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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가덕도에 빠져들다

부산 여행
등록날짜 [ 2016년02월15일 10시45분 ]

 

 

 

부산 가덕도에 빠져들다

 

  

▲ 가덕도 천성항 전경

 

가덕도는 부산 해안갈맷길 5-2코스 (부산 강서구)천가교천가초등학교소양보육원연대봉대항선착장대항새바지어음포동선방조제정거생태마을천가교순으로 이동하며 가덕도 비경을 즐길 수 있는 11개의 무인도를 거느린 섬이다.

 

2010년 가덕대교와 거가대교가 생겨나기 전에는 진해 용원에서 뱃길로 1시간가량 드나들어야 했던 외딴섬이었다.

 

가덕도는 더덕이 많이 생산되어 '가덕도(加德島))'란 지명이 생겼다 한다. 육지와 떨어져 있는 섬 중에 일본과 가깝고 부산 영도보다 더 큰 가덕도는 태평양 전쟁 당시 섬 주변을 요새화하여 연합군 해안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영월 탄광 노동자를 강제로 이주하여 일본군 해안사령부를 만든 곳으로 오늘날 그 흔적인 탄약고, 포진지, 벙커, 가옥, 우물 등이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가덕도 연대봉을 오르다

 


 

▲ 지양곡 주차장에서 바라본 등산 초입 나무데크 계단

 

 

▲ 초입 나무데크로부터 정상은

약 1.55km 구간이다.

거제도로 향하는 가덕대교를 이용해 천성IC에서 내려 다시 U턴 후 언덕길을 오르면 옛 가덕도 해안 길과 만나게 된다. 마을 길을 돌아 비탈진 산길을 오르던 길이 새롭게 정비되면서 빠른 길이 생겼다. 도로개통과 함께 포장마차가 있던 공터가 사라지고 그 앞에 2단 무료주차장이 생겨나면서 주차 걱정도 덜게 되었다.

 

 

지양곡 주차장은 내비게이션 주소로는 부산 강서구 천성동 산 6-92’ 번지로 가장 짧은 등산로이다. 주차한 후 연대봉을 향해 오른다.

 

연대산농원 입구를 출발점으로 해 나무데크길을 따라 연대봉까지는 약 1.55km 구간이다.

 

 

 

 

연대봉으로 향하는 길은 가덕도 갈맷길 5-2코스(총길이 20.1km) 의 일부구간으로 가덕도에서 제일 높은 산봉우리가 바로 연대봉이다.

 

 

▲ 정상을 약 400m 남겨둔 지점에서 바라본 연대봉

 


연대봉으로 오르는 구간에는 1960년대 이후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한 소나무숲이 중턱까지 이어지며, 정상 가까이 활엽수림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이 구간은 곰솔과 소나무를 비롯한 개족도리풀, 자주뀡의다리, 합다리나무, 층꽃풀, 해변싸리, 털머위, 자금우, 큰천남성, 천선과 나무, 해국 등이 자생하고 있어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으로도 지정되어 있다.


 

 


 

연대봉 정상에 발을 내딛다

 


 

▲ 거제해안파크휴게소 너머로 보이는 거가대교

 


거가대교는 국내 최대, 세계 최초 토목기술의 집합체로 200412월 착공하여1 6년간의 공사 끝에 20101213일 개통했다거제시 장목면과 유호에서 부산광역시 강서구 천성동 가덕도를 잇는 다리로, 총 길이 8.2km의 왕복 4차선 도로로 2개의 사장교와 1개의 해저침매터널로 나누어져 있다.



바위 봉우리가 독특한 연대봉에 오르면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바다 물빛을 가르는 선박들의 모습과 바다색을 닮은 하늘에 가슴 한편이 후련해진다. 연대봉은 가덕도에서 가장 높은 연대산의 정상이다.

 

등산로는 선착장에서 출발하여 4시간 이상 걸리는 코스도 있지만, 가볍게 정상을 딛고자 한다면 연대산 염소목장 앞에서 한 시간 남짓 오르는 짧은 코스도 있다.


