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
메인홈 > 지역여행 > 경상권 > 경남
대구
울산
부산
경북
경남
트위터로 보내기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글확대 글축소 스토리스크랩 스토리공유 프린트하기

야영 위해 떠난 섬진강변 경남 하동 여행

재첩, 강변 송림, 평사리 들녘, 토지길이 있는 풍성한 동네 하동
등록날짜 [ 2015년10월06일 09시32분 ]

 

 

 

 

야영 위해 떠난

진강변 경남 하동 여행

 

 

- 재첩, 강변 송림, 평사리 들녘, 토지길이 있는 풍성한 동네 하동

 

 

 

 

 
▲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섬진강변 야영장이 있는 하동 평사리 공원.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섬진강과 나란히 이어지는 길을 따라 흘러가면 나오는 마을로 애마 자전거를 대동하고서 홀로 여행을 떠났다. 올해는 꼭 소망을 이뤄야지 하는 마음을 굳게 먹으며…. 소망은 바로 모래톱 넓고 풍성한 섬진강변에서 하룻밤 야영을 해보는 것이다. 일명 '낭만 강변 야영을 위한 자전거 여행'. 

평평하고 풍성한 모래가 있는 강변 평사리(平沙里) 마을에 그런 야영을 할 수 있는 캠핑장이 있다. 정식 명칭은 '평사리 공원'으로 식구들과 섬진강에 놀러 왔다가 알게 된 곳이다. 강변 모래 가에서 한가로이 맨발로 산책하며 홀가분한 시간을 만끽하고 싶었고, 한밤의 섬진강은 어떤 자장가를 들려줄지도 궁금했다. 

애마 자전거에 낭만 야영을 위한 텐트와 침낭을 실었다. 텐트 외에 코펠과 버너도 같이 넣을까 했는데, 짐도 많아지거니와 별미로 유명한 섬진강변의 식당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 듯해 야영 장비만 챙겼다. 여름 성수기 철이 아니라 야영장 예약이 쉬워 좋았다.  

 

 

 

 


웃음이 절로 새어나오는

 백사청송(白沙靑松) 강변 길   

 

▲  애마 자전거를 기차에 싣고 섬진강변의 하동역으로 떠났다.

ⓒ 김종성

 

 


기차에 애마 자전거를 싣고 섬진강변에 있는 하동역(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에 내렸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소담한 기차역 분위기가 호젓하고 평화로웠다. 주민이 사는 동네와 동떨어지지 않고 이웃집처럼 가까이에 있는 것도 하동역의 미덕으로 보였다. 아담한 하동읍은 기차역, 버스 터미널, 도서관, 우체국, 큰 전통 시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소나무 숲과 모래 많은 섬진강을 품고 있는 보기 드문 동네. 여행과 소박한 삶을 좋아하는 자전거 여행자와 잘 어울리는 머물고 싶은 동네다. 

'소설 토지 하동 읍내 시장'이라는 긴 이름의 간판을 한 하동시장에 가서 아침 겸 점심밥으로 섬진강의 명물 '재첩국'을 먹었다. 나이 지긋한 식당 주인장이 말하길 하동시장은 1960~19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굳이 장날이 아니더라도 상인과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한다. 섬진강과 인접한 광양시의 진월·옥곡 사람들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 하동장에 왔다고. 장날 새벽이 되면 장정들은 나뭇짐을 지게에 지고 아낙들은 강바닥에서 캔 재첩을 함지에 이고 왔으며, 강 넘어 건너온 전라도의 물자까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단다. 하동 장에서 지역감정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고.

 

 


▲  하동 주민들의 삶을 잇게 해주는 고마운 조개 '재첩'

ⓒ 김종성

 

 


하동의 대표 음식은 재첩이다. 강물에서 난다 하여 주민들은 '갱조개'라 부른다. 섬진강에서 채취한 재첩은 두말할 필요 없는 하동의 명물이다. 입맛을 다시게 하는 뽀얀 국물이 우러나는 재첩국은 국물 내는 데 흔히 들어가는 된장이나 비법 육수가 필요 없다. 비법이라고 하면 재첩이라는 조개뿐. 소금 간에 산뜻한 향을 내는 부추가 전부다. 의도했지만 의도하지 않은 듯 보이는 무위의 예술 같은 음식이다. 

