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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의 파노라마, 안면도 해변길

충남 태안 안면도 여행
등록날짜 [ 2016년03월10일 15시16분 ]
 
노을의 파노라마, 안면도 해변길
 
 
수많은 고요한 해변과 바닷가 솔숲길, 소담한 포구, 황홀한 노을이 있는 태안반도는 시름과 번민을 찬 바다에 내던지고 한결 개운해진 마음을 갖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몇 안 되는 여행지다. 어느 계절에 가도 좋은 태안(泰安)은 그 이름처럼 크게 편안해서 그런지 싶다. 
 
 
 
다채롭고 편안한 노을 풍경이 이어지는 안면도 해변 ⓒ 김종성
 

태안군은 북쪽 이원면에서 남쪽 고남면까지 세로로 길쭉한 반도다. 학암포에서 영목항까지 약 230km에 걸쳐 구불구불 리아스식 해안이 펼쳐진다. 이 해안가에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지난 2011년부터 조성한 ‘해변길’은 총 8개 코스, 100㎞로 이뤄져 있다. 그 주변이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해안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태안해안국립공원이고, 모래가 고운 해수욕장이 이어져 피서지로 인기다. 반도의 모든 풍경이 담긴 해변길이 이어지는 길엔 수려한 풍경으로 이름난 곳도 많다. 

그 가운데 5
코스 태안 '노을길'은 태안 해변 길의 백미다. 백사장항과 꽃지해변 사이의 낭만적인 서해바다를 줄곧 옆구리에 끼고 이어진다. 여러 해변들을 지나다 보면 누구에게나 귀한 보물처럼 오랜 시간 꼭꼭 숨겨 두고픈 장소가 있게 마련. 그러다 보니 사진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아름다운 자연과 계절의 정취가 살아있는 멋진 ‘출사 여행지’이기도 하다. 푸른 솔숲 길과 부드러운 모랫길과 탁 트인 해변길이 이어지는 삼봉해변·기지포해변·밧개해변·두여해변·꽃지해변... 각기 다른 이름을 지닌 12km의 바닷길, 해질녘 파노라마로 저무는 노을은 한 번 경험하면 잊기 힘들다.  

 
 
태안 '노을길' 안면도로 가는 관문 해양 인도교, 꽃게다리 ⓒ 김종성 
  
노을길의 들머리 백사장항의 특별한 먹거리, 게국지 ⓒ 김종성

런 바다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태안(泰安)의 보석 같은 섬 안면도(安眠島)다. 편안할 안(安)자가 두 개나 연이어 있어선지 추운 겨울에도 안온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가을이 끝나가고 겨울이 시작되는 바다는 차고 고요했지만, 그 어느 바닷가보다 한가롭고 오붓하게 거닐기 좋은 해변이 섬 서쪽 해안에 아주 길게 펼쳐져 있다. 한 해를 정리하면서 여유롭고 낭만적인 시간을 보내기에 안면도의 겨울 바다만큼 안성맞춤인 곳도 없을 듯하다. 

사람들은 흔히 여름에 바다를 찾지만 정작 한여름에는 뜨거운 햇볕 탓에 걷기도 힘들고 주변 경치를 제대로 감상하기 힘들다. 반면 겨울 안면도 해변 길은 파도 소리 들려오는 고즈넉한 곰솔 숲길, 아름답게 저무는 노을에 감탄할 수 있고 운이 좋다면 눈쌓인 해변을 걷는 낭만을 느낄 수 있는 등 겨울 바다 여행의 운치와 재미를 즐길 수 있다.

안면도는 육지이면서도 육지가 아닌, 또 섬이면서도 온전한 섬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땅이라고 할 수 있다. 섬의 모양도 독특하다. 서쪽과 동쪽이 완전히 판이한 형태의 해안선을 형성하고 있어, 양쪽이 모두 같은 섬 안에 있는 해안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다. 서쪽은 줄잡아 13개 정도의 해수욕장이 있다. 가장 북쪽의 백사장해수욕장에서부터 가장 남쪽의 바람아래해수욕장까지 해안선을 온통 해수욕장이 차지하고 있다. 해안선 전체가 모래사장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에 반해 동쪽에는 해수욕장이라고 이름이 붙은 곳이 한 군데도 없다. 
 