▲ 정상석 뒤로 봉수대가 자리잡고 있다.

 

정상에서는 낙동강이 큰 바다를 만나 흘러드는 을숙도와 거제 진해를 잇는 조망이 와이드 화면으로 바라보듯 거침없이 펼쳐진다.


고즈넉한 어항 낚싯배 하나가 하얀 물살을 가르며 섬을 돌아가는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연대봉(煙臺峰. 459m)을 두고 '봉수대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가덕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북동쪽 응봉산(252m), 북서쪽 웅주봉(339m), 남으로 국수봉(269m)을 잇는 산으로 연대봉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어 강서구 성화례(省火禮)와 진해 웅천 사화랑(沙火良)이 신호를 주고받기도 했다.


▲ 명지지구, 을숙도 방향 전경

 

▲ 해안 끝자락 돌출된 바위 '미봉산'

 

▲ 을숙도 방향 해안 전

 

▲ 우뚝 솟아오른 바위산 연대봉

 

▲ 숲 너머 바다를 즐기는 듯 해안선을 따라 항해하는 어선

 

▲ 활공하는 까마귀떼


 


 

정상에서 만난 '봉수대'

 


 

▲ 연대봉 봉수대

 

정상에 있는 봉수대는 1891년 광무원년에 전국 봉수대가 폐지되면서 사라졌던 곳으로, 봉수대가 언제부터 세워졌는지는 기록에 없으나 고려 의종 때를 전후하여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봉수대는 자연 유실된 상태로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9641기를 옛 위치에서 조금 당겨 복원하였다. '봉수대가 있는 산'이라 하여 '연대봉'으로 불렀다 전하며, 정상 바로 앞에 우뚝 서 있는 바위가 바로 연대봉이다.


임진왜란 최초 대마도에서 부산포로 침략하는 왜군 함대를 최초 이곳 연대봉과 응봉으로 당시 관측된 왜선이 대략 눈으로 보이는 것만 90여 척이며 그 뒤로도 끝없이 보여 수를 헤아리기가 힘들었다는 임진장초(1592. 이순신장군 장계를 모은 책) 기록으로 볼 때 이곳의 기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임진강초에는 1592413일 대마도를 떠나 부산포로 들어오는 '수많은 왜선이 대마도를 나와서 경상좌도의 추이도를 향하는바, 까마득하여 그 척수를 상세히 알 수 없다'며 조정에 장계를 올렸다고  한다.


▲ 하산하며 올려다본 연대봉

 


봉수대 뒤편 정상에는 삼각점이 있다. 1910년 우리나라 최초 토지조사측량 당시 설치된 16,000여 점 대삼각점이며 측량에 직접 사용되는 김해 24 기준점으로 동경 128° 5010, 북위 35° 0125이다.

 


 

 

 

대항을 거쳐 외항포에 들르

 


 

▲ 대항포 전망대에서 바라본 대항 전경

 

▲ 대항포 진입하며 바라본 대항포

▲ 외항포 넘어가면서 바라본 대항포


연대봉을 내려선 후 다시 차량을 회수하여 조금 내려서면 오른편 해안도로에 나무데크로 배 선미 모양을 형상화한 전망대가 있다. '대항동 전망대'로 불리는 이곳에 2006년 열린시학 가을호를 통해 등단한 박상호(60. .신태양건설 회장) 시인의 시비가 해안을 바라보며 망원경과 함께 설치돼 있다. 전망대에서 곧장 부산과 거제를 잇는 총 연장 8.2km 거가대교를 조망하거나 대항을 내려다볼 수 있다.


▲ 외항포에서 만나는 일제의 흔적

 

대항에서 외항으로 넘어선다. 0.9km 산길을 넘어서면 길은 곧장 마을로 관통한다. 마을길 끝자락 항구에 주차 후 마을길로 들어서니 옛 일제강점기의 흔적을 딛고 최근 조립식패널을 이용하여 보수한 일부 집들이 보인다.


가덕도', 그 섬에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갈매기 먹잇감 되어 파도 위를 떠다니는가 하면, 백 년 전 치욕의 흔적을 간직한 박제된 마을 '외양포(외항포)'를 품고 있기도 하다.