이렇게 단순하기 그지없는 재첩국이 오랜 시간 변함없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그것이 자연을 담고 있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새끼손톱만 한 작은 조갯살이 귀여워 선뜻 먹지 못하고 사진을 찍으며 유심히 관찰하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가 짓궂은 웃음을 띤 얼굴로 재첩 이름의 한 유래에 대해 알려 주었다. 재첩을 자주 먹으면 '첩이 또 생긴다'고 해서 재첩이라나…. 참 얄궂다.

물 반 모래 반인 하동읍 섬진강가에 도착하니 강변을 따라 자전거 길과 산책로가 잘 나 있다. 산책로를 지나다 보면 아름드리 나무들이 용트림하듯 꿈틀거리며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데 바로 하동 8경 중 하나라는 '하동 송림'이다. 조선 영조 (1745년) 때 강바람과 모래바람을 막으려고 조성한 소나무 숲인데, 지금은 이렇게 멋진 노송 숲이 되어 섬진강 백사장 옆에서 하동 주민의 편안한 휴식처가 돼 주고 있다. 

 

▲  수백 살 먹은 노거수 소나무들이 강을 따라 이어진 하동 송림

ⓒ 김종성

 

 


정말 우람하고 장대한 노거수 나무들이 흐르는 강물 앞에 모여 있는 풍경이 믿음직스럽고 강 백사장과 어우러진 모습 또한 장관이다. 천연기념물(제445호)로 지정될 만했다. 숲 보전을 위해 3년 주기로 개방과 폐쇄 지역을 번갈아 운영한다. 울창한 노송 숲과 맑은 섬진강, 강변 넓은 백사장이 어우러진 절경을 '백사청송(白沙靑松)'이라고 부른단다.

페달을 천천히 밟으며 하류 쪽 하동포구를 향해 백사청송 강변길을 여유롭게 달렸다. 송림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싱그럽다. 자전거를 타고 봄날의 섬진강가를 달려본 이들은 공감할 것이다. 자신에게 두 다리가 있고, 자전거가 있고, 그것을 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자전거를 타다가 너무 힘들어 다리에 쥐가 나고 쓰러질 만큼 힘들었던 길도 있었지만, 자전거를 타면서 너무 좋아 실성한 사람처럼 히죽히죽 웃음이 나오는 곳이 섬진강변이다. 자전거에 달아 놓은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퀸의 노래 'Heaven For Everyone'과도 잘 어울리는 강이다.  

삼국 시대 때 '한다사군(多沙郡)'이라 부르다가 통일신라 경덕왕 때 하동군으로 바꿨다더니, 하동읍 강가엔 정말 고운 모래 벌이 많다. 강 개발로 모래톱이 사라진 채 수로처럼 흐르는 한강 가에 사는 나로서는 더욱 이채롭고 귀하게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  시장, 기차역, 터미널, 관공서 등이 모두 모여 있는 하동읍.

ⓒ 김종성

 

 

 

 

 


강 위의 농사, 재첩 잡이

 

어떤 모래 벌은 작은 어선들이 정박할 정도로 꽤 크다 싶었는데 '조개섬'이란 이름이 붙어 있었다. 모래섬 주변으로 작은 어선들이 둥둥 떠 있고 사람들이 농사를 짓듯 강물 위에서 허리 숙여 재첩을 캐고 있는 풍경이 한창이다.

하동읍 마을 가의 섬진강은 곡성이나 구례에서 봤던 아담한 강이 아니다. 백사장의 풍성하고 고운 모래, 손톱만 한 조개 재첩들이 사는 넓고 맑은 강물…. 바다와 강의 모습이 반반씩 들어 있다. 강물을 찍어 맛을 보면 짠맛이 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언제든 강가로 내려가 발을 담그며 몸을 식히고, 작은 조개껍데기가 카펫처럼 깔린 강변에 앉아 쉬어 갈 수 있어서 좋았다.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데미샘에서 시작해 남도 오백 리 이 땅을 아우르며 흐르는 섬진강. 강은 남도 오백 리 3개 도와 12개 군을 지나 이 땅을 아우르고 흐른다. 섬진강은 자연이 만든 골짜기와 인간이 만든 댐 사이를 힘차게, 때로는 끊길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지나치다 이곳 하동에서 강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고 바다에 이른다. 섬진강이 달리고 있는 거리는 장장 225km. 이름도 정다운 섬진강은 상류는 상류대로, 이곳 하류는 하류대로 강변의 정취가 가장 한국적인 강이 아닐까 싶다.

