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
메인홈 > 지역여행 > 경상권 > 대구
대구
울산
부산
경북
경남
트위터로 보내기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글확대 글축소 스토리스크랩 스토리공유 프린트하기

진한 역사가 느껴지는 대구 근대문화골목

대구 100년의 역사를 거닐다
등록날짜 [ 2015년12월04일 18시04분 ]

 

 

 

 

 

진한 역사가 느껴지는

대구 근대문화골목 

 

 


▲  3.1운동 당시의 급박했던 숨결이 느껴지는 90계단 길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대구'에 대해 물어보면 대부분 팔공산이나 너무 더워서 생겨난 '대프리카('대구'와 '아프리카'를 합친 말로, 대구의 여름이 아프리카만큼이나 덥다는 신조어)' 외에는 별로 떠오르는 것이 없다 말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대구는 인천, 군산과 함께 대표적인 근대문화유산 도시다. 대구시 곳곳에 역사의 이야기가 켜켜이 쌓인 골목길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뾰족집'이라 불리던 고딕 양식 건축물 '계산성당', 미국 선교사가 살았던 나지막한 언덕과 고목들, 3.1운동의 숨결이 흘렀던 계단 길 그리고 민족 저항 시인이 살다 간 고택까지. 과거의 흔적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그 길을 걷자, 어쩐지 대구의 모습이 새롭게 다가왔다. 이처럼 근대 대구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여러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대구의 100년 역사를 느낄 수 있다.

대구에 이렇게 많은 근대문화유산이 남아 있는 이유가 마음 아프다.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전투에서 수 많은 젊은이들이 피 흘리며 사수하여 공산군의 남하를 끝까지 막아낸 덕분에 6.25전쟁의 참화를 겪지 않은 지역이기 때문이라고.

 

 

 

 

 

 


대구의 옛 정서가 진하게 남아있는

진골목

 


반월당 네거리 주변은 대구에서 가장 번화가이다. 대형 쇼핑센터를 비롯해 백화점, 고층 빌딩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한일극장 네거리 쪽으로 걷다 중앙시네마 옆 조그만 골목으로 들어서면 만날 수 있는 진골목은 거대한 빌딩들 사이에 작은 금처럼 나 있다. 골목 초입은 동성로의 번잡한 분위기와는 딴판이다. 골목으로 들어서면 신기하게 사위는 고요해지고 마치 어느 소읍의 골목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든다. 

좁은 골목 사이를 지탱하고 있는 시멘트 담장은 칠이 벗겨져 있다. 붉게 녹이 슨 자전거가 전봇대 옆에 서 있고, '달세 방'을 홍보하는 여관이 여행자를 유혹하듯 골목 끝에 자리하고 있다. 골목 안으로 불과 몇 발짝 내디뎠을 뿐인데 반월당 네거리에 가득했던 도시의 소음이 사라지고 아늑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문득 이젠 추억이 되어버린 서울 종로의 피맛골이 떠올랐다. 100여 미터의 길지 않은 골목이지만, 무척 길게 다가오는 골목길이다. '진골목'은 '긴 골목'이라는 의미다. 경상도에서는 '길다'를 '질다'로 발음하는데, 이 때문에 '긴 골목'이 '진 골목'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  오래된 골목길 풍경이 새삼스럽다

 

 

 

진골목은 100여 년을 훌쩍 넘는 내력을 지니고 있다. 1905년 대구읍성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을 만큼 대단했던 골목이었단다. 이 골목은 근대 초기 달성서씨 부자들이 사는 동네로 알려져 있다. 대구 최고의 부자였던 서병국을 비롯해 그의 일가들이 모여 살았다고. 오늘날 그들이 살던 대 저택에는 육개장집, 보리밥집, 숯불갈비 등 진골목 식당들이 들어섰다.  

