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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한강과 함께 흘러온 31개의 다리

자전거 여행 중 만난 다양한 한강 다리들
등록날짜 [ 2016년04월15일 16시04분 ]

 

 

오랜 세월, 한강과 함께 흘러온 31개의 다리

 

 

 

태곳적부터 그 흐름을 멈추지 않았을 한강은 많은 인구가 밀집한 수도 서울에 물을 공급해주는 축복의 젖줄이다. 1900년 최초로 한강에 다리가 놓이기 전 까지 한강을 건너기 위한 수단은 오직 배뿐이었으나, 100년이 조금 더 지난 지금은 31개나 되는 다리들이 한강 위를 지나고 있다. 

지금 한강다리들은 기가 막히게도 옛날 한강 위로 사람이 다녔던 길목인 나루터 자리들에 건설됐다. 강남개발과 근대화 추진으로 서울의 모습이 완전히 새롭게 재편되고 그 과정에서 한강다리들이 만들어진 것 같지만, 그 이전에 이미 서울의 줄기로 이어져온 길의 연장선에 한강다리들이 자연스럽게 들어선 것이다. 노량진에는 한강대교가 놓였고, 마포나루에는 마포대교가, 양화진에는 영화대교가 들어섰다. 광나루에 들어선 것이 광진교이고 송파진에는 잠실대교, 한강진에는 한강대교, 동작나루에는 동작대교가 지어졌다.   


예전 황포돛배와 나룻배가 다니던 그 길 위로 지금은 다리가 놓였을 뿐, 서울에서 한강을 건너는 흐름은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정확하게 일치한다. 한강의 남과 북을 이어주는 지금 저 많은 한강다리는 땅 위건 물 위건 길이란 것이 얼마나 질기고 강하게 사람들을 이어주는지, 모양만 바뀔 뿐 그 역사는 얼마나 오래된 것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우리의 동맥이라고 할 수 있다. 
 

여의도 개발로 폭파됐던, 밤섬을 품은 서강대교 / 이하 ⓒ김종성

 

한강엔 서른 개가 넘는 많은 다리들이 강남북을 이어주고 있다.
 
한강의 여러 다리들 중 전설이 깃든 유서 깊은 돌다리가 있는데 바로 '살곶이 다리'다. 살곶이 다리는 태종이 만들기 시작해 1475년(성종 6년)에야 완성된 다리다. 옛날에는 이 다리를 건너 송파나루로 갔다고 한다. 송파나루에서 강원도와 충청북도로 가는 뱃길이 이어졌으니 강원도, 충청북도 그리고 멀리 경상도까지 한양을 왕래할 때 쓰이던 요긴한 다리였다. 

물의 저항을 덜 받으려 마름모꼴로 다듬어 둔 예쁜 돌기둥이 무려 84개나 되고 길이가 76미터가 넘고 너비도 6미터나 된다. 백성도 건널 수 있는 돌다리로서는 우리나라 최초라고 하니 그래서 더 정이가고 값지다. 이 다리를 만들 때 태종이 몸소 지휘했다. 한낱 다리 공사에 왕씩이나 나섰나, 그 까닭은 이 다리의 이름이 살곶이 다리로 불리게 된 이야기와 섞인다. 

왕자의 난 내환에 속이 상할 대로 상한 태조 이성계가 함흥에 은거하던 중, 아들 태종이 부왕을 달래기 위해 보낸 사자들을 모두 죽여 버리고 함흥차사라는 말만 만들었다. 그가 공양왕을 내쫓고 왕위를 찬탈했을 때 이에 격분한 유생들이 개성 두문동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아 두문불출이라는 말을 지었던 적이 있으니 그의 두 번째 창작 고사인 셈이다. 자꾸 죽여 버리니 찾아오는 사람이 뜸해져 심심했는지 결국 한양으로 들어온다. 아버지를 맞으러 나온 태종이 있던 곳이 지금의 살곶이 다리 자리다. 이성계는 분노를 가득 담아 화살 하나를 날렸지만 맞추지 못하고 땅에 떨어졌다. 화살이 떨어져 꽂힌 곳이라 해서 ‘살꽂이 벌’이라 불렀다. 태종은 그곳에 지금의 돌다리 하나를 만들어 아버지의 화살을 기념했다.

한강에 남아있는 조선시대의 오래된 돌다리 ‘살곶이 다리’
 
 
 
인공위성에서도 안보이는 안보교
잠수교

군사적인 목적에서 친인간적인 다리가 된 한강 잠수교도 빼놓을 수 없다. 한강을 자주 오가는 자전거족에게 가장 인기 있는 한강 다리는 단연 반포대교 밑 잠수교가 아닐까 싶다. 보행자를 위해 편안하고 넓은 인도가 있는 광진교도 있지만,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잠수교는 여타 한강 다리들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강을 건너는 다리는 서른 개가 넘을 정도로 많지만, 대부분 차량 위주의 교량으로 자전거나 도보로 건너는 데 불편함이 많다. 그런 점에서 잠수교는 차보다 사람을 대우하는 다리로 군계일학의 존재다. 이런 좋은 다리가 1976년 처음 지어질 땐 군사적인 목적으로 생겨났단다.