 

▲  이맘 때 하동 섬진강에선 농사를 짓듯 허리숙여 재첩을 캐고 골라 낸다.

ⓒ 김종성

 


 

▲  긴 나무 막대 손잡이가 달린 '거랭이'로 강바닥을 긁어 재첩을 채취한다

ⓒ 김종성

 

 

 


섬진강의 특성은 중류보다 하류가 더 맑다는 점이다. 섬진강 댐이 가로막은 중류는 늘 수량이 부족해서 오염도가 높지만, 하류로 내려올수록 지리산과 백운산 자락의 풍부하고 맑은 계곡물이 더해지기 때문. 여기에 화개 나루에서 섬진강 하구까지 여울과 모래밭이 이어져 자정 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멈춘듯하기도 하고 흐르는 것 같기도 한 강물 위로 마을 사람들이 모내기 하듯 허리를 숙이고 물질을 하고 있다. 긴 나무 막대 손잡이가 달린 '거랭이'와 쇠로 만든 굵은 체인 '아미', 그리고 플라스틱 소쿠리가 농사 도구다. 허리까지 잠기는 강물 속에 들어가 거랭이로 바닥을 긁어 모래와 함께 재첩을 건져 물에 띄워놓은 소쿠리에 담는다. 조리로 쌀을 이루듯 소쿠리로 강물을 일어서 모래는 버리고 재첩만 남긴다. 

 

▲  모내기가 한창인 하동 악양면 평사리 '무딤이들' 주민

ⓒ 김종성

 

 


이 조개는 모래가 많고 진흙이 적당한 강에서 많이 나는데, 섬진강의 끝자락 하동 지역이 딱 그런 곳이다. 매년 이맘때면 재첩잡이에 나선 강촌마을 사람들이 섬진강 곳곳에서 온종일 이 고단한 '거랭이질'을 한다. 강물이 깊은 곳에서는 배를 이용해 '형망'이라는 그물을 끌어서 잡기도 하지만, 아직도 많은 강촌사람의 노고로 재첩이 잡힌다. 재첩은 섬진강의 민물과 남해의 바닷물이 만나는 지역에 사는 조개이기 때문에 물 때에 맞춰 나와야 채취할 수 있다고 한다. 썰물로 섬진강 수위가 무릎에서 허리 정도로 낮아질 때가 적당하다고. 

재첩은 '강에서 사는 조개'란 뜻으로 하동에서는 '갱조개', '강조개' 또는 '가막조개'라고도 불린다. 추운 겨울, 깊은 모래 속에서 지내다 날씨가 따뜻해지는 5∼6월 무렵 산란을 위해 모래 위로 올라오기 시작하고, 이때 주로 채취하는데 살이 올라 향도 뛰어나서 맛이 가장 좋단다. 바다에서 가까운 하류로 갈수록 재첩 껍데기 색깔이 까만색에 가깝고, 민물이 많아지는 중하류 지역의 재첩은 갈색이라니 재미있다. 하류 쪽의 재첩이 더 높은 값을 받고 당연히 조개 맛도 더 좋다고.  

갓 잡은 재첩은 빈껍데기와 돌멩이가 섞여 있어서 뭍으로 나오면 먼저 이물질을 골라내는 작업을 한다. 모래 속에서 귀한 사금을 채취하듯 조개를 털어내고 골라내는 데 재첩잡이가 놀이처럼 보일 정도로 힘들지 싶었다. 1960~1970년대만 해도 섬진강에는 물 반 재첩 반이라 할 정도로 재첩이 많았다. 

