문인 'Sea'의 약자로, 곡선 모양의 경전선과 리아스식 해안인 구불구불한 남해안의 모양을 형상화했다. O-train의 'O'는 'One'의 약자이며 순환을 상징하는 모양으로 중부내륙 3도(강원, 충북, 경북도)를 하나(One)로 잇는 순환 열차를 의미한다. V-train의 'V'는 'valley'(협곡)의 약자며, 동시에 협곡의 모양을 의미한다. 이번 여행에서 탔던 백두대간 협곡열차(V-train)는 경북 봉화군 두메 산골과 강원 태백시 심산유곡 사이를 느긋하게 굴러가는 세 칸짜리 디젤 열차로, 주말엔 좌석 잡기가 힘든 인기 관광 열차가 됐다. 

찻길이 없어 중부 내륙 열차, 협곡 열차로만 접근할 수 있다는 경북 봉화의 오지엔 호젓하게 걸어볼 수 있는 길이 있다. 봉화군 석포면 석포리 양원역과 승부역을 잇는 약 5.6km 길이의 '양원~승부' 비경길이다. 낙동강이 품은 비경을 줄곧 옆구리에 끼고 걸을 수 있는 아름다운 물길과 걷기 좋은 숲길이 이어진다. 

낙동강가인 이 길은 골짜기에 주민이 모여 살던 시절, 장터와 학교에 오가고, 볼일 보러 마실을 다니던 길이었다.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자 마을마저 사라지고, 마지막으로 길이 사라질 무렵 철도 공사와 봉화군에서 길의 희미한 흔적을 찾아 이정표를 세우고 흔들 다리를 잇고 나무 계단을 만들어 누구나 걸을 수 있는 길로 새로 태어났다. 험준한 협곡을 지나는 구간엔 나무 데크를 설치해 등산 스틱이 없어도 될 정도로 길이 완만하다. 어르신, 아이들과 함께 걸어도 좋겠다. 


 

 

 

 

 

 

주민이 만든 민자 역사

양원역

 

 

 


▲  간이역, 철길, 트레킹 길이 이어진 낙동강 협곡

ⓒ 김종성

 

 


경북 지역의 오지 세 곳으로 봉화·영양·청송을 이른다. 거기서도 산 높고 골 깊기로 첫째라는 땅이 봉화다. 예전 같았으면 접근성이 떨어져 큰마음을 먹고 찾아가야 했다. 이제는 기차로 쉽게 백두대간의 깊은 속살길 탐방에 나설 수 있다. 하루에 여러 차례 있는 협곡 열차와 순환 열차,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원점으로 회귀할 필요가 없는 코스를 다양하게 짤 수 있다. 낙동강 협곡에서 철도는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여행 수단이다. 

봉화 임기역에서 승부역까지 이어지는 총 길이 32km의 트레킹 코스 가운데 양원역과 승부역을 이어주는 '낙동강 비경길', 분천역에서 승부역으로 이어지며 협곡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전해 준다는 '협곡 트레킹', 양원역에서 구암사까지의 '수채화 길' 그리고 승부역에서 비동 임시 정류장까지 가는 '가호(佳湖) 가는 길' 등 이름만으로도 걷고 싶어지는 길이 나 있다. 철도 공사에서 마련한 패키지 여행도 있어 서울 외에도 대전, 대구 등에서도 좀 더 편하게 기차 여행과 오지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나는 서울역에서 중부 내륙 순환 열차(O-train)를 타고 양원역(경북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 원곡마을)으로 향했다. 관광 열차답게 창가를 향한 의자, 어린이를 위한 작은 놀이방, 가족실, 연인실 등 다양한 시설들이 마련돼 있다. 좌석마다 휴대 기기를 충전할 수 있도록 전기 콘센트가 있는 것도 좋았다.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할 수 있는 편안한 휴게실에서 중간중간 승무원이 진행하는 기념품 걸린 게임도 펼쳐졌다. 차량 정체 걱정 없이 여유로운 마음으로 여정을 즐길 수 있는 기차다. 

