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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인각사 아미산을 오르다

군위 여행
등록날짜 [ 2015년10월16일 09시56분 ]

 

 

 

 

 

 

[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 양지리 66-7]    

군위 아미산 가는 길에서 머물다

 

인각사 - 군위댐 - 아미산 앵기랑바위

 

 

 

 

 

 

 

군위군으로 향하다

 

 

▲ 아미산으로 오르는 입구에서 만나는 암봉

 

 

▲ 군위댐

경북 군위군 인각사를 찾아 지방도 908번 여행을 하면서 인각사 앞 위천을 따라 오르면 어떤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까 궁금하여 당시 알지도 못한 오지여행을 하기로 했는데, 군위댐 공사로 인하여 길이 훼손되고 돌고 돌아 오늘날 수몰 현장을 스쳐오다가 길가에 우뚝 서 있는 바위산을 올려다보기만 했었다 이후 인각사를 지날 때마다 암봉이 우뚝 서 있는 산이 궁금했고, 그 산이 아미산(737m)이란 걸 알았다.

여름이 지나가면서 가을 초입은 제법 쌀쌀해졌지만, 단풍은 아직 먼 이야기였고 잠시 틈을 이용하여 암산으로 알려진 아미산 초입 암릉구간만 다녀오자며 길을 열었다. 경부고속도로를 경유하여 영천IC에서 내려 다시 국도와 지방도를 번갈아 탄 후, 첫 번째 여행지인 인각사에 도착한다.

 

 

 

 

 

 

인각사에 머무르

 

 

▲ 군위 인각사 전경

 

 

▲ 법당 앞 탑과 석등

사적 제374호 인각사에 들어선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로 신라 선덕여왕 11(642) 의상대사가 창건하고 인각사라 부른 후 고려 충렬왕 10(1284) 일연성사가 중창하고 삼국유사를 저술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창건기록은 신빙성이 다소 떨어져 인각사 발굴유적을 통해 통일신라 시대 창건 후 이색이 저술한 무무당기에는 본당을 중심으로 탑과 회랑을 두었으며, 이선당, 무무당이 존재하였다 전하지만 지금은 몇 채의 전각이 전부다. 통일신라 창건 후 고려, 조선을 거쳐 오면서 점점 쇄락한 것으로 보인다.

 

인각사에는 그 흔한 일주문도 없다. 일주문이 없다 보니 아직 사천문, 해탈문도 하나 없어 지방도를 달리다 그냥 쑥 들어서면 절간이다. 그러나 여느 사찰과는 달리 상당한 규모의 절터로 인하여 차량 주차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주차장에 주차한 후 사찰 여행을 하려면 우선 만나게 되는 것이 절터에서 수습된 석재들이다.

 

 

▲ 인각사 발굴을 통해 수습된 석재

 

 

인각사 발굴조사 출토 부재에 관한 안내 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곳에 전시된 석재는 인각사(사적 제374)를 정비하려고 발굴하는 과정에서 수습된 것으로, 인각사 창건(642)부터 고려시대까지 인각사에 사용된 석재 중 중요 부재를 모아놓은 것이다. 1992년부터 2009년까지 시행한 발굴조사 결과, 현 인각사 동쪽에서 통일신라시대 중심 사역의 일부가 확인되었으며, 고려시대 후기부터 중심 사역이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인각사가 삼국유사를 저술한 보각국사 일연선사의 '하안소(1284~1289)'로 지정되면서, 통일신라시대에 정교하게 다듬어진 석재를 활용하여 건물을 증축하거나 개축한 것으로 보이며, 일부 고려시대에 제작된 석재도 확인된다. 전시된 부재는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제작된 연화문 석등 대석을 비롯한 심초석 법당초석 원형초석 기단석 등이다. 이 중 2005년 극락전 해체과정에서 확인된 심초석은 통일신라시대 인각사에 목탑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실증적 자료이다.”