느린 걸음으로 골목을 지나가는 양산 쓴 노인들의 뒷모습이 정다워 어디로 가시나 '미행'을 해보았다. 할아버지들이 찾아가는 곳은 바로 진골목의 명소라고 할 수 있는 다방. 도시의 젊은이들이 여름날 아이스커피를 마시러 커피숍에 들어가듯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다. 왠지 나이 제한에 걸릴 것 같았지만 용기를 내어 한 할아버지 뒤에 바짝 붙어 따라 들어갔다. 진골목의 다방에서는 재미있게도 커피가 나오기 전 먼저 주는 것이 있다. 바로 '센베이'라 부르는 과자. 근대시절 개항과 함께 일본을 통해 들어온 오래된 과자다. 동기로는 단팥빵과 카스텔라가 있다. 

유년 시절 추억을 떠올리는 과자를 다방에서 커피와 함께 먹자니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내 웃음을 보았는지 예순이 넘었다는 다방 마담이 어디서 왔느냐며 말을 건넸다. 다방이라고 해서 낡고 불편할 줄 알았는데, 분위기가 고풍스럽고 참 편하다고 했더니 좋아라 하시며 내 자리 건너편이 전두환 전 대통령이 애용했던 자리, 저곳이 전 국회의장 ㅇㅇㅇ가 주로 앉았던 자리라며 자랑스레 알려 주신다. 생각지도 못한, 아니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인물이 내 앞자리 단골이었다니. 나와 내 집안에 피해를 준 사람은 아니지만, 군인들을 동원해 국민을 수백 명이나 학살하고도 사과는커녕 국가의 경호와 정치인들의 세배를 받으며 잘 살아가고 있는 이. 친일파만큼이나 이 나라를 퇴행시키고 있는 상징적인 사람이 아닌가. 20여 분 진골목 다방에서의 경험은 대구 어르신들의 정치적인 정서를 실감하게 해주었다. 

 

 

 


▲  진골목 다방에선 커피와 함께 이런 옛 과자를 준다

 

 


 

 

 

진골목 식당에서 늦은 점심으로 돼지국밥을 먹었다. 가게는 좁으나 혼자 오는 손님도 마다하거나 내치지 않는 넉넉한 인심이 있는 곳이다. 음식을 주문하자마자 골목집 식당 아주머니가 신명 나게 뚝배기에 토렴질을 한다. '토렴'은 밥이나 국수에 뜨거운 육수를 부었다 따랐다 하며 국물이 밥알에 잘 배어들게 하는 것으로, 한자어 퇴염(退染)에서 나왔다. 

뚝딱 밥 한 그릇 말아 나오는데 보기만 해도 속이 든든하다. 음식 메뉴에는 국밥과 '따로국밥'이 따로 있다. 어차피 밥을 말면 똑같은데 국밥과 뭐가 다른지 평소에 궁금했던 걸 슬쩍 물어보았다. 따로국밥은 대구에서 나와 온 나라로 퍼진 우리 토속음식으로, 경상도 양반들이 국밥을 먹을 때 토렴해서 말아 먹는 국밥이 점잖지 못하다 해서 밥을 따로 내놓게 되었단다. 또 다른 대구의 음식이랄 수 있는 '육개장'엔 원래 개고기를 넣었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았다. 비싼 소고기, 돼지고기 대신 흔히 개고기를 먹던 지난 시절을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겠다. 

 

  

 

 


대구읍성이 품었던

진골목, 약전골목, 염매시장

 

 

진골목은 물 흐르듯 자연스레 대구 중구청이 조성한 근대 골목과 이어졌다. 이곳에서는 한의학 박물관이 있는 약령시 골목, 염매시장, 민족시인 이상화·서상동 고택, 제일교회·계산성당, 3.1만세 운동길, 선교사들이 살았던 청라언덕 등이 골목길을 따라 나타난다. 

