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
메인홈 > 테마여행 > 문화유산
자연경관
문화유산
레저
도시여행
식도락
공연전시
트위터로 보내기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글확대 글축소 스토리스크랩 스토리공유 프린트하기

광주 양림동 역사 골목을 거닐다

역사문화마을이 된 광주 양림동
등록날짜 [ 2015년12월23일 16시51분 ]
 
 
 
 
광주의 예루살렘
양림동 역사 골목을 거닐다 
 
 
한옥 고택과 근대 건축물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광주 양림동 / 이하 김종성
 

부드럽고 둥근 햇살이 반가운 요즘, 전국 어디에나 '걷기 좋은 곳'이 생겨나고 있는 가운데 광주광역시에도 그런 길이 생겨나 반가운 마음에 찾아갔다. 광주의 다양한 문화예술 공간들 가운데 특히 근대 문화와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양림동 골목길. 그 둘레길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이다. 

20세기 이후 우리나라에 건립된 건축물 등 근대 문화유산은 한때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었다. 일제강점기의 잔재라는 지적에 따라 광복 이후 강제 철거된 건물이 한둘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도심 정비와 아파트 건립 붐에 밀려 옛 모습을 간직한 동네도 찾아보기가 어렵다.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도 예외는 아니었다. '개발이냐 보존이냐'를 놓고 고민하던 지자체와 주민들은 결국 후자를 택했다. 1900년대 초 신(新)문화 유입과 보급을 담당했던 근대 건축물이 밀집해 있는 마을의 특성을 활용해 도심재생, 지역 활성화의 원동력으로 삼게 된 것이다.

광주광역시 남구에 속한 양림동은 사직산과 양림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동남쪽 언덕배기에 자리한 마을이다. ‘양림(楊林)’은 버드나무 숲으로 덮여 있는 마을이라 해서 ‘양촌(楊村)’과 ‘유림(柳林)’을 합쳐 지어진 이름이다.

 

양림동은 100여 년 전, 광주 최초로 서양 근대 문물을 받아들인 통로였다. 그래서인지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며 달라진 한옥, 1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서양식 근대 건축물이 한 동네에 뒤섞여 있었다. 일제강점기 선교사들은 이 동네에 교회를 세우고 학교와 병원을 세웠으며 이러한 연유로 이곳을 ‘광주의 예루살렘’ 혹은 ‘서양촌’이라고 부르는 별칭이 생겨나게 되었다.

 

 


양림동 골목과 뒷산 언덕배기에 모여있는 근대역사 문화유산들
 
 
 
 
 

 

전통 문화재가 잘 보존된 양림동

 

 


광주 지하철 1호선 남광주역에서 내리면 가까운 양림동 주민센터(062-607-4502~3) 앞에서 양림동 근대역사문화 골목길 여행이 시작된다. 새롭게 둥지를 튼 양림동 주민센터에는 공연장, 작은 도서관 등 주민 사랑방 공간이 잘 조성된 데다 근대역사문화 마을의 특성을 반영한 복합 문화시설까지 갖추고 있어 양림동을 찾아온 여행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20세기 초 광주의 모습이 남아있는 양림동 골목은 근대 문화유산의 보물창고요 시간을 걷는 길이다. 양림동에서 어릴 적부터 살아온 주민이자, 마을 해설사 아저씨와 함께 거리를 거닐면 더욱 풍성한 양림동 골목여행을 할 수 있다. 아저씨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얘기와 함께 양림동 골목골목을 더욱 생생하고 친근하게 느낄 수 있다.

 

(문의 ; 광주남구청 문화관광과 062-607-2320~3 / 누리집 ; http://utour.gwangju.go.kr)

도심 전망타워가 우뚝 솟아있는 사직공원을 중심으로 광주 민속자료인 이장우 가옥, 최승효 고택이 모습을 드러낸다. 두 곳 모두 사람이 살고 있어서 주민센터나 남구청 문화관광과에 미리 연락을 하고 방문하는 것이 좋다. 당시 양림동은 광주 지역 부호들이 선망하는 동네이기도 했다. 이들은 주로 양림산기슭에 터를 잡았다.  