 

 

 

 

 

 

군위인각사삼층석탑

 

 

▲ 인각사 삼층석탑(麟角寺三層石塔 문화재자료 제427호)

 

 

극락전 앞에 세워져 있는 삼층석탑으로 노반부까지의 높이가 3.35m이고 하대갑석 1변의 폭은 1.97m이다. 탑에서 면석의 우주 탱주의 모각이 도중에서 끝나는 것과 상단의 받침을 위한 턱을 마련한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다. 탑은 고려 전기 양식이 가미된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양식을 잘 계승한 탑으로, 3층 상륜부가 온전한 상태로 올려져 있다.

 

 

 

 

 

 

보각국사비명과 부도탑

 

 

▲ 인각사로부터 조금 떨어진 위치에 있다.

 

 

인각사에서 조금 떨어진 도로변에 2006년 재현된 보각국사비명과 함께 부도탑이 자리 잡고 있다. 보조국사비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국사전 뒤편 비각 속에 일연스님의 비가 모셔져 있다. 보각국사정조지탑과 함께 보물 제428호로 지정되었다. 비석의 재질은 점판암이며 지금은 비록 깨어져 본모습을 짐작하기 힘들지만,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하여 만든 것이라 멀리 중국과 일본에까지 소문이 날 정도였다.

 

스님이 입적한 지 6년만인 충렬왕 21(1295)에 세워졌는데, 당대의 문장가 민지가 글을 짓고, 글씨는 일연스님의 제자인 죽허가 칙명을 받고 명필 왕휘지의 행시를 모았고, 또 다른 제자 청진이 세웠다. 비의 앞면에는 일연스님의 행적과 추모의 정을 담았고, 뒷면의 음기에는 비를 세운 경위와 다비식 때의 영험담과 더불어 일연스님의 문도들의 이름을 새겨넣었다. 비명 맨 끝머리를 민지는 다음과 같은 구절로 맺었다. ‘겁화가 모든 것을 살라 산화가 다 재가 되어도 이 비석은 홀로 남아, 이 글은 마멸되지 않으리.’ 그러나 왕휘지의 글씨를 탐낸 많은 이들이 앞다투어 탁본을 해가는 통에 훼손이 심해졌고, 임진왜란 때는 왜병들이 파손을 자행했다는 기록도 전한다. 다행히 여기저기 전해지는 탁본을 바탕으로 2006년 일연선사 탄생 800주년을 기념하여 재현한 비석이 지금 절 동쪽에 있다.”

 

 

 

 

 

인각사 석불좌상

 

 

인각사석불좌상(시도유형문화재 제339)

 

 

국사전 앞에 있는 불상으로 하나의 돌에 불상과 주형거신광배를 갖춘 형식 및 오른손은 촉지인을, 왼손은 선정인을 취하고 작은 보주를 올려놓은 결좌부좌하고 있는 10~11세기 불상 형태로 전체높이 153, 불두높이 53.5, 어깨너비 64, 무릎너비 97.5이다. 석불은 가늘고 길게 표현한 눈과 사실적 처리를 통해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는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각사 보각국사탑 및 비

 

 

▲ 인각사 보각국사탑(보물 제428호)

 

보조국사 일연스님의 사리탑과 행적을 충렬왕 21(1295)에 기록한 탑비로, 자연석 바닥돌 위 8각의 아래 받침을 두고 위로 팔각받침을 올려놓은 형식으로 동물과 연꽃을 새기고 보각국사정조지탑이라 새겨놓았다. 특히 국내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중대석에 12지신을 새겨놓았다. 

 

 

 

▲ 보각국사 비(보물 제428호)

 

▲ 보호각 속에 있는 보각국사 비

▲ 보각국사 비 깨어진 일부분만 남아 있다.

 

 

탑비는 제자였던 법진이 세운 것으로, 문장가 민지가 왕명에 의하여 글을 짓고 글씨는 진나라까지 가서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하여 세웠다. 그러나 훼손이 심해 글의 판독이 어렵지만, 비문이 오대산 월정사에 남아 있다. 총고 2.42m의 보각국사정조지탑은 인각사 동쪽방향 2km 지점에 있던 곳을 도굴한 후1962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왔다.