 

 

 

 

                           협곡열차와 두메산골 비경이 왠지 잘 어울린다.

 

 


굽이굽이 협곡 물길을 따라 봉화역, 춘양역, 분천역을 지나 양원역을 향해 열차가 달려갔다. 기차역 이름이나 창 밖 풍경이 생소하고 새로웠다. 양원역은 2013년 4월부터 중부 내륙 철도(O-Train)와 백두대간 협곡 열차(V-Train)가 서는 낙동강 협곡의 강변 오지 역이다. 오지 역답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역이란다. 2평 남짓한 대합실이 있는 정말 손바닥만 한 역이지만, 엄연히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기차역이라는 이채로우면서도 애처로운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이 마을에 기차가 나타난 것은 1955년 영암선(영주-철암, 지금의 영동선)이 개통되면서다. 하지만 기차는 무정하게도 원곡마을을 그냥 지나쳤고, 주민은 지금은 트레킹 코스가 된 철길·산길·물길을 걸어 석포면 승부리에 있는 승부역에 내려 마을까지 걸어와야 했다. 이 마을 주민들은 봉화 오일장에서 생필품을 마련하곤 했는데, 장터에서 산 물건들을 바리바리 싸서 기차에 오른 주민들은 마을에 이를 때쯤 가져온 짐을 차창 밖으로 내던졌단다. 마을 위쪽의 승부역에서 빈손으로 철길을 되걸어 와 짐을 찾아가곤 했다고.

그러다 보니 주민들이 종종 기차 사고를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불편을 참다못한 마을 주민들은 여기저기 탄원을 내 마침내 마을 앞에 기차를 세울 수 있게 됐다. 1988년 마침내 기차가 마을에 서게 되자, 주민들은 강 건너 이웃인 또 다른 원곡마을(울진군 서면 전곡리) 사람들과 십시일반 돈을 모으고 힘을 합쳐 대합실, 승강장, 화장실을 만들었다. 원곡마을 주민의 땀과 노력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민자 역사가 탄생한 것이다. '양원(兩元)'이라는 역 이름은 두 원곡마을에서 따왔다. 

기차가 잠시 쉬었다 가는 10분 동안 양원역 주변은 '깜짝 장터'가 된다. 협곡 열차,순환 열차 등 관광 열차가 하루에 여러 번 정차하면서 아기자기한 간이식당과 작은 장터까지 갖춘 것. 손님들은 아담한 대합실도 구경하고, 돼지 껍데기, 파전 안주에 옥수수 막걸리도 한잔 들이켜고, 집에서 먹을 말린 나물, 무말랭이, 생콩가루 따위를 사고는 화장실까지 들렀다가 기차에 오른다. 10분 사이 먹고, 마시고, 떠들고, 흥정하며 간이역 구경하는 일이 다 이뤄진다. 학창 시절 시끌벅적했던 쉬는 시간이 떠오르는 정겨운 풍경에 슬며시 미소가 피어올랐다.

 

 

 

 

 

 

철길·산길·물길 따라

양원역~승부역 걷기

 

 

  


 ▲  중간중간 재미있는 이벤트도 벌어지는 중부내륙 관광열차 O-train.

ⓒ 김종성

 


 ▲  주민들이 직접 세운 사연이 담긴 경북 봉화 양원역.

ⓒ 김종성

 


 

 

양원역 앞 물길을 따라 이어지는 승부역까지의 5.6km 낙동강 협곡 길은 호젓하고 청정한 트레킹 코스를 자랑한다. 외지인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던 외딴 골짜기의 철길과 물길, 산길은 생경할 정도다. 눈 내린 겨울의 설경, 가을의 고운 추색도 기대됐다. 사람들의 인적이 드문 천연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여느 길과는 다른 느낌을 주기에 충분됐다. 양원역과 승부역 사이의 정식 명칭은 '낙동강 비경길'. 줄여서 '낙동 정맥길'이라고도 한다. 

