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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조선왕릉,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기행

등록날짜 [ 2016년02월23일 13시37분 ]
 
국내 최대 조선왕릉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기행
 
 
왕들의 묘역을 지키고 서 있는 수호신 석물(石物) / 이하 ⓒ김종성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경기도 구리시 동구릉로 197)은 조선의 초대 임금인 태조 이성계부터 조선 말기의 24대 헌종까지 조선시대 9대 왕과 왕비가 묻혀있는 집안 묘역이다. 동구릉 옆을 흐르는 하천은 왕이 묵어 갔다 하여 '왕숙천'이라 부른다. 

사적(제193호)이자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한 이곳은 소나무를 대표로 다양한 수목들이 울창한 숲길을 이루고 있어 계절마다 나무들 사이로 왕이 된 듯 여유롭게 거닐기 좋다. 전체 능 구역이 59만여 평에 달해 그 광활한 대지와 숲만도 장관이다. 그러다보니 왕릉을 한 바퀴 도는 숲속 산책로는 무려 15km나 된다. 

 

특히 눈 내린 겨울엔 아름다운 왕릉의 설경(雪景)으로도 소문이 자자하다. 아홉 개의 큰 무덤들의 안내를 받으며 이어진 한적하고 고요한 눈길은 깊숙이 들어가면 갈수록 오래된 절집에 온 듯 피안의 세계마저 느끼게 해준다. 

동구릉(東九陵)은 조선시대 임금 일곱 명과 10위의 왕비와 후비 등을 안장한 왕릉이다. 1408년 태조의 건원릉(建元陵)을 시작으로 조선시대 왕족이 하나의 군락을 이루고 있다. 한양의 동쪽에 자리한 아홉 개의 능이라는 의미다.

 

조선의 국왕과 왕비 등 왕실의 무덤은 ‘궁궐에서 백 리를 넘어서지 않게 한다’는 왕실의 규범집 <국조오례의>의 규정에 따라 모두 현재의 서울 외곽지역과 경기도 일대에 자리하고 있다. 단, 폐왕이 되어 유배지에서 죽임을 당한 단종의 능인 장릉만이 강원도 영월에 자리하고 있다.

 


눈 내린 겨울날 찾아가면 운치있는 설경이 맞이해 준다.
 

9릉은 조선 제1대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健元陵), 제5대 문종과 현덕왕후가 묻힌 현릉(顯陵), 제14대 선조와 의인왕후·계비 인목왕후가 묻힌 목릉(穆陵), 제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의 휘릉(徽陵), 제18대 현종과 명성왕후의 숭릉(崇陵), 제20대 경종비 단의왕후가 묻힌 혜릉(惠陵), 제21대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의 원릉(元陵), 제24대 헌종과 효현왕후·계비 효정왕후의 경릉(景陵), 추존된 문조와 신정왕후의 수릉(綏陵)이다. 

이곳을 '동구릉'이라 부른 것은 1849년 헌종의 경릉이 아홉 번째로 들어서면서부터이다. 그전에는 능이 늘어나는 대로 동오릉(東五陵), 동칠릉(東七陵) 등으로 불렀다. 한양으로 도읍을 정한 태조는 살아생전에 고려 왕릉의 대부분이 개성 부근 산악지대에 있어 참배하기 불편할 뿐 아니라 왕릉을 관리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한 연유로 자신과 자손들의 유택을 한양 가까운 곳에 정하고자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망우리 고개에 올라 동구릉을 바라보니 왕릉의 군락지로 더없는 길지(吉地)더란다. 짐작건대 이때 이성계 옆에는 분명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있었을 법하다. 무학은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에 역할을 하였고 왕사를 지낸 조선의 승려다.