 

서해바다 물결이 새겨진 고둥, 바닷가 갯벌 ⓒ 김종성
 
 
 
 
안면도 해변의 보석 같은 청정숲길
곰솔림
 
 
곰솔은 바닷가 언덕에 사는 소나무를 이르는 말로 해송(海松)이라고도 부른다. 잎이 곰털처럼 거칠어 '곰솔'이란 이름이 붙었단다. 육지에 사는 불그스름한 소나무(적송)와 달리 나무 껍질이 검어 '흑송'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안면도 해변의 곰솔림은 아름다운 해안경관과 휴식처가 되어주고 무엇보다 강한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 역할을 하고 있는 소중한 존재다. 노을길의 끝인 꽃지해변까지 섬의 해변마다 이런 곰솔숲이 있어 여행자의 기분을 한껏 상쾌하게 해주었다. 안면도 바닷가에 이어지는 곰솔림을 거닐다보면 두 종류의 숲길이 있다는 걸 알게 괸다. 바닷가 사구(모래언덕)에 사는 곰솔림이 있고, 더 안쪽에 빽빽하게 자리한 방풍림 역할을 하는 곰솔림이 있다.
 

곰솔숲길에서 바라보는 노을도 운치있다 ⓒ 김종성

 

 

특히 기지포 해변 왼편에 곰솔숲을, 오른편엔 해변을 두고 걷게 되는데 나무 데크가 설치되어 있어 발걸음 한결 사뿐했다. 휠체어와 유모차가 다닐 수 있도록 나무데크로 조성된 1,004m 길이의 '천사길'이 이채로웠다. 마을의 형태가 베틀을 닮아 ‘베틀 기(機)’ ‘연못 지(池)’ ‘포구 포(浦)’를 써서 기지포로 명명된 기지포해변은 신두리처럼 본래 모래언덕으로 형성된 해안사구였다. 밀가루보다 고운 모래가 바람에 실려 와 쌓였다가 또 바람이 불면 금세 다른 모양으로 변신하는 신비의 땅으로, 해당화를 비롯해 갯그령·갯쇠보리·통보리·사초 등 사구식물이 서식하는 생명의 땅이다. 

안면도 해변엔 바닷가를 지나다 야트막한 산길도 이어진다. 다행히 경사가 그리 급하지 않은 산속 길을 천천히 오르면 언덕 위에 전망대가 나타난다. 인적없는 겨울이라 깊은 산속 오솔길을 걷는 기분이 나는 길섶에선 산비둘기인지 꿩인지 모를 새들이 불청객의 발소리에 놀라 후두두 날아올랐다. 태안 해변 '노을길'엔 이런 경치 좋은 전망대가 서너 개 있어 해변 길의 지루함을 잊게 해주었다. 해안 풍경이 지루하다 싶으면 곧이어 솔숲길이 나타나고, 평지가 심심하다 싶으면 전망 좋은 곳으로 오르는 언덕길이 나타난다.

여행자들이 쉬어가기 좋은 정자 같은 쉼터이기도 한 전망대에 서니 어디나 시원하게 펼쳐진 모래 갯벌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어지는 다른 전망대에서는 해안가까지 밀물로 들어찬 장쾌한 바다 풍경이 펼쳐졌다. 리아스식 해안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수평선에는 뒷섬, 거아도, 울미도, 삼섬, 지치섬 등 재미있는 이름의 크고 작은 섬들이 올망졸망 모여서 정담을 나누고, 파도 소리와 솔바람소리는 마음을 청량하게 해주었다. 
 

 

썰물의 바닷가에 나와 주민들이 캐는 야생굴, 진한 바다내음이 난다 ⓒ 김종성
  
편안하고 부드럽게 저무는 안면도의 노을 ⓒ 김종성

 

 

 

 

해 질 녘 더욱 빛을 발하는

안면도 해변길

 

 

밀물 때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 썰물의 바닷가 모래는 물론 태극무늬가 새겨진 고둥에도 서해바다의 물결이 그려져 있다. 인간의 먹거리가 되지 못한 덕분에 살아남은 불가사리들이 바닷가에서 보란듯이 화려한 색감을 뽐내고 있었다. 물결 모래 위로 대자로 누워있는 불가사리, 조개, 고둥, 소라들과 어우러진 풍경을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쳐다보면 투명한 바닷속을 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서해를 상징하는 참 인상적인 풍경 중의 하나로 일몰 즈음엔 붉은 노을에 비춰 환상적인 예술작품이 된다. 요상한 모양의 뿔이 달린 도구로 능숙하게 굴을 캐는 동네 아낙 옆으로 다가가니 야생 굴에서 진한 바다내음이 풍겨왔다.


오후 5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어느덧 햇살이 설핏 기울고 땅거미가 지더니 해거름이 시작됐다. 젖은 모래사장 위로 햇살이 반사되어 길게 이어졌다. 겨울철이지만 서해바닷가의 노을은 부드럽고 포근한 온기가 느껴졌다. 특히,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심어놓은 방풍림 곰솔숲길에서 보이는 안면도의 노을은 오래 기억에 낮을 것 같다. 가슴속에 꾹꾹 눌러 담았다가 일상이 힘들게 할 때마다 꺼내 보아야겠다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여행이 사람을 성숙하게 만든다’고 한다면, 그때의 여행이란 십중팔구 ‘겨울 여행’이지 싶다. 겨울철의 여행은 다른 계절과 사뭇 다르다. 바람은 차고, 풍경은 황량하고, 날은 이렇게 일찍 저문다. 다른 계절이라면 풍경에 취하거나 놀이에 마음을 뺏기겠지만, 겨울의 여정에서는 여행자의 시선이 바깥보단 ‘내 안’을 보게 된다. 겨울의 여행은 되도록 혼자, 아니면 오래된 친구 한 명과 함께 떠나는 것이 적당하지 싶다.