 

 

 

 

 

 

 

인각사 미륵당 석불좌상

 

 

인각사 미륵당 석불좌상(경북 문화재자료 제426)

 

 

거의 파손되어버린 불상을 다시 결합한 것으로, 전체높이 124, 불두높이 54.5, 어깨너비 95, 무릎너비 70으로 미륵당에 모셔져 있다. 미륵당은 인각사 주요 건물과는 다소 떨어진 부도탑으로 가는 도로변에 2001년 새로 조성한 절집으로 있다가 최근 실내로 옮겨졌다.

 

 

▲인각사 중심법당 국사전

▲ 인각사 산신당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은 우리나라의 맥을 끊기 위해 인각사 중심에 도로를 개설하였다. 인각사의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지만, 발굴을 통해, 동서 180m, 남북 150m 규모로 추정 및 조사를 통해 통일신라 귀면와 토기 막새 출토를 통해 창건연대가 확인되고 있다.

 

 

 

 

절집에 있는 당우로서는 국사전, 명부전, 신령각, 미륵당 그리고 일연스님의 일대기를 알려주는 전시관이 있다. 국사전은 극락전 발굴 후 해체해 2001년 중심법당으로 새롭게 변화하면서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모시고 있으며, 명부전은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조선시대 건물로 조선 숙종 연간에 건립되었다 전해진다. 정면 3, 측면 3칸의 장방형 맞배지붕을 하고 지장보살과 명부시왕을 모시며, 인각사 미륵당을 두고 바깥에 있던 미륵당을 옮겨 놓았다.

 

불교유적으로 인각사보각국사탑및비(보물 제428), 군위인각사지(사적 제374), 군위인각사석불좌상(시도유형문화재 제339), 군위인각사미륵당석불좌상(문화재자료 제426), 군위인각사삼층석탑(문화재자료 제427) 등이 있다.

 

 

 

 

 

 

일연공원과 군위댐

 

 

▲ 군위댐 수문 아래 일연공원  산 마지막 능선 봉우리에서 인공 폭포가 쏟아진다

 

 

인각사를 출발하여 조금만 더 들어서면 군위댐에 도착한다. 올해 얼마나 가뭄이 들었는지 댐을 보면 알 수 있을 만큼 저수지는 물을 가득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군위댐 주변에는 일연공원과 함께 잠시 쉬어가도 좋은 전망대를 두고 있으며, 댐 주변 풍광이 좋아 발목을 붙잡는 곳이기도 하다.

 

 

 

▲ 군위댐 조형물

 

인각사를 출발하여 아미산가는 중간 군위댐을 스쳐 간다. 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 학성리에 자리한 군위댐은 낙동강 지류 하천인 지방1급 하천인 위천에 조성한 댐으로, 20048월 착공하여 2010121일 준공된 댐이다.

 군위댐 또는 화북댐으로 불리는 이 댐은 1986년 중규모 다목적댐으로 건설 계획하여 2003년 설계를 마쳤다.

 

 

 

댐은 경상북도 중부지역인 군위군, 의성군, 칠곡군에 생활용수 및 공업, 농업용수로 공급하고 있으며, 콘크리트 포면차수박형 석괴댐으로 길이 330m, 높이 45m이다. 정식 명칭은 군위호이며 연간 발전용량은 총 2,870M Wh이다.

 

 

 

 

 

 

아미산 암봉을 오르다

 

 

▲ 아미산 암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출발을 위해 간단한 차림으로 등산로 진입로를 하산하는 분께 물어보니, 다리를 건너 이정표를 따라 오르면 된다며 이곳이 미니 설악산이라 불릴 만큼 바위지형이 아름답다고 하신다. 전남 진도 동석산이 들으면 조금은 섭섭할 군위 아미산을 향해 첫 발을 딛는 순간, '아. 쉽지 않은 길이 이어지겠구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초입부터 단체객 등산화 부리에 잘게 파쇄된 돌이 흡사 도로에 콩을 뿌려 놓은 듯 보행이 조심스럽다.