태조가 죽은 뒤 태종의 명을 받아 서울 가까운 곳에서 길지를 물색하던 중 검교 참찬의정부사(檢校參贊議政府事)를 지낸 김인귀의 추천을 받아 영의정 부사 하륜이 결정해 능지로 정했다고 한다. 동구릉의 지세가 풍수지리이론에 합당하고 뛰어난 지세임은 태종 때 명나라 사신들이 건원릉을 둘러보고 그 산세의 묘함에 감탄하여 “어떻게 이와 같이 하늘이 만든 땅덩이(천작지구(天作地區))가 있단 말인가? 필시 인간이 만든 조산(趙山)일 것이다”라고 감탄하였다고 한다. 

 

519년 동안 지속된 조선의 왕릉은 왕실의 권위를 드러내면서 자연조화적 조영술을 따랐다. 유교와 풍수 등 한국인의 세계관이 압축돼 있고 왕실의 장례 및 제례 등을 조명할 수 있어 문화재로서 가치가 풍부한 곳이다. 

- 교   통   편  : 경의·중앙선 구리역 앞 마을버스 1번, 2번 2-1번, 10-5번 (10분 소요) 
- 문화재 해설 : 하루 3회(10:00, 13:00, 15:00) 
- 매주 월요일 휴무, 입장료 천 원 
- 누리집 ; http://donggu.cha.go.kr/

 
 

왕릉 입구로 들어서면 도심 속 다른 세상에 온 듯 아늑하다.
 
 

조선 왕릉 중에서도 백미 중 백미는?

 

 

 

번잡한 도시풍경을 지나 동구릉 입구에 다가가자 어느새 주위가 조용해졌다. 다른 세상 속에 들어선 듯 묘하고 아늑한 기분이었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면서 나이 지긋한 직원에게 처음 와서 그런데 어떻게 돌아보면 좋을까요? 했더니 눈길에 난 발자국을 따라가면 될 거라는 뭔가 철학적인 대답을 건넸다. 정말 그런가 하고 입구를 지나 들어가 보니 과연 백설이 하얗게 덮인 동구릉에는 길인 듯 보이는 곳에 사람 발자국만이 나 있었다.

 

문화 해설사 아저씨의 설명을 들으니 명당이란 오지나 심산유곡(깊숙하고 고요한 산과 골짜기)에만 있는 게 아니구나 싶다. 
 
"우리가 흔히 보는 일반인의 묘들이 한눈에 조산과 주산, 좌청룡, 우백호 등등을 따질 수 있는 것과 달리 왕릉들은 훨씬 규모가 커서 좀 다르게 봐야 해요. 동구릉은 들어오면서 금세 느껴지듯이 일자문성을 이루는 구릉들이 겹겹이 둘러있고, 그 안쪽에 사방으로 맥이 뻗어있어 마치 천연의 요새 안에 자리해 있는 모양이지요. 좌청룡·우백호가 양파 껍질처럼 겹겹이 에워싼 가운데 묵직한 맥을 타고 모셨으니, 하나하나가 명당으로 손색이 없어요. 어쨌든 높이가 200m도 안 되는 검암산 자락에 이렇게 좋은 명당들이 자리해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에요."


산책 거리만 15km에 달하는 광대한 동구릉 묘역길
 

정문 매표소와 역사문화관을 지나 하얀 눈길을 밟으며 조금 걸어가니 능의 입구를 알리는 홍살문이 가장 먼저 반긴다. 각 능마다 작은 규모의 홍살문이 있지만, 전체 능 구역을 망라하는 커다란 홍살문이 있어 눈길을 잡는다. 좌우에 커다란 기둥을 세우고 화살과 같은 나무를 박아 붉을 칠을 하였기에 '홍살문' 또는 '홍전문(紅箭門)'이라 하며 가운데에는 태극문양이 있다. 신성한 곳이니 잡귀는 범접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곳을 지날 때는 몸과 마음을 엄숙히 하고 경건한 예를 갖추라는 의미도 있다.

평소에도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던 커다란 소나무들은 가지마다 흰 눈이 묵직하게 쌓였다. 키 작은 관목들과 잎이 떨어진 활엽수들의 가지에는 눈부신 눈꽃이 피었다. 홍살문 안쪽으로 들어서니 겹겹이 둘러싼 구릉들 덕분에 살을 에는 듯하던 바람도 한결 잦아든다. 한바탕 눈이 내린 후 새파랗게 갠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눈 부시다. 