한강 다리들 가운데는 전쟁 상황을 감안한 군사전략적 입장에서 설계된 경우가 많았다. 한강의 경관을 해친다는 평가를 받던 다리들은 대부분 이런 경우인데, 폭격으로 피해를 입었을 때 가장 빨리 효과적으로 복구할 수 있는 구조를 선택한 결과다. 잠수교에도 군사적 목적도 감춰져 있다. 용산 미군부대와 남산-강남권을 연결하는 잠수교는 반포대교 덕에 항공 촬영을 해도 드러나지 않고, 폭격을 피할 수 있다. 

반포대교를 우리나라 최초의 복층 교량으로 만들어준 잠수교는 말 그대로 비가 많이 내리면 '잠수(潛水)'하도록 다른 한강 다리들보다 훨씬 낮게 설계되어 있다. 한강 수위가 6.5m를 넘어서면 잠수교는 잠기게 되기 때문에 한강 수위가 5.5m를 넘어서면 보행자 통행이 차단되고, 6.2m를 넘어서면 차량도 통제된다. 그래서 '잠수교가 잠겨 통제되었다'라는 뉴스가 나오면 시민들은 서울에 큰 비가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테면 잠수교가 서울의 '호우 경보' 역할을 하는 것이다.
 

1976년 군사적인 목적에서 생겨난 후 시민들에게 친근한 다리가 된 잠수교

 

잠수교 북단 강변에 자리한 ‘서빙고 북부 철도 건널목’
 
마치 시골에서 물이 불어나면 없어지는 징검다리가 연상되어 정감이 가는 다리다. 잠수교가 강물이 불어나면 잠기는 잠수교로 지어진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작용했다. 그 가운데 홍수를 방지하려 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높이를 낮게 함으로써 한강의 유속을 낮춰 홍수를 대비하는 역할을 하도록 한 것이다. 잠수교는 한강을 걸어서 혹은 자전거를 타고 산책하듯 오갈 수 있는 유일한 다리다. 한강이 시민의 사랑을 받으며 더 강다워지고, 강남북의 소통이 원활해지려면 이런 친인간적인 다리들이 앞으로 많이 생겨나야 하겠다. 


한강 야경의 정점을 찍는 무지개 분수도 좋지만, 잠수교 북단 언덕위에 서면 어디선가에서 "땡땡땡~" 향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련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그 소리를 따라 잠수교 위 반포대교를 향해 언덕길을 조금 오르면 정말 도심 속 향수어린 풍경이 나타난다. 낡은 철로 위로 빨간 테두리를 한 길고 둔중한 차단봉이 서있는 '서빙고 북부 건널목'이다. 직원 두 분이 근무하는 유인 철도 건널목으로 서울에 몇 개 안 남은 귀한 건널목이다. 서빙고 북부 건널목은 한강가 자전거도로 옆에 자리하고 있어 자전거 여행자에게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곳이다. 

 

 

한강에서 맨 먼저 생겨난 제1한강교

한강대교

 

한겨울 적요하기만한 강변풍경은 한강 철교를 달려가는 철마의 거친 숨소리로 활기를 띈다. 한강에 놓인 첫 다리인 제1한강교 한강대교와 한강철교에 다다랐다. 한강공원에서 다리 위로 쉽게 오를 수 있는 작은 엘리베이가 있어 좋은 한강대교는 용산구 이촌동에서 동작구 본동을 잇는 교량으로 한강에 놓여진 최초의 인도교(人道橋)다. 사실, 한강에 최초로 놓인 다리는 한강대교가 아닌 그 옆의 한강철교다. 안타깝게도 이 철교의 탄생은 시민들의 편의를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 강화도조약으로 개항된 인천과 서울을 한시라도 빨리 연결시키려 했던 제국주의 열강들의 조선 침탈 목적이 앞섰기 때문이다.

 

1900년 일제가 한강에 처음 놓은 한강철교.
  

1897년 대한제국 정부가 미국인 J모스(Morse)에게 경인선 철도의 부설권을 부여할 당시에는 한강철교에 '보행자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길 한쪽 또는 양쪽에 보도를 시설할 것'을 명시하고 있었다. 모스로부터 철도부설권을 가로챈 일본은 그러나 공사비를 절감한다는 이유로 보도 가설조건을 이행하지 않았다. 인력난으로 시일을 끌다가 1900년 7월에야 완공된 한강철교는 근대식 토목 공사로는 가장 규모가 컸다.