그러나 섬진강 상류에 주암댐과 섬진강댐이 건설되면서 유량이 줄어든 데다, 주변 제철소와 공단에서 공업용수를 빼내며 강바닥이 드러나고 삼각주가 형성되는 등 샛강과 같은 현상을 보이며 재첩 서식지가 현저히 감소했단다. 강변 정자에서 만난 반백의 동네 아저씨, 강가에서 마주친 재첩잡이 아낙네들이 들려준 얘기다. 섬진강에 기대 삶을 잇는 하동 사람들의 모습이 정겨우면서도 찡했다.
 

 

 

 


풍요로운 들녘, 마을 숲, 장터가 있는

 토지

 

▲  하동 평사리 최 참판댁에 가면 백발의 할아버지와 얘기를 나눌 수 있다.

ⓒ 김종성

 

 

 


다시 하동포구와 하동읍을 거슬러 올라 강변 야영장이 있는 악양면 평사리로 향했다. 강물을 따라 이어진 19번 국도변엔 벚나무들이 연이어 늘어서 있다. 4월의 봄날, 수려한 벚꽃으로 사람들을 즐겁고 황홀하게 해줬던 벚나무들은 오뉴월엔 시원한 그늘을 내려줬다. 내리쬐는 햇살 아래 내내 달려가야 하는 자전거 여행자에겐 '벗'나무가 따로 없었다. 하동에서 전남 구례까지 이어지는 왕복 2차선의 좁은 국도지만, 벚나무들과 섬진강 덕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꼽힌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는 섬진강이 주는 혜택을 한몸에 받은 땅이다.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으로 문학관과 소설 속의 마을이 재현된 유명 관광지이기도 하다. 평사리 입구로 접어들면 소설 속 서희가 지키려고 했던 너른 들판이 나온다. '무딤이 들'로 불리는 악양들판 사이 농로 길을 경운기의 속도로 산책했다.

무딤이 들은 밀물 때 섬진강물이 역류하고 홍수가 나면 무시로 물이 드나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순우리말 이름이다. 섬진강 오백 리 물길 중 가장 너른 들을 자랑하는 무딤이들은 무려 83만여 평에 달한다. 옛날 걸인들이 평사리에 들어오면 1년은 걱정 없이 얻어먹고 지낼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그럴듯했다.

 

▲  평사리 최 참판댁에서 보이는 평화로운 '무딤이 들'

ⓒ 김종성

 


 

지리산이 주변을 감싸고 있어서 그런지 들녘 한가운데 서 있는 '부부 소나무'가 더욱 포근하고 다정하게 느껴졌다. 이 소나무가 서 있는 자리는 원래 섬진강 위의 작은 섬이었단다. 알고 보니 평사리 들녘은 강물을 막아 만든 인간의 땀이 절절히 밴 간척 농지였다. 저 넓은 곳을 땅으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사람들의 손길이 갔을지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얼마 안 있어 쌀을 주렁주렁 매달 벼를 심고 있는 모내기가 한창인 평야에 서니 평화를 한껏 느끼게 된다. 인간의 먹거리를 위해 피를 흘리며 희생되는 소, 닭, 물고기들과 달리 쌀은 그런 잔인함과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워서 그런가 보다. 생전의 박경리 선생은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로 세 가지를 얘기하셨다는데 그중 하나가 "마른 논에 물들어가는 소리"였다고 한다. 평사리 들판에 선 내게도 그런 소리를 들라면 논에서 들려오는 개구리 소리. 저마다 목청을 자랑하며 들려오는 개구리, 맹꽁이들의 짝을 찾는 노랫소리가 귀엽기만 했다. 

오르막길을 올라가 관광 안내소 뒤에 자전거를 묶어놓고 하동군에서 관광 명소로 만든 최 참판 댁에 가보았다. 동네 주민들의 이웃 마을처럼 들어서 있는 데다 처마 밑 제비집으로 제비 부부가 새끼에게 모이 주러 들락거리고, 새 작은 축사에 소까지 살고 있어서 인위적으로 꾸며진 관광지 이상의 정겨움이 느껴졌다. 그 언덕 중턱에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이 최 참판 댁이다. 안채, 행랑채, 중문채, 사랑채, 별당 등 옛날 부잣집의 상징인 아흔아홉 칸 기와집이다. 