 

 


오래된 가옥이지만,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1899년에 지어진 이장우 가옥은 원형이 잘 보존된 단아한 한옥이다. 행랑채와 사랑채, 안채가 배치된 전형적인 조선시대 상류층 가옥 형태로 당시에는 보기 힘든 솟을대문까지 갖춘 부잣집이다. 솟을대문은 조선시대 권위의 상징으로, 가마를 타고 출입할 수 있도록 좌우 행랑보다 높게 설치한 대문을 말한다. 

마당에는 일본풍의 아담한 정원도 있고 'ㄱ'자 모양의 안채는 문화재로도 지정돼 있다. 구한말에 지은 이장우 가옥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한옥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자료이기도 하다. 한옥 마당에 잘 꾸며진 일본식 정원도 시선이 가지만, 한 뼘 정원을 품은 감나무가 단연 눈길을 끈다. 주홍빛 감 열매를 위해 속살까지 아낌없이 내줬다고 '어머니 나무'로도 불린다. 흔한 감나무지만, 옛집과 함께 전쟁과 근대화의 광풍을 이겨내고 도심에 살아남았다는 것이 경이롭다. 

광주 민속자료 2호로 1920년대에 지어진 최승효 가옥은 흔히 이장우 가옥과 비교되곤 한다. 당시 압록강 근처에서 구해온 목재를 사용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겉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내부가 상당히 넓고 화려해 이장우 가옥과는 또 다른 느낌이 든다. 일제강점기에는 당시 독립운동가들을 다락에 피신시키곤 했다고 한다. 이곳 뒤뜰에서 보는 무등산 전망도 유명하다.  



근대의 한옥집엔 일본식 정원이 꾸며져 있다.

 

한옥집을 개조한 한희원 미술관의 독특한 미술작품

 


오래된 가옥들을 둘러보면 둘러 볼수록 100년을 훌쩍 남긴 한옥이 전쟁과 근대화, 개발 속에서 온전히 남아 있다는 것에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옛 가옥을 고쳐 개관한 한희원 미술관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가장 먼저 오래되어 버려졌을 창틀을 그림의 액자로 활용한 것이 눈길을 끈다. 추레하기는커녕 오히려 미술작품이 더욱 돋보였다. 문학 작품도 그렇듯 낮은 삶을 연민하고 인간의 삶과 동떨어지지 않은 예술은 늘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법이다.   

한옥 골목에서 나와 양림산 언덕으로 오르다 보면 다형다방을 만난다. 양림동이 배출한 문화 예술인의 기록이 담긴 공간이다. ‘다형(茶兄)’은 광주에서 교사로 생활하며 시를 쓴 김현승 시인의 호다. 커피를 즐긴 다형처럼 커피 한잔 마시며 작고 아담한 공간을 꼼꼼히 둘러보았다. 다방 안에 있는 옛 사진들과 자료를 보니 양림동은 많은 문인들과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다. 시인 김현승과 곽재구, 이수복, 서정주가 여기에서 살았으며, 소설가 황석영과 문순태, 박화성의 모습도 있다. 영화감독 임권택도 학창시절을 양림동에서 보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다형 김현승이 단연 첫 손가락에 꼽힌다고. 


 

 

양림동의 역사와 문인들의 옛 사진이 걸려있는 다형다방 

 
다형다방 건너편에는 다형의 시 〈까마귀〉를 모티프로 한 시인의 벤치가 있다. 다형은 당시 양림동에서 흔하게 볼 수 있던 까마귀에서 영감을 얻어 이 시를 썼다고 한다. 지금은 마을을 거닐며 까마귀를 만날 수 없게 되었지만, 시인이 살던 때로 돌아가듯 까마귀 조형물과 마주 선다. 시를 음미하며 건물이 드리운 그늘에서 여름엔 햇살을 피하는 좋은 쉼터다.