골목길 가의 게스트하우스 또한 한옥을 보수해 지은 'ㄱ'자형 한옥으로, 외가에 온 듯 포근해 묵어가고 싶게 했다. 1920년대 일본인이 지은 적산가옥을 살린 카페도 눈길을 끌었다. 광복 이후 한국인들이 고치며 산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어 카페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골목길과 건축물들은 모두 사라진 대구읍성 내부에 있었다. 임진왜란 때 무너진 대구 읍성은 영조 12년(1736년) 석 성으로 다시 축조됐다. 대구 읍성이 완전히 헐린 것은 1906년의 일. 당시 관찰사 서리로 있던 박중양이 일본 거류민단의 철거 건의를 받아들여 조정의 허락도 없이 성을 허물어버렸다. 

1906년 11월 12일 <대한매일신보>에는 '읍성을 허물고 나온 성돌 하나에 엽전 한 냥씩을 받고 일본인에게 팔았다'는 기사가 나온다. 일제는 허망하게 헐린 성곽 자리에 길을 놓았다. 대구의 4성로인 동성로, 서성로, 남성로, 북성로가 그곳이다.

 

 


▲  지나가기만 해도 병이 낫는다는 약령시 골목

 

 


▲  '염가 판매'라는 의미를 가진 염매시장

 

 

 

약전골목 또한 없어진 대구읍성의 성벽 위에 만들어진 골목이다. 성벽이 헐린 남쪽 자리에 경남감영 근처에 있던 약재상들이 옮겨오면서 지금의 약전골목 혹은 대구약령시장이 만들어졌다. 서울 경동시장이 골목 골목에 있는 것에 비해 이곳은 길을 따라 좌우로 늘어서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조달과 연락의 거점이 되어 지속적인 탄압을 받다가 1941년에 결국 약령시가 폐쇄된다. 광복 후, 약령시가 재개하였으나 1950년 한국전쟁으로 다시 폐지되었다. 6.25 전쟁 이후 변모된 모습으로 형성된 한약재 상설시장이 현재의 남성로 일대 약전골목의 골격을 갖추게 되었다.

 

한의원과 약방이 빼곡히 들어선 약령시 골목은 꼭 천천히 거닐며 지나가야 한다. '걷는 것만으로도 병이 낫는다'는 대구 시민의 오랜 경험담이 담겨서다. 정말 거리를 지나가기만 해도 한약재 냄새가 진하게 풍겨 나왔다. 골목의 350여 년 역사가 담긴 한의약 박물관도 꼭 가볼 곳이다. 한의약박물관에선 다양한 약재를 직접 만져보고 향을 맡으며 체험할 수도 있어 좋았다. 

약재 향에 취해 보약 한재를 먹은 듯했던 약령시 골목을 지나면 이름도 독특한 염매시장이 나온다. 사람 두 명이 겨우 지날 만한 통로를 사이에 두고 떡집과 수육집, 건어물집, 잡화점, 이유식 가게가 늘어서 있다. 대구 서민들의 정서가 흠뻑 묻어나는 시장이다.  옛날 재래시장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염매시장의 '염매'는 재미있게도 '염가 판매'를 줄인 말이란다. 그만큼 저렴하다는 뜻이겠다.

가게 입구에 문짝도 없는 '성주상회' 주인장 말이 대구뿐만 아니라 경북 전역에서 물건을 떼러 왔을 정도로 큰 시장이었단다. 경상도 지방의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 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근처에 백화점이다 마트다 대형쇼핑몰이 생기면서 시장이 점점 줄어들었다고…. 

정말 염매시장 건너편엔 대형 쇼핑몰이 하늘을 가릴 듯 서 있다. 그래도 여전히 결혼식 이바지 음식과 혼수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발길은 꾸준하다고. 염매시장 떡전골목 결혼식 이바지 가게는 지금 10여 곳이 남아 그 이름값을 하고 있다.