 

 

▲  악양면 마을을 더욱 정답게 해주었던 처마 밑 제비집

ⓒ 김종성

 


▲  악양면 마을 숲 '취간림'에서 만난 동네 꼬마 녀석들

ⓒ 김종성

 

 


너른 마당에 누워서 쉬기 좋은 편안한 마루와 평상이 있어 좋았다. 마루 위로 웬 백발의 할아버지가 찾아온 관광객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이 동네에서 자랐다는 할아버지는 초등학교 시절 하인에게 업혀 등하교를 했단다. 어느새 아흔 백발이 되었지만, 할아버지는 엊그제처럼 생생하게 마을과 강 이야기를 들려줬다.

사랑채 대청마루에 올라앉으니 평사리의 드넓은 들판이 한눈에 들어왔다. 무엇보다 최 참판 댁의 솟을대문이 인상적이었다. 솟을대문은 행랑채 사이에서 행랑채 지붕보다 높이 솟게 지은 대문으로 사람들이 출입하는 문이다. 솟을대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평사리 들판이 한눈에 펼쳐지고 부부 소나무가 손에 잡힐 듯 보였다. 대문 앞에서 뒷짐을 지고 악양들판을 보고 있자니 소설 <토지>에 나오는 만석꾼이라도 된 기분이다. 악양면 마을 이름이 좀 별나다 했더니, 경치가 너무 좋아 중국의 호남성 악양(岳陽)에 견줄만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  풍성한 모래로 더욱 시원하고 말간 하동의 섬진강

ⓒ 김종성

 


▲  저무는 노을을 바라보며 섬진강 모래벌을 맨발로 걸었다.

ⓒ 김종성

 

 


대청마루에서 수박을 먹고 낮잠도 즐기며 식구들과 함께 이런 곳에서 묵으면 참 좋겠다 싶었는데, 최 참판 댁 내 건물 중 총 4곳에서 한옥 숙박이 가능하단다. 김 훈장네와 김 평산네, 전통 한옥 체험관 위채와 별관 등이 그곳이다. 김 훈장네는 최대 10명이 묵을 수 있는 한옥이고, 김 평산네는 2~4명이 묵을 수 있는 아담한 공간이다. 

앞쪽은 맑은 섬진강. 유달리 넓고 고운 백사장의 정취가 평화롭다. 벚굴, 재첩 조개, 녹차밭, 80만 평이 넘는 황금 들녘, 임금님 진상품이라는 대봉감, 만지 배밭, 수많은 산나물까지 지리산과 섬진강이 내어주는 것들이 많기도 한 하동은 참으로 복 받은 땅이다. 그래서인지 시골 마을이지만 아이들 목소리로 시끌시끌한 초등학교가 마을 한가운데 있는가 하면, 마트에서 마주친 주민이나 아이들 표정이 밝고 섬진강물처럼 말갛다. 

동네 구경을 하며 마을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고려 말에 생겨났다는 '취간림(翠澗林)'이 반긴다. 악양천 물가의 아름답고 그늘 시원한 숲이자 공원이다. 소나무 숲인 '하동 송림'과 달리 500년 묵은 향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이 사는 오래된 마을 숲이다. 

 


▲  시원한 그늘로 자전거 여행자에게 벗이 되준 섬진강변 벚나무

ⓒ 김종성

 

 


숲 가운데 있는 큰 정자에서 선생님과 동네 꼬마 녀석들이 생일잔치를 하고 있었다. 물론 여행자도 초대를 받았다. 왠지 배고파 보이는 자전거 여행자에게 흔히 일어나는 특권이다. 정자에 앉아 참새처럼 말을 걸어오는 아이들 받아주랴, 맛있는 생일 음식 먹으랴 바빴다. 눈이 초롱초롱한 한 녀석이 다가와 아버지가 펜션을 한다며 꼭 들려달라고 은근히 말을 건넬 땐 기특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악양면 사는 아이들은 눈이 마주쳐 손을 흔들면 같이 손을 흔들고 웃으며 '안녕하세요.' 인사를 한다. 인생도 세상도 뭐 그리 나쁘지 않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동네다.
 