 

 

 

 

12km에 걸쳐 파노라마로 이어지는 해질녘 안면도의 노을 ⓒ 김종성


일몰 때의 아름답고 온화하고 그림 같은 밤바다에 안면도의 해변이 빠질 수 없다. 해 질 무렵의 해변 길, 길게 드리워진 은은한 석양빛은 감동 그 자체다.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여름 바다 못지않게, 아름다운 노을이 지는 해질녘의 겨울 바다는 시적(詩的)이다. 더불어 태안 해변의 자장가 같은 파도 소리를 듣고 거닐며 온전한 나만의 시간에 빠져들 수 있다. 여름철에 인파에 가려 있던 아름다움이 이제야 한껏 빛을 발하는 듯하다. 바다와 직접 대면하는 경험, 겨울 바다를 찾는 이유다. 

'겨울 바다로 가자 메워진 가슴을 열어보자/ 스치는 바람 불면 너의 슬픔 같이하자/ 너에게 있던 모든 괴로움들은/ 파도에 던져버려 잊어버리고…'(유영석 '겨울바다'·1988년) 

노을길은 종점인 꽃지해변에서 황홀한 낙조를 맞았다. 변산 채석강, 강화 석모도와 함께 ‘서해안 3대 낙조’로 꼽히는 꽃지해변의 낙조는 노을 길을 걸어온 여행자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다. 꽃지는 해변을 따라 해당화가 많이 피어 ‘화지(花池)’로 불리던 곳이라고 한다. 꽃다리에 올라섰다. 방포항과 꽃지해변을 연결하는 다리로 2002년 안면도국제꽃박람회를 계기로 ‘꽃다리’라는 낭만적인 이름을 얻었다. 해질녘에는 해변의 낙조를 감상하려는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시시각각 다른 풍경으로 변하는 매력을 가진 꽃지해변 풍경 ⓒ 김종성

  

2012년에 CNN이 선정한 '한국에서 가봐야 할 아름다운 50곳' 중 2위를 차지한 꽃지해변, 이곳의 붉고 찬란한 노을은 이 길이 왜 노을길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할미 바위와 할아비 바위가 밀물 때는 바다 위의 섬이 되고 썰물 때는 육지와 연결되며 하루에도 몇 번씩 다양한 경관을 보여준다. 어느 새 붉디붉은 해는 할미 바위와 할아비 바위 사이의 수평선 너머로 삽시 간에 스러졌다. 그 광경을 내내 숨죽인 채 바라보던 사람들이 환호와 탄식을 일제히 쏟아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대화를 주고받고, 함께 온 가족들은 해변을 뛰어다니며 사진을 찍는다. 

섬사람들에게 꽃지해변은 쏠쏠한 ‘황금바다’이기도 하다. 물이 멀리 빠지는 사리 때 네댓시간 갯벌을 뒤지면 10만원, 20만원 버는 것은 일도 아니었단다. 요즘에도 관광객들과 섞여 바지락과 겨울 굴, 밤바다를 누비며 해리질(사리 때 물이 깊게 빠지면 해산물을 줍는 일)을 하는 주민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바위섬 사이로 마지막 햇살이 하늘을 발갛게 물들이더니 마침내 물 빠진 해변과 바위마저 빨갛게 물들이고, 붉은 해는 바다로 풍덩 빠져버렸다. 할미 바위와 할아비 바위로 불리는 바위섬은 해상왕 장보고의 부하 승언 장군이 전쟁터에 나간 후 돌아오지 않자 아내 미도가 일편단심 기다리다 죽어 망부석이 됐다는 전설이 전해온다는데 그럴만한 풍경을 품고 있었다. 두 바위섬과 어우러진 노을이 아름다워 사시사철 많은 사진작가들이 찾아올만 했다. 한 해의 끝을 물들이며 지는 노을을 바라보는 여정은 세밑에 가장 잘 어울리싶지다. 노을의 모습은 저무는 하루와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이 겹쳐 지난 생각에 잠시 빠지게 했다.

 


섬 주민들에게 쏠쏠한 황금바다가 되어주는 안면도의 해변  ⓒ 김종성
 
CNN 선정 '한국에서 가봐야 할 아름다운 50곳' 중 2위를 차지한 꽃지해변  ⓒ 김종성

김종성 작가
충청남도>태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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