 

아미산은 강원도 홍천군, 보령시, 순천시에도 같은 지명의 산이 있다. 일연 스님과 관련이 있는 인각사와 인접한 이곳 아미산으로 유추해 볼 때 중국 4대 불교 성산(오대산, 구화산, 보타산, 아미산) 중 한곳인 사천성에 자리한 아미산의 이름을 빌려오지 않았을까 싶다.

 

 

▲ 주차장에서 바라본 암봉 전경

 

 

주차를 끝내고 화장실을 다녀온 후, 구름다리를 건너 곧장 나무계단을 따라 수직 상승한다. 첫 촛대봉까지 3~5분이면 넉넉할 만큼 시작이 곧 능선길이며, 오르기 시작하자마자 산의 고도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아기자기한 암봉구간이 약 1km 정도 이어진다.

 

 

 

 

 

주차장에서 올려다본 아미산은 그저 그런 봉우리 두 개가 하나의 골을 이루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가볍게 암릉구간만 다녀오리라 생각하고 올랐는데 생각보다 장난이 아니다. 힘든 게 아니라 발을 딛고 전진하기 어려울 만큼 잔돌이 계속 미끄러웠고, 등산로가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아미산을 두고 인근 인각사에 머물던 일연스님이 삼국유사를 저술하며 이 산에 올라 높은 산 위에 또 하나의 높은 산이라 할 만큼 아미산을 대표하는 촛대봉과 앵기랑바위는 아래서 보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선다.

 

 

 

 

아미산 등산은 가장 긴 코스로, 아미산주차장을 출발해 무시봉을 거치고 아미산을 돌아 장곡자연휴양림을 거치는 8.3km 등산로와 아미산 주차장에서 절골삼거리를 거쳐 병풍암삼거리, 대곡지로 돌아오는 5.7km 코스 그리고 가장 간편한 아미산 주차장을 출발하여 큰작사골삼거리를 들러 대곡지로 돌아오는 4km 구간이 있다. 필자는 동행인을 잘못 동반한 탓에 암릉구간이 지나자마자 다시 되돌아와야만 했다.

 

 

▲ 촛대봉 능선에서 바라 본 앵기랑 바위

 

 

촛대봉에 올라서면 또 하나의 암봉이 길을 막는다. 단단한 암석지형이라며 약간의 간 떨림을 스릴로 여기고 촛대봉 정상에 우뚝 서고 싶지만, 지형이 매우 불안정하여 그저 올려다보기만 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전에 올랐었는지 암봉 위 소나무에 묶여있는 리본이 어서 올라오라며 유혹한다. 허나 내 능력 밖의 일이라 여기며 정상공략은 피한다.

 

 

▲ 주차장을 출발하여 오르는 제2봉으로 향하는 가파른 길

 

▲ 촛대봉 방향으로 바라 본 전경

 

▲ 앵기랑 바위가 조망된다

 

 

촛대바위를 지나 작은 능선의 소나무 숲을 헤쳐나가니 이번에는 더 큰 바위가 버티고 있다. 나중에 그 봉우리가 앵기랑바위라는 걸 알았다.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라인 밖을 벗어나 잠시 올라보니 경사도가 위험한 게 아니라 역시 잔돌이 계속 보행을 방해하여 다시 길로 내려선 후 바위산을 우회하기로 하였다. (당연히 우회를 하는게 정답이다.)

 

 

 

 

 

앵기랑 바위는 아미산 아래 양지리마을에서 보면 애기동자승을 닮아 앵기랑바위라 불렀다지만, 석산리에서 바라보면 한 마리의 코끼리 형상이다. 학암리 마을에서는 이도 저도 아닌 그저 큰 왕바위로 보여 왕암바위라 제각기 불렀지만, 등산 안내는 앵기랑바위로 표기되어 있다.

 

 

▲ 앵기랑바위는 길이 험해서 우회하여야 한다.