 

 

 

 


섬진강변의 낭만적인 하룻밤

평사리 공원

 

 

토지 길의 끝인 화개장터까지 갔다가 땅거미가 질 무렵 다시 강변 19번 국도를 달려 야영장이 있는 평사리 공원으로 돌아왔다. 코앞에 지리산이 보이고, 강변길은 험한 오르막 하나 없이 순탄하게 펼쳐져 있었다. 푸근하고 넉넉한 섬진강을 닮았다. 강은 전라도 구례를 지나 경상도 하동 너머 전라도 구례로 이어졌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아랫마을엔 하동 사람이 살고, 윗마을엔 구례 사람이 산다. 경상도 땅, 전라도 땅과 경상도 사람, 전라도 사람을 나누는 인간의 편견이 부질없어 보였다.  

캠프장이 있는 평사리 공원을 들어서면 입을 동그랗게 말고 삐죽 고개를 내민 해학적인 표정의 장승 한 무리가 반긴다. 섬진강 둔치를 따라 조성된 강변공원. 섬진강의 맑은 물과 하얀 백사장이 햇살에 반사돼 눈이 부셨다. 야영장 앞에는 넓은 모래 벌과 맑고 깨끗한 섬진강이 흐르고 있고, 지리산과 백운산 등 주변의 풍광도 뛰어나다. 

섬진강은 모래가 많아 다사강(多沙江), 사천(沙川), 모래가람 등으로도 불렸다. 560여 리(약 220km)에 이르는 섬진강에서도 모래가 가장 많은 곳은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다. 평사리 공원 앞 모래밭은 웬만한 해수욕장의 백사장보다도 넓다. 아이들과 함께 거닐고 뛰고 뒹굴기에 딱 좋겠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야영장이 아닐까 싶다.


 

 


▲  벚꽃들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던 벚나무, 이젠 그늘로 여행자의 벗이 됐다.

ⓒ 김종성

 


▲  넓고 아름다운 섬진강변에 야영장까지 갖춘 평사리 공원

ⓒ 김종성

 

 


하동군에서 운영하는 야영장이라 비교적 저렴하고 전기 충전대, 식수대, 샤워장 등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강변 언덕에 잔디를 깔아 오토캠핑이 가능한 공간과 식수대, 바비큐 그릴, 농구, 족구장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어 가족들과 함께 야영할 수 있다. 

예전엔 '개치 나루터'였다는 강가의 수풀 사이로 섬진강의 푸근하고 수수한 강변의 정취를 보여주는 풍경이 이어졌다. 줄무늬가 섞인 하얀 백로가 강가에 홀로 서 있는 모습이 한갓지고 멋스러웠다. 섬진강은 화려하거나 빼어나지 않다. 오히려 수더분하고 밋밋하다. 그게 섬진강이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와서야 자꾸만 강이 생각나고, 비로소 섬진강이 오래된 강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듯, 곱게도 저무는 노을을 바라보며 섬진강 모래 벌을 맨발로 걸었다. 무릇 강변이란 이런 게 진짜 모습인데 내가 사는 동네의 한강도 강이지만 한가로이 발을 담글 수 강변이 없다는 게 참 아쉬울 뿐이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강가로 들어가 모래에 다리를 파묻고 앉았다. 강물만큼 시원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뺨을 스쳐 지나갔다. 부지런히 페달질을 하느라 쌓였던 하루의 피로가 유유히 흐르는 강에 실려 저 멀리 바다로 사라졌다. 

할머니까지 모시고 한 가족이 놀러 온 이웃 야영객과 함께 저녁밥을 먹고 나니, 어둠이 드리워진 강물 위 하늘에 반짝이는 구슬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강가로 나와 별빛 아래 야밤 산책하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몸과 마음이 절로 유유자적(悠悠自適)해지는 고장이요, 강이다. 

 

 

경상남도>하동군
김종성>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ID 내용 공감하기
- 작성된 의견이 없습니다.
이름 비밀번호
도배방지키
 37313922
트위터로 보내기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글확대 글축소 스토리스크랩 스토리공유 프린트하기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 수로왕비릉 (2015-10-08 10:44:30)
가천 다랭이마을에서 일출을 만나다 (2015-09-09 13:3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