 

 


▲  서상돈, 이상화 고택은 집안까지 둘러볼 수 있다

 


 

 

대구의 역사가 오롯이 녹아든

근대 건축물들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섰던 서상돈의 고택, 민족시인 이상화의 고택을 지났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부터 1908년 사이에 고종황제로부터 천민에 이르기까지 담배를 끊고 금가락지를 모아 '일본에 진 빚을 갚자'며 벌인 국권 회복운동이다. 1904년의 고문정치(顧問政治) 이래 일제는 한국의 경제를 파탄에 빠뜨려 일본에 예속시키려는 방법으로 한국 정부로 하여금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도입하게 했다. 통감부는 이 차관을 한국민의 저항을 억압하기 위한 경찰기구의 확장 등 일제 침략을 위한 투자와 일본인 거류민을 위한 시설에 충당하였다. 1907년 한국 정부가 짊어진 외채는 대한 제국의 1년 예산과 맞먹는 1,300만 원이나 되었다. 대한 제국으로서는 갚을 수 없는 금액이 되었던 것. 

국채 보상 운동은 이와 같은 경제적 예속 정책에 저항해 일어났다. 국민의 힘으로 국채를 갚고 국권을 지키려는 국채 보상 운동은 대구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퍼졌다. 이를 기념한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이 있는 대구는 구한말 국채보상운동이 진행됐던 곳이자,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한 곳 중 하나이다.

서상돈은 일찍이 독립협회 회원과 만민공동회 간부로서 자주독립 운동에 참여해 온 인사였다. 그는 김광제와 함께 1907년 2월 21일 자 <대한매일신보>에 "국채 1,300만 원은 바로 우리 대한제국의 존망에 직결되는 것으로 갚지 못하면 나라가 망할 것인데, 국고로는 해결할 도리가 없으므로 2천만 인민들이 3개월 동안 흡연을 폐지하고 그 대금으로 국고를 갚아 국가의 위기를 구하자"고 발기 취지를 밝혔다. 이들의 국채보상운동 발기가 <대한매일신보>·<제국신문>·<만세보>·<황성신문> 등에 보도되자 각계각층의 광범한 호응이 일어났다. 

 

 

 


▲  이국적인 모양으로 '뾰족집'이라 불렸던 계산성당과 제일교회

 

 

 

길은 대구제일교회와 계산성당, 동산 선교사 저택으로 이어진다. 대구제일교회는 대구의 기독교 건물 가운데 가장 먼저 생긴 건물이다. 건물을 가득 덮은 담쟁이덩굴이 아름답다. 길 건너편에는 마주 보듯 계산성당이 있다. 

프랑스 선교사가 설계한 계산성당은 서울, 평양에 이은 세 번째 고딕양식의 성당이다. 이국적이고 이채로운 모양 때문에 '뾰족집'이라고 불렸단다. 서울 명동성당을 지었던 중국인들이 내려와 1902년 지은 것. 시인 이상화가 이 성당에서 영감을 얻어 '나의 침실로'를 지었다고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와 결혼한 곳도 바로 이 계산성당이라고.

대구제일교회 뒤편 동산으로 올라가는 계단 길은 3∙1운동길이다. 1919년 1,000여 명의 학생들이 이 길을 통해 서문시장으로 나가 독립만세를 외쳤으며 일명 '90 계단 길'로 불린다. 계단 끝 언덕 위엔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예쁜 집이 3채 서 있다. 1900년 초 미국 선교사들의 사택으로 지어진 건물로 대구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기도 하다.

선교사들이 머물던 서양식 주택은 주인이 떠난 지 오래지만, 당시 심었던 느릅나무, 히말라야시다, 감나무 등 허리는 굽었지만, 건강히 살고 있어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세월에 녹슬고 무뎌진 채 그대로 주저앉은 선교사 주택들은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데 당시 심어진 고목과 어울려 아름다운 정원 같았다. 대구 시민들이 산책 삼아 자주 찾아올 만했다.