 

새하얀 눈과 퍽 어울리게 서 있는 홍살문 밑을 지나니 무덤에 온 것이 실감 나면서 마음이 경건해진다. 왕들의 무덤만큼이나 오래된 소나무들이 양옆에서 고개 숙인 채 호위를 하듯 우뚝 서 있는 모습이 자못 장엄하고 든든하다. 나무 꼭대기에 쌓인 눈이 버거운지 불어오는 바람에 눈바람을 날리며 땅으로 눈을 쏟아내는 바람에 밑에서 걷는 작은 사람은 자연에 주는 눈 세례를 맞기도 한다. 

동구릉은 소나무 외에도 남성의 근육질 같은 표피가 인상적인 서어나무 군락, 느릅나무, 두충나무, 이팝나무, 팥배나무, 오리나무 등 도시에서 보기 드문 나무들도 만날 수 있다. 나무마다 이름을 붙여놓아 나무를 공부하기에도 좋다. 

 

눈 내린 여느 산이나 공원에서 걸을 때와는 달리 뽀드득 발소리도 그 울림이 범상치가 않다. 나무 숲에 사는 까치나 새들의 지저귐도 맑고 청명하게 들려왔다. 복잡했던 머릿속이 컴퓨터를 포맷하듯 비워진 것 같고, 어느새 마음도 눈처럼 하얀 도화지로 깨끗해진 것 같다. 혹시 내가 왕족이어서 이렇게 마음이 평온할까 싶을 정도였다. 

 

 


소나무 외 다양한 나무들이 살고 있어 저절로 나무 공부가 된다.
 
 

홍살문을 지나면 오른쪽 바닥에 한 평 정도의 돌 판을 깔아 놓았는데 이를 ‘배위’ 혹은 ‘판위’라 하며, 왕이 제사를 지내러 왔을 때 이곳에서 절을 하며 ‘왔음’을 알렸다. 홍살문 앞으로 길게 이어진 돌길이 보이는데, 이 길은 ‘참도’라 한다. 자세히 보면 왼쪽이 약간 높은데 이 길은 혼 즉, 조상신이 다니는 ‘신도’이고, 낮은 쪽은 임금이 다니는 ‘어도’다.

 

홍살문부터 능까지 이어진 참도를 걸어 들어가는 순간, 1400년대의 조선 초기 시대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눈이 내리면서 신도와 어도의 구분이 없어져 그만 산자나 죽은 자나 다 같이 다니게 됐다.
유교(儒敎)에서 보면 삶과 죽음은 사람에게 혼백(魂魄)이 있고 없음으로 구별된다.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은 육신을 거느리는 '백(魄)'과 정신을 다스리는 '혼(魂)'이 사람의 몸에 함께 있다는 뜻이다.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혼은 하늘로 돌아가고 백은 땅으로 돌아가는 것을 뜻하기에 유교의 제례의식은 혼을 모시는 사당(祠堂)과 백(魄)을 모시는 무덤 두 곳에서 치러진다. 그래서 조선의 왕과 왕비가 죽으면 정신인 혼은 종묘(宗廟)에 배향되고 육신인 백은 왕릉(王陵)에 묻히게 된 것이다. 

 


왕의 능으로 가는 두 개의 길
 

중국의 왕릉의 참도엔 가운데에 길이 하나 더 있는데 황제들이 다닌다 하여 '황도'라 한다. 참도를 걷다 오른편으로 보이는 건물은 ‘수복방’이라 한다. 이곳은 능을 지키는 보초(수복)의 초소로 이해하면 된다. 수복방 위로는 ‘비각’이 있는데, 비석이나 신도비를 안치하는 곳이다. 신도비는 능 주인의 생전 업적을 기록하여 세운 비석이다.

 

참도가 끝나는 지점에는 ‘정자각’ 건물이 있다. 건물 모양이 한자 ‘丁’을 닮았다 하여 정자각. 왕은 정자 모양으로 지어야 했고 중국 황제는 일자 모양으로 지었단다. 