이 길은 깊고 험준한 협곡 사이에 조성됐다. 지금까지 철길 외에는 달리 접근할 방법이 없다보니 자연 본연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탐방로를 따라 흐르는 낙동강 줄기의 물소리와 우거진 나무 내음 그리고 간간이 지나는 열차의 기적 소리는 봉화의 자연을 만끽하기에 충분했다. 낙락장송 소나무로 뒤덮인 '뼝대(협곡 양편의 거대한 석회암 절벽을 부르는 강원도 말)'는 오지의 원시적이고 강한 기운이 그대로 느껴졌다. 

강원도 태백 황지연못에서 발원한 낙동강 최상류로 갈수록 풍경은 강가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찔레꽃처럼 더없이 소박하고 아기자기했다. 이 길의 묘미 가운데 하나는 덜컹덜컹 거친 숨소리를 내며 철교를 지나는 열차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선홍빛 협곡 열차와 산골짜기의 비경이 묘하게 어우러져 특별한 풍경으로 다가왔다. 그건 아마도 이 심산유곡까지 들어와 철교를 세우고, 철길을 낸 사람들의 고되고 고마운 노동이 담겨있기 때문이지 싶었다. 

 

 


 

 

▲  10분 간 '깜짝 장터'가 벌어지는 양원역 

ⓒ 김종성

 

 

 


비경길의 진가는 절벽을 오르내리는 나무 계단길도 포함된다. 나무 계단을 놓아 협곡 절벽 가장자리 강가로 통로를 냈다. 청명하게 흐르는 강가를 내려다보며 높다란 협곡 가장자리를 걷는 기분이 상쾌하고 짜릿했다. 승부와 양원이 기차역으로 한 정거장이지만, 아득하고 멀게 느껴진 건 이런 험준한 지형 탓이었다. 발걸음을 한결 편하게 해준 나무 계단을 밟으며 절벽 위로 올라서자, 이 길의 명물인 거북바위가 코앞에 내려다보였다. 

자연(스스로 自, 그러할 然)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이 길엔 구석구석이 야영하기 기막히게 좋은 천혜의 캠핑지투성이다. 고운 모래와 작은 자갈들, 넓적한 바위들이 모여있는 강변 둔치는 그대로 텐트를 쳐도 될 만큼 완벽한 자연 캠핑장이다. 

협곡 열차가 다니는 낙동강 상류에 정식 캠핑장이 없는 게 아쉬울 정도. 어차피 차량은 못 들어오니 트레커, 백패커(배낭 여행자)를 위한 작은 캠핑장이 생긴다면 큰 인기를 끌 것 같다. 인공 불빛이나 소음이 전혀 없는 오지의 강가에서 구슬 같은 별빛 아래 물소리, 바람 소리를 들으며 하룻밤을 보낸다면 평생토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듯싶다.

 

 

 

 

 

 

굽이굽이 산골짜기 달리는

협곡열차

 

 

 

 


                          ▲ 기차 외엔 접근할 수 없었던 오지 산간지역을 가까이서 마주하며 걸었다.

 

 

 

 

▲  '심마니 둘레길'이라 명명된 울창한 산 속 오솔길. 

ⓒ 김종성

 

 


경북 봉화군 석포면 승부리 승부역. 국내에서 가장 외딴곳에 자리 잡은 기차역으로 꼽힌다. 요즘엔 눈꽃 열차, 협곡 열차 등으로 이름난 역이 됐지만, 험산 준령 사이 협곡에 옹색하게 자리한 승부역은 원래 열차 교행을 위한 간이역에 지나지 않았다. 기차역이 있는 승부리 마을은 찻길도 없는 험준한 산골, 교통수단은 기차가 유일했던 오지 마을이었다. 지금도 승부역으로 이어진 찻길은 석포에서 들어가는 좁은 시멘트 포장길이 유일하다. 

승강장 위로 서너 명이 들어갈 아담한 대합실에 들어가 앉았는데, 1960년대 중반에 근무하던 역무원이 철길 옆 바위에 페인트로 썼다는 글씨가 눈에 띄었다. 이 글은 오지 속 외딴 기차역의 느낌과 철도원의 자부심이 엿보이는 글귀로 승부역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승부역은 하늘도 세평이요, 꽃밭도 세평이나,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맥박이다.' 