더욱이 이 선교사 주택들은 대구 읍성을 철거할 때 나온 성돌로 기초석을 세웠다고 하니 더욱 눈길이 머물렀다. 어느 선교사 주택 앞엔 한 선교사가 미국에서 들여온 70년 넘은 늙은 사과나무 한 그루가 받침대에 기대어 힘겹게 서 있었다. 이 사과나무가 대구 사과의 효시가 되었다 해서 다시 쳐다보니 커가는 작은 과실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  고목이 살아가고 있는 선교사 주택은 산책하기 좋은 공원이 되었다

 

 


▲  미국에서 선교사와 함께 건너온 고목 사과나무, 아직도 열매를 맺는다

 

 

 

이정표를 따라 근대골목은 자연스레 서문시장으로 이어졌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건 역시 재래시장이다. 서문시장은 대구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재래시장답게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조선 중기 대구 읍성 서문 밖에 자리했던 서문시장은 평양장, 강경장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시장 중 하나로, 당시엔 '대구장'이라 불렸다. 

시대가 흐르면서 시장통은 점차 촌티를 벗으며 현대화되고 있지만, 보부상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던 질펀한 시장 음식은 시간이 몇 곱절 흘러도 변함이 없다. 팍팍한 세상살이에 위로를 주는 뜨끈한 국밥, 국수 한 그릇.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을 헤아리는 소박한 밥상. 대형 마트를 아무리 오래 다녀도 느낄 수 없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고 가는 정, 투박하면서도 익숙한 엄마 손맛을 맛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서문시장을 찾고 있었다.

근대골목 관광안내센터에서 일하는 동네 주민 직원이 알려준 '누름국수'를 먹으러 시장통 가운데에 있는 국수골목으로 갔다. 납작하게 눌러 면을 뽑은 누름국수는 아쉽게도 표준어 '칼국수'로 판매되고 있었다. 그래도 어감 좋고 정다운 '누름국수' 한 그릇 달라고 하자, 식당 아주머니가 반가운 낯빛으로 주문을 받았다. 합석이 자연스러운 복잡한 시장통에서 남녀노소 대구 시민들과 뒤엉켜 먹은 국수 한 그릇, 그 어떤 고급 요리보다 더 기억에 남는다. 

 

 

 


▲  '누름국수'를 먹을 수 있는 서문시장 국수골목

 

 


▲  서문시장 국수골목 '누름국수', 곱배기도 3천원이다

 

 

전체음식으로는 아삭아삭한 풋고추와 된장 한 종지가 탁자에 상시 대기 중이다. 배가 고파서였는지 옆자리에서 '호로록, 호로록' 누름 국숫발 넘기는 경쾌한 소리에 꼬르륵 소리가 절로 새어 나왔다. 서문시장의 인심을 말해주는 듯 배고픈 여행자의 배를 두둑하게 해주는 곱빼기도 추가 요금을 받지 않고 푸짐하게 내어주는 곳이 이 국수골목의 특징이기도 하다.

대구 중구청이 운영하는 '근대로의 여행 골목 투어'는 모두 5개 코스로 대구의 구석구석을 샅샅이 둘러 볼 수 있다. 제 1코스 '경상감영달성 길', 제 2코스 '근대문화골목', 제 3코스 '패션한방길', 제4코스 '삼덕봉산문화길', 제5코스 '남산 100년 향수 길' 등으로 이어진다.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낮 12시, 오후 2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해설사와 함께 골목 투어를 떠날 수 있고, 참가비는 무료다. 중구청 문화관광과(053-661-2194)나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다. 해설사 없이 자유로운 투어를 원한다면 '대구 중구 골목투어 앱'을 이용하면 된다.

ㅇ 주요 여행 길 : 반월당 네거리 - 진골목 - 염매시장 - 약전 골목 -  이상화, 서상돈 고택 - 계산 성당, 제일교회 - 3.1만세 계단길 - 동산 청라언덕 선교사 주택 - 서문시장.

 

 
 

 김종성 작가

http://sunnyk21.blog.me 

 

 

 

 

대구광역시>중구
김종성>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ID 내용 공감하기
- 작성된 의견이 없습니다.
이름 비밀번호
도배방지키
 90186159
트위터로 보내기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글확대 글축소 스토리스크랩 스토리공유 프린트하기
국내 최초! 무인 모노레일 '대구 3호선'을 타다. (2015-07-22 16:1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