일본군은 가덕도 제일 안쪽 도로 끝자락 외항포항 대항마을에 1904(일본 명치37) 8월 일본군 시설을 임시로 설치하기 시작해 12월 준공하였으며 19052월 보조시설을 만들고 1905128cm 유탄포 6문을 편성하여 포대를 설치하였다. 러일전쟁 당시 진해만을 통과하는 발탁함대를 격침, 태평양 전쟁 말기 조선 바다를 장악하기 위해 420여 평에 설치한 군사 시설이자 한반도 최후 방어지기였다.

 


▲ 뼈대만 남아있는 흔적


마을 끝자락에 있는 입구에는 '일본 사령부 발상지지' 비석이 자리 잡고 있으며, 마을에서는 일본군 사령부가 있던 곳이라 곳곳에서 일본의 건축 잔재가 발견된다. 주변에서 옮겨놓은 비석 정면은 '사령부발상지지(司令部發祥之地)' 그리고 뒷면에는 '소화116(1936)'이라 기록되어 있다.

 

진지로 들어서면 넓은 광장과 양쪽으로 탄약고가 있으며 주변에는 대나무를 심어 위장해 놓았다. 진지를 조성할 당시 외부에서 유입한 붉은 벽돌은 외벽을 쌓고 위장 무늬를 칠해 놓았다. 그리고 대항에는 일본이 전쟁목적으로 만든 인공동굴 20여 개가 확인되고 있다.


▲ 철저한 위장 흔적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이 구축한 진지와 그들의 주거지 헌병 막사, 무기창고, 장교사태, 사병생활관 등 30여 건축물이 남아 있으며, 마을 뒤 1904년 구축한 외양포진지가 있다. 외양포 진지는 은폐된 콘크리트 진지 위 풀을 심어 노출을 피하였다. 외양포는 일본군 사령부가 최초 주둔한 전초기지로 우리에게는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본래 양천 허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던 터전을 일본군이 강탈 그곳에 사령부를 만들었는데 그 흔적이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진해 해군사령부가 진해에 있는 것 또한 가덕도와 연관성이 있다. 1909년 가덕도에서 철수 마산으로 일본사령부가 옮겨졌다. 1972년 진해로 옮겨가면서 오늘날 해군기지가 된 것이다.


▲ 화장실 흔적


1905527일 오전에 Z. P. 로제스트벤스키 중장을 사령관으로 전함 8척을 비롯한 각종 군함 34척과 공작선병원선 등을 포함한 38척을 갖춘 러시아 함대가 대한해협에 모습을 드러내자 일본은 도고 헤이하치로 지휘관이 이끄는 기함 삼립을 선두로 40여 척의 연합함대가 710분 출격하여 오후 145분 동해상 독도부근에서 해전을 치렀고 528일 오전 10시 발탁함대는 전함 2척만 남겨놓고 항복함으로써 러일전쟁은 막을 내렸다. 우리는 일제강점기에 들어가는 아픈 역사의 순간이기도 한 곳이다.


▲ 건물 내 탄약고


이 일대 건물은 개인소유가 아니다. 마을은 해군 통제부 소유로 건축에 관한 증·개축을 할 수 없다. 일본군이 철수하고 그 공간을 불하받아 머물던 외양포는 본래 주민들 소유였지만, 일제가 강제로 수탈 후 군사 목적으로 사용하였고 지금은 국가로부터 돌려받을 길이 없다 보니 옛 일제강점기 당시 군사시설과 함께 그곳에 머물던 병사들이 마을을 이룬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다.

 


▲ 마을에 남아있는 우물터


가덕도 천가동 외양포(외항포)는 대항의 바깥쪽 목의 형태여서 '외항포'라 부르다 오늘날 '외양포'로 고쳐 부르고 있지만, 아직도 여전히 외항포로 많이 불리고 있다. 대항 외양포에는 가덕도 내 최남단에 가덕등대가 있으며, 천수말에서 대항리까지 이어지는 해안 일대에 일제 강점기 포진지와 땅굴흔적 등이 남아 있다. 마을 곳곳에는 일본 헌병들이 마셨다는 헌병샘도 있다. 또한, 대항마을 남서쪽 3km 지점에는 가덕도 숭어잡이로 유명한 내동섬이 있으며, 동쪽으로 자생동백군락지가 형성되어 있기도 하다.