 

사직공원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걸으며 계속해서 다형 김현승과 더불어 마을이 배출한 문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광주의 예루살렘 양림동



 

 

양림동엔 오래된 고택 등 전통문화재 외에도 오웬 기념각, 우일선 선교사 사택, 배유지 기념 예배당 등 개화기 선교 유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양림동이 근대화의 물결을 타기 시작한 것은 1904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가 목포를 거쳐 광주에 정착해 선교 활동을 시작하면서 부터다. 그중에서 오웬(오기원)과 유진벨(배유지)이 앞장섰다. 당시에 만들어진 기독교 유적과 우리네 전통문화 유적이 좁다란 골목길을 따라 오롯이 남아 있었다.

 

양림동 뒷산 자락의 둘레길은 기독교 순례길이라 부를 만 했다. '광주의 예루살렘'으로 불리는 이곳을 이해하려면 20세기 초 호남 지역에 기독교가 유입된 과정을 알 필요가 있는데, 파란 눈의 선교사들은 나주를 선교의 거점으로 삼고자 했으나 유교 문화가 강해 쫓겨나다시피 다시 광주로 돌아와야만 했다고.




양림동에서 쭉 살아온 마을 해설사 아저씨와 함께

 
그들은 광주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겨우 자리를 잡은 곳이 성읍 밖 양림산 기슭의 풍장 터였다. 몹쓸 병에 걸려 죽은 사람의 시신을 내다 버리는 곳이었다. '풍장(風葬)'은 사망자를 지상에 노출해 자연히 소멸시키는 장례법을 이른다. 선교사들은 기독교 사상을 전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학교를 지어 근대 교육을 했고, 병원을 지어 아이들을 돌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양림동에는 선교사의 이름을 딴 길과 건물이 많았다. 지금도 양림동 주민의 약 60%가 기독교도란다. 

어릴 적 동네 선교사들을 기억한다는 마을 해설사 아저씨. 아저씨는 주일날 아이들에게 맛난 먹거리를 주던 교회 두어 곳을 다닌 이야기와 선교사 자제들이 타고 다니던 짐 자전거가 아닌 예쁜 자전거가 타고 싶어 잠시 빌려(?) 탔다가 선교사에게 걸려 사택 지하실에서 친구들과 벌을 섰던 추억 등을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선교사들은 양림동에 광주 최초의 병원인 기독병원과 여학교인 수피아여고를 지었다. 양림동에 남아있는 서양식 건축물은 모두 학교 내부나 인근에 있는데, 1908년에 설립된 수피아여고도 그중 한 곳이다. 수피아여고에는 보존 가치가 있는 근대 문화유산인 등록문화재가 세 개나 있다. 중학교 교육 시 사용되는 '윈스브로우 홀'과 고등학교에서 쓰는 수피아홀, 작은 예배당인 커티스 메모리얼 홀이 그것이다. 


  

양림동에 자리한 다양한 근대 건축물들

 

 
수피아여고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제니 스피어'를 기념하기 위해 1911년 그의 언니가 헌금한 돈으로 설립됐다. 문화재청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수피아홀과 윈스보로우홀, 배유지 기념예배당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이곳은 선교의 근거지이자 여성 교육의 요람,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거점으로 활용됐다.

 

그만큼 수난도 참 많았다. 1919년 3·1 만세운동 사건으로 일시 폐교, 1929년 광주 학생독립운동으로 무기 휴교, 1937년 신사 참배 거부로 폐교당하는가 하면 광복 후에는 1947년 5월까지 미 군정청이 점유, 6·25전쟁 때는 북한군이 사용하기도 했다. 

양림동 근대건축 여행의 정점은 호남신학대학교다. 캠퍼스에 위쪽에 있는 선교사 묘역을 돌아보고, 선교사들의 이름을 딴 양림산 산책로를 따라 도서관 앞으로 내려오면 우일선 선교사사택(광주광역시 기념물 제 15호)을 만날 수 있다. 우일선 선교사사택에서 내려가면 ‘호랑가시나무 언덕’이라는 아름다운 길이 있다. '햇볕이 드는 숲' 양림(陽林)동에 가장 잘 어울리는 길이었다. 갓 결혼하는 신랑, 신부들의 필수 웨딩사진 촬영장소라 할 만했다.