정자각은 능 주인의 침전이며 동시에 제향을 올리던 곳이다. 정자각 위로는 ‘사초지’라 하여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이는 제례 지내는 사람들의 시야를 가리게 하여 능의 위엄성과 경외심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고개를 푹 숙여 힘들게 사초지에 오르면 비로소 능이 나타난다. 사초지에 그냥 올라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며 오르려면 미리 관리 사무소에 연락해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 규모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품은 동구릉

 


조선의 임금은 살아있을 때는 이름이 없이 '전하(殿下)'로만 불리다가 죽고 나서야 두 개의 이름을 갖게 되는데, 하나는 종묘에 배향될 때 얻게 되는 혼의 이름인 '묘호(廟號)'이고, 다른 하나는 왕릉에 안장될 때 얻게 되는 백의 이름인 '능호(陵號)'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태조(太祖), 세종(世宗), 성종(成宗)은 묘호이고, 건원릉(建元陵), 영릉(英陵), 선릉(宣陵)은 능호다. 원(園)은 왕세자와 왕세자비의 무덤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묘(墓)는 나머지 왕족들과 왕의 첩인 후궁, 귀인 등의 무덤을 지칭하는데, 연산군 묘나 광해군 묘처럼 왕에서 강등당한 경우도 같다. 조선 왕족의 무덤은 모두 119기에 이르며, 이 가운데 능이 42기이고, 원이 13기이며, 묘가 64기이다.  


웅장하고 진중하면서도 부드러운 모습에 친근감이 든다.

 

흰 눈이 포근한 이불처럼 무덤을 덮었다.

 
동구릉에 들어서서 직선거리의 맨 위쪽(북쪽) 깊숙이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이 자리 잡고 있다. '나라와 도읍을 처음 세웠다'는 의미를 담은 건원릉은 역성혁명으로 고려를 무너뜨리고 57세의 늦은 나이에 조선의 초대 임금이 된 태조 이성계가 누워있는 곳이다. 하지만 자식들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다툼을 어쩌지 못하고 쳐다만 보다가 죽어서도 원했던 부인 곁에 묻히지 못한 비운의 말년은 많은 드라마에서 '용의 눈물'로 표현되기도 했다.

 

건원릉은 우선 규모가 넉넉하고 앞이 시원스레 트여 웅장하고 진중하면서 아늑한 위치에 들어앉아 있다. 

다른 왕릉들도 그렇듯 엄숙하면서도 자연과 조화를 이뤄 친근감이 든다. 좌우를 살펴보면 '아하! 명당이란 바로 이런 곳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다. 건원릉은 봉분은  마치 더벅머리 총각처럼 억새로 덮여있어 매우 특이하다. 태조가 이곳에 묻힌 것은 그의 뜻이 아니었다. 부드러운 잔디 대신 태조의 봉분을 가득 덮은 것은 무성한 억새다. 태조는 고향인 함흥에 자신을 묻어달라는 유교를 남겼지만, 태종 이방원은 함흥의 흙과 억새풀을 가져와 봉분을 덮는 것으로 아버지의 유교를 대신했다. 한양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진 곳에 개국시조를 모실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태조 이성계가 묻힌 건원릉의 독특한 모습

 
52년간 왕위를 지키고 83세까지 장수를 누렸으나 모함과 의심에 못 이겨 아들인 사도세자를 결국 뒤주에 가두어 굶겨 죽인 영조의 원릉. 조선왕조 스물일곱 왕 중 가장 장수하였으며, 가장 오랜 재위기간을 자랑하는 영조 임금 역시 홍릉에 잠들어 있는 원비 정성왕후 옆에 일찌감치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고 그곳에 묻어달라 유지를 남겼다.

 

하지만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섭섭함이었을까? 정조는 그 유지를 외면하고 할아버지를 이곳 동구릉 경내에 모신다. 그 곁을 지키는 이는 열네 살 어린 나이에 왕비가 되었던 정순왕후. 때로는 왕릉 자체에 큰 수모가 가해지기도 했다. 