 

 

 

 

▲  협곡여행은 가족 나들이로도 제격이다. 

ⓒ 김종성

 

 

 

▲  쓸쓸함과 고즈넉함이 함께 배인 승부역. 

ⓒ 김종성

 

 

 


승부역 주변은 1955년 영암선(영주~철암 87㎞)이 이어지며 개통된 영동선의 마지막 난공사 구간이었다. 험준한 바위산을 뚫는 터널 공사와 계곡의 철교 공사 과정에 수많은 일꾼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이를 기리는 '영암선 개통 기념비(이승만 전 대통령 글씨)가 철교와 터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세워져 있다. 지금 봐도 온통 험준하기만 한 풍경 사이에 역 홀로 덩그러니 있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하지만 1998년부터 매년 겨울철마다 운행하는 '환상선 눈꽃 열차'의 주요 경유지가 된 뒤로는 기차 여행 명소가 됐다. 

트레킹을 마치고 승부역 대합실과 승강장, 철길을 한가롭게 쉬고 거닐면서 협곡 열차(V-train)를 기다렸다. 흰 바탕에 검은색 줄무늬가 선명한 디젤 기관차가 세 량의 선홍색 객차를 달고 천천히 다가왔다. 이 열차는 봉화 분천역과 태백 철암역 사이 27.4km를 하루 3회씩 왕복 운행한다. 좁은 골짜기(Valley)를 이루는 험준하면서도 빼어난 풍광의 구간을 다니는 관광 열차다. 평균 시속 30km의 느린 속도로 그림 같은 풍경 속을 달리는 협곡열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 그 이상의 철마다.

승객들은 어느 장소에 가려고 이 열차에 오르는 게 아니다. 차창 밖에 펼쳐지는 낙동강 상류 비경을 감상하려고 이 두메산골까지 찾아와 협곡열차에 몸을 싣는다. 열차를 타고 가는 내내 펼쳐지는 차창 밖 풍경에 사람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맑고 푸른 낙동강과 절벽을 품은 산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고속으로 달리는 기차가 아니다 보니 흡사 영화를 보는 것처럼 오지 속 비경이 천천히 이어졌다. 

협곡 열차는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복고형으로 만들었다. 요즘은 보기 드문 접이식 승강문을 비롯해 목탄 난로, 선풍기, 백열전구 등으로 단장한 객차는 옛날의 완행열차를 연상시켰다. 바깥 풍경을 눈 시원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객차의 천장과 바닥을 제외한 대부분을 유리창으로 만들었다. 객차 지붕에 설치된 태양열 집전판은 하루 평균 5kW의 전기를 생산해 기차가 필요로 하는 전력을 얻는다고.

 


 

 

▲  창문을 자유롭게 열고 닫을 수 있어 특별했던 협곡열차. 

ⓒ 김종성

 

 

 

 

▲  천정과 바닥을 제외한 대부분이 유리창인 조망 좋은 협곡열차 

ⓒ 김종성

 

 

 


고속 열차, 급행열차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풍광들이 느릿한 협곡 열차에서 눈과 가슴속에 고스란히 와 닿았다. 열차 내 창문을 자유롭게 열 수 있는 것도 특별했다. 열린 창문을 통해 역동적인 기차 사진, 풍경 사진을 찍는 것도 좋고, 무엇보다 시원하고 청정한 바람이 불어와 좋았다. 열차는 줄곧 낙동강이 흐르는 협곡을 따라 'S자'를 그리며 달려갔다. 

덜컹거리는 열차의 움직임이 크고 생생하게 들려오는 높다란 철교를 건너고 때로는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며 굽이굽이 산골짜기를 느릿느릿 달리는 협곡 열차. 차창 밖으로 '원시의 강'으로 불리는 낙동강 상류와 신록으로 울창한 V자 모양의 협곡이 열차와 함께 하나의 풍경이 되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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