 

 

 


 

허락없이는 진입할 수 없는

가덕도 등대

 

 

▲ 다대포에서 바라본 가덕도 등대


외항포에서 더 들어서면 가덕도 동백섬 군락지와 가덕도 등대로 향할 수 있지만, 아쉽게도 가덕도 등대는 군사기지로 사전 출입신청 없이는 출입이 불가하여 즉흥적으로는 출입할 수 없는 곳이라 하여 여행을 마무리 짓고 돌아서야 했다.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된 프랑스 고딕 양식으로 세운 구 가덕도 등대는 아쉽게도 군부대에 의해 출입이 차단되어 있다. 가덕도 등대가 유명한 것은 대한제국 당시 만든 41개 유인등대 중 등탑과 사무실, 숙소가 하나의 공간에 조성된 유일한 등대로, 등대 출입구에 대한제국 황실 문양인 자두꽃 무늬가 있다. 문제는 출입이다. 등대로 가는 길은 해군과 해병대가 지키고 있다. 부산지방 항만청의 허락이 떨어져야 통과할 수 있는 곳이다.

 


 


동선새바지


 

▲ 동선새바지 도로 끝 작은 포구


새바지에 도착한다. 새바지는 '샛바람을 많이 받는 곳'이란 의미이다. 등대 주변 가파른 방파제에서는 이미 낚시 삼매경에 빠져 해지는 줄 모르는 강태공과 갈매기의 유연한 비행 그리고 일제 강점기 당시 만들어 놓은 해안진지 동굴을 만날 수 있었다.



가덕도 끝자락 허리 잘록한 부분에서 거제 방향은 대항이고 반대편은 동선새바지이다. 동선새바지 항구로 내려서면 창고 같은 모습의 일제가 남긴 동굴 흔적을 만나게 된다. 지금은 기껏해야 어민들의 창고역할을 하고 있지만, 과거 그곳에 포신을 거치하였으니 전쟁의 공포가 몰려오는 현장이기도 하다.


가덕도는 최근 부산신항 준설토 투기장 예정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신석기 집단매장터를 발견하여 학계가 술렁이는 곳이다. 8000년 전 매장된 시신 46기 중에는 한반도 최초로 양팔에 5, 3개씩 조개팔찌와 20개 조개 목걸이를 한 인골이 발견되었다. 말로만 알려진 조개 목걸이의 실체가 확인되는 중요한 유적발굴이 아닐 수 없었다.

 

부산 가덕도에서 유골 1점이 수거되었다. 조사 결과 뜻밖에도 유럽형 유전자로 약 7천여 전 신석기로 거슬러 올라가 이곳에 살던 사람의 유골로 확인되었다. 우리 땅에서 최초 유럽인 유전자 유골발굴과 함께 매장 방식 또한 독일에서 발견된 굴장 방식이라는 점으로 인하여 6만 년 전 아프리카 대륙을 떠나 유라시아로 흩어진 현생인류가 그것도 한반도에 유럽인이 이동했을 가능성 그리고 그 첫발을 디딘 곳이 가덕도로 추정할 수 있는 새로운 학설 가능성이 열렸다.



 

가덕도를 가덕대교를 건너 58번 국도를 이용하여 천성IC에서 하차하였다면 돌아가는 길은 부산신항으로 향하는 옛 구길 가덕해안로를 따라 이동하는 것이 좋다. 낙조도 즐기며 신항만을 조망할 수 있는 이미 육지화 되어버린 호남도와 입도 그리고 도로변에서 동리산을 통해 신항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이곳에서 눌차도로 진입하여 여행을 계속해도 좋다.

 

안정호 작가

http://blog.daum.net/okgolf

 

부산광역시>강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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