 

그 후 자동차가 수입되기 시작하고 강을 건너려는 수요가 증가하면서 조선총독부가 인도교 계획을 수립, 20여 년 가까이 지난 1916년 3월에 착공하여 이듬해인 1917년 10월에 다리를 준공하였다. 현재의 제1한강교인 한강대교의 전신으로, 드디어 배를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한강을 건너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한강대교는 서울에서 남쪽방면의 노량진으로 통하는 가장 중요한 관문위치라 할 수 있다. 한강철교를 만들고 남은 자재를 이용해 만든 터라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는데, 설상가상 악명 높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일부분이 유실되었다가 다시 확장 보수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한국전쟁 당시 많은 희생을 치루며 폭파된 한강철교와 인도교
 / 서울시 <한강의 어제와 오늘> 사진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3일 뒤인 1950년 6월 28일 새벽 2시30분, 북한의 남하를 막고자 한강철교와 함께 아무런 예고도 없이 폭파시키는 바람에 당시 다리를 건너던 수백 명의 피난민이 그 자리에서 폭사하는 비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로 인해 서울인구 80%와 2개 사단의 군 병력도 강을 건너지 못한 채 고립되는 쓰라린 역사를 남겼다.

 

1957년 1년여의 복구공사 끝이 다시 준공된 한강대교는 1984년 한강종합개발사업에 따라 제1한강교에서 한강대교로 개칭되었다. 한강대교는 수도서울의 관문이며 우리 민족과 희비애락을 함께 해온 역사의 증인으로, 2006년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제 250호)가 되었다.

 

이토록 애환 많은 한강대교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야간 조명을 밝히며 대표적인 나들이 명소로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그러나 동시에 자살 명소로도 악명이 높았다니 아이러니할 뿐이다. 당시에는 일촌대기(一寸待己)라 하여 '잠깐만 참으시오'라는 팻말을 세워 놓았다고 하는데, 오늘날 자살방지를 위해 '생명의 전화'까지 설치돼 있는 것을 보면 그 오명이 이어지는 듯해 씁쓸할 따름이다.

 

한강대교는 노들섬이라는 작은 섬을 품고 있다. 예전 이름은 중지도(中之島)였으나 1995년 일본식 지명 개선사업에 따라 노들섬으로 개칭되었다. 원래 노들섬은 섬이 아니었다. 용산 쪽에 붙어있는 넓은 모래밭 혹은 백사장이었으나 1917년 일제강점기 철제 인도교(現 한강대교)를 놓으면서 모래 언덕에 석축을 쌓아 올려 인공섬을 만들고 중지도라는 이름을 붙였다. 

 

노들섬을 품은 한강대교 / 서울시 누리집 사진 

한강대교로 쉽게 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와 다리 위 카페. / 이하 ⓒ김종성
 

60년대까지 하얀 백사장이 펼쳐진 아름다운 모래섬이었다니 상상이 안된다. 물이 적던 갈수기에는 섬 남쪽으로만 강물이 흐르고 북단 용산 강변까지는 하얗게 모래밭이 이어졌는데, 조선시대에는 그 규모가 여의도보다 컸다고 전해온다. 내 아버지가 술회한 기억에도 피서철 한강의 백사장은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로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여름에는 피서지와 낚시터로,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으로 시민들이 애용하는 장소였으나 1968년에 시작된 한강개발계획 중 강변북로 건설을 위해 세운 둑을 메우기 위한 자재로 모래가 쓰이면서 넓은 백사장이 사라지게 됐다. 섬이 한강에 완전히 둘러싸이게 되자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게 되었다. 현재는 시민들을 위한 임시 텃밭이 조성돼있으며, 최근 시민·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개발 구상 공모 결과 2018년엔 섬에 숲, 상업시설을 조성하고 음악 중심의 복합문화기지로 변모한단다. 섬을 옥죄는 거대한 콘크리트 둔치 등이 없어지고 사라진 하얀 모래가 되돌아오는 노들섬의 아름다운 부활을 꿈꿔본다.

 

시민들을 위한 텃밭이 있는 노들섬
 
노들섬의 지명은 용산 맞은편을 노들, 노돌이라 부른데서 유래한다. 노들의 사전적 의미는 '백로(鷺)가 노딜던 징검돌(梁)'이란 뜻으로 태종 14년(1414년) 노들에 나루(津)를 만들어 '노들나루'라는 이름이 퍼지게 되었으니 그것이 오늘날 노량진(鷺梁津)이다. 한강대교를 지나면 전철 노량진역과 국내 최대의 어시장 노량수산시장이 나온다.

 

다리 위 섬 중앙에 낙하산 장비를 둘러멘 군인 동상이 눈길을 끌었다. 안내문을 보니 1966년 공수 훈련 당시 동료의 고장 난 낙하산을 펴 주고 추락사한 이원등 상사의 동상이다. 한강대교 위 찻길 양편에 자리한 작은 쉼터인 노들카페에 들렀다. 한강공원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바로 이어져 있어 자전거 여행자에게 더없이 좋은 쉼터다. 다리 위 작은 공간에 마련한 카페와 쉼터지만 찾아온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곳이다. 한강 다리 위의 카페들 덕분에 삭막한 콘크리트 통행로에 지나지 않았던 한강 다리 건너기가 한결 좋아졌다.

 김종성작가

http://sunnyk21.blog.me 

 

서울특별시>영등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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