길가에는 옛 선교사의 사택을 숙박시설로 바꾼 호랑가시나무 게스트하우스도 있다. 양림동 호랑가시나무는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 17호로 대접받는 고목나무다. 양림동엔 호랑가시나무, 아까시나무,  피칸나무(Pecan tree, 흑호도나무) 등 수령만 해도 100년이 넘는 거목이 즐비한 숲이 있어 도보여행이 더욱 즐겁다. 이채로운 이름의 나무들 대부분이 선교사들이 고향에서 가져와 심은 것이라고 한다.


 

 

선교사들이 들어와 살던 당시의 양림동 사진 - 해설사 제공 

수려한 고목 나무들이 많은 호랑가시나무길 / 이하 김종성
 

이곳 주변에서 매달 넷째 토요일 오후 4시, 재미있는 행사가 열린다. 자신이 만든 작품을 가지고 나와 좌판을 벌이는 벼룩시장이다. 시장이 서고 나면 길 중간의 빈터를 무대 삼아 작은 공연도 펼쳐진다. 이곳에서 광주 여행을 기념할 선물을 구입해도 좋겠다. 

이밖에도 양림동에는 다양한 근대건축물이 있다. 양림교회 옆에 자리한 오웬 기념각(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26호), 수피아여중 내에 자리한 광주 구 수피아 여학교 수피아 홀(등록문화재 제 158호) 등이다. 길을 따라 걸으며 만나는 담장의 그림과 글을 보는 재미도 있다.

오웬 기념각을 중심으로 1960년대 초까지 양림동은 광주지역 문화·예술의 중심지였고, 수많은 선교사들이 이 땅에서 헌신하고 묻히기를 원했다. 특히 선교사 오웬은 당시 나병, 문둥병이라고 불렸던 한센병 구제 역사에 주요한 계기가 되는 역할을 했다. 당시 선교사들은 광주를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며 헌신을 했다고 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원했던 대로 죽어서도 광주에 묻혔다. 호남신학대학교 뒷산 선교사 묘역이 바로 그곳이며 이곳에는 선교사와 가족 45명의 무덤이 있다. 


 

 

양림동에서 살아간 선교사, 문인들을 기리는 담벼락 조각작품 

광주 도심과 무등산이 보이는 사직공원 언덕 위 전망대
 

호남신학대학교 정문 건너편 야트막한 언덕길을 따라 광주 사직공원으로 향한다. 이곳에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에 올라 양림동과 광주 시가지, 광주의 주산인 무등산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전망대 아래층에는 광주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전시관이 마련되어 있으며, 벽면에 전시된 광주의 옛 모습을 살펴보고 창 너머로 현재의 광주를 바라보면 세월의 흐름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세월이 스며든 풍경과 사진은 무언의 말을 담고 있다. 가난한 시절의 흑백사진이지만, 마음 한편에 울림을 주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리라.

양림동은 동네서점 한쪽 서고에 가만히 꽂혀있는 고서(古書) 같은 동네다. 시간과 역사의 뒤안길에 숨어 낡고 허름하지만, 툭툭 털어내면 사라질 먼지로 잊혀선 안 될 아주 의미 있는 명소들이 구석구석 박혀 있다. 100년 전 시간이 멈춘 곳, 근대의 시간이 오롯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양림동 고샅길을 걷는 건 시간 여행이자 역사여행이었고, 때 묻지 않은 아름다운 문화예술여행이었다. 


김종성 작가

 

광주광역시>남구
김종성>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ID 내용 공감하기
- 작성된 의견이 없습니다.
이름 비밀번호
도배방지키
 48164162
트위터로 보내기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글확대 글축소 스토리스크랩 스토리공유 프린트하기
경북 대가야의 도읍지 '고령(高霊)' (2016-01-11 15:19:51)
봉정사 극락전에 국화 향기 흩날리면 (2015-12-08 11:3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