 

앵기랑바위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해발 365m로 마을에서는 이 암봉과 아미산폭포, 마당바위, 송곳바위를 통틀어 아미산이라 부르고 있다. 그 유래로 삼국유사를 저술하신 일연국사의 시에서도 나타났듯이 높은 산 위에 또 하나의 높은 산이 있다는 의미에서 아미로 불리게 되었다.

 

양지리 마을에서 보면 애기동자승의 모습을 띠어 앵기랑바위(석산리: 코끼리바위, 학암리: 왕암바위)로 불려지는 바위는 양지리를 내려다보는 방향으로 마을에서는 6·25 동란, 월남전 참전용사의 인명피해 및 마을의 흉사가 없도록 지켜주는 수로신의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 앵기랑 바위 아래 우회도로  낙석주의가 필요한 곳이다.

 

▲ 앵기랑바위 오르막길에서  절골삼거리는 1.5km, 큰지사골삼거리는 1.2km 이다.

 

▲ 앵기랑 바위에서 출발하여 마지막 암봉을 바라본다.

 

 

앵기랑 바위에서 마지막 암봉까지 약간의 위험한 등산로가 이어진다. 큰 볼 것은 없는 마지막 암릉구간이지만, 정상 아미산으로 향하거나 절골로 내려서는 갈림길로 향하는 길이기도 하다. 능선을 통과할 때마다 기묘한 소나무 모습에 자연이 만든 분재 솜씨를 감탄해야 했다. 기암괴석이 쉬어가거나 발걸음을 더디게 만드는 아찔한 구간이 눈앞에 펼쳐져도 마냥 즐거운 등산길 임은 분명하다.

 

 

 

 

아미산(峨嵋山, 737.3m)으로 향하는 주차장으로부터 약 1km 남짓한 구간은 암릉구간이며, 암릉구간이 끝나는 지점부터는 암릉과는 전혀 상관없는 육상구간이 하산할 때까지 이어진다. 필자도 시간이 넉넉하였다면 전 코스를 돌아볼 생각이었지만, 계속 10km가량 풀가동하며 산을 찾은 터라 이번에는 암봉구간 확인만 하는 차원에서 등산을 마무리하기로 하였다. 군위군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으로 산행 초반 바위 연봉이 산행의 백미라는 칭송이 아깝지 않았다.

 

 

▲ 마지막 암봉을 오르는 곳에 나무데크 계단이 이어져 있다.

 

▲ 마지막 암봉을 오르며 바라 본 앵기랑바위

 

▲ 마지막 암봉으로 향하는 길이 위험하다.

 

▲ 마지막 암봉 끝자락

 

 

팔공산의 산세가 끊어질 듯 이어져 형성된 비경을 자랑하는 곳으로 우뚝 솟은 기암이 연이어 있어 이 바위돌이 군사들의 형상을 닮아 예부터 아미산 지력의 마을들은 전쟁과 화재로부터 안정하였다 한다.

 

 

 

 

 

 

아미산은 비단 산 이름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경복궁 왕비가 머무는 교태전 후원에 만든 작은 동산도 아미산이다. 군위군 아미산은 첫 제1봉으로 송곳바위(촛대봉)-2-우회산길-3봉 앵기랑바위(365m)-4봉 순으로 이어지며. 4봉이 끝나면 육산이 이어져 조금은 답답한 등산로를 따라 아미산까지 오르지만, 굳이 전망도 없는 아미산까지 갈 필요 없이 큰작사골 삼거리에서 주차장으로 회귀하면서 방금 스쳐 간 암릉구간을 조망하며 하산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 지방도에서 바라 본 전경

 

 

주차장-600m-앵기랑바위-1.2km-큰작사골삼거리를 만나게 되는데 정상을 거치지 않고 전망을 보며 하산하려면 큰작사골삼거리에서 능선을 타고 내려서야 하며, 만약 큰작사골삼거리를 통과하여 절골삼거리에서 하산하면 계곡으로 떨어지며 조망권은 없다. 만약 절골삼거리로 빠졌다면 다시 큰작사골삼거리 갈림길 능선길을 20여분 올라야 제대로 된 조망을 할 수 있으므로 전망을 놓치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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