임진왜란 후 왕권보다 강화된 신권으로 인한 당파싸움에 우왕좌왕하다 병자호란까지 겪으면서 나라를 점점 쇠락의 늪에 빠지게 한 선조임금이 누운 목릉도 눈길을 끈다. 홍살문에서 정자각, 능침을 잇는 신도는 일직선 상에 놓이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곳의 신도는 구불구불 힘겹다. 임진왜란 등 큰 전란을 치러내야 했던 선조의 어지러운 마음을 보는 듯했다.

 

선조의 능은 다른 능과 달리 조형미와 세련미가 떨어지는데, 이는 선조가 죽은 해인 1608년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고 난 직후라 왕릉의 조성에 심혈을 기울일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의 막대한 피해가 능의 모습에도 영향이 반영된 사례다. 


  

왕릉 앞엔 제사용, 초소용, 비석 보관용 등 여러 목적의 정자각이 있다.

 

악귀를 막아주는 처마 위 재밌는 잡상들. 서유기의 주인공들이다.

 
높고 커다란 능 안에는 거기에 누운 왕과 왕비 개인의 삶뿐만이 아닌, 시대에 같이 존재한 나라 온 백성의 운명과 삶의 이야기도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 같았다. 학창시절 교과서를 통해 배울 때와는 달리 조선시대 역사가 생생하게 다가왔다. 중고등학생 시절 이곳에 현장학습을 왔더라면 굳이 국사시간에 책에 줄을 그어가며 '태정태세문단세'를 기계적으로 외우지 않아도 좋은 공부가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능 옆에는 석상인 문인석, 무인석, 마석이 서 있는데, 두툼한 칼을 꼭 쥐고 있는 눈이 부리부리한 무인석은 왠지 위압적이거나 무섭지가 않고, 마석은 말이라기 보다는 작은 당나귀 같아 앙증맞고 귀엽다.

 

이밖에도 왕릉이 뿜어내는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속에서 웃음을 짓게 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정자각 처마 위에 빚은 잡상들이다. 불운과 악귀를 막는다고 하는 잡상은 순서대로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이라고 하는데, 왕릉에서 손오공을 만나게 하는 조상들의 해학이 재미있다. 


명당 중의 명당이라는 아홉 번째 능 '경릉'
 

헌종과 효현왕후, 계비 효정왕후가 나란히 잠들어 있는 경릉은 동구릉의 아홉 번째 능이다. 용세(龍勢)와 혈증(穴證)이 확실하고, 열이면 열이 다 좋다(十全大吉地)는 명당 중의 명당이란다. 명성에 걸맞게 경릉의 전망은 동구릉에서 가장 빼어나다.

 

동구릉을 돌아보면 사람이 만나는 인연도 묘하지만 죽어 묻히는 인연도 절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부부로 만나 죽어서도 합장에 드는 인연이 있는가 하면 쌍릉으로 곁에 묻히기도 하고 왕과 왕비가 서로 다른 지역으로 떨어져 외롭게 묻혀 있기도 하니 말이다. 살아서는 분명 투기를 벌였을 정비와 계비가 죽어서는 부왕과 왕비, 계비 순서로 삼릉을 이뤄 편안히 잠들어 있고, 정비는 멀리 두고 계비와 누워 있는 왕도 있다.
 
조선 왕릉은 500년 조선이 21세기 우리에게 전하는 생생한 역사이자 이야기다. 지금은 사방으로 큰 도로가 지나고 남쪽으로는 아파트들이 숲을 이루고 있지만, 조선시대엔 더없이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었겠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이곳에 이처럼 커다란 왕릉들이 자리 잡고 많은 전쟁을 겪으면서도 훼손되지 않은 채 500여 년을 이어왔다는 것은 어찌 보면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조상들의 훌륭한 유산이자 우리에게 남겨진 아름답고 귀한 보물이지 싶다. 



 김종성작가

http://sunnyk21.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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