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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도시 목포의 5미(味) 홍어

전남 목포의 명물 홍어 이야기
등록날짜 [ 2016년05월31일 09시54분 ]
 
항구도시 목포의 5미(味) 홍어
 
 
 
홍어의 메카, 목포항 종합수산시장 / ⓒ김종성


영산강과 서해바다가 만나는 항구도시 목포에는 5미(味)가 있다. 홍어삼합, 민어회, 세 발낙지 탕탕이, 매생이, 갈치찜(혹은 꽃게장)이 있는데, 홍어가 맨 앞에 있는 건 발효되면서 나는 독특한 향취와 자극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다른 음식과 달리 홍어요리는 스무살 무렵 처음 먹어봤던 그때의 장면 장면이 정확히 떠오른다. 유경험자였던 동행자들의 짓궂은 미소, 오감을 동원해도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맛, 혀와 눈과 코가 뒤집히는 기분이 들었던 홍어의 첫 맛에 대한 기억은 잊혀지지 않고 내 몸속 어딘가에 쌓여갔다. 

삼학도가 눈 앞에 보이는 목포항(목포시 동명동)에 자리한 목포종합수산시장과 이어진 항동시장은 홍어 유통점과 식당들이 즐비하다. 최고급 흑산도 홍어에 이어 칠레산, 알래스카, 뉴질랜드산 등도 있어 시장 통에서 비교적 저렴하게 홍어를 먹을 수 있다. 
 
국가대표급인 흑산도 홍어는 껍질이 얇고 황해바다처럼 등과 배가 누런 황토색인 반면, 외국산은 등이 검고 배가 희다고 한다. 흑산도 홍어는 육질이 부드럽고 차진 것이 특징인데, 이는 수온의 영향이라고. 연평도 등 수온이 더 낮은 홍어는 뼈가 억세고 육질이 단단하단다. 흑산도 홍어는 경매가 기준 8kg 암컷 한 마리에 40만 원이 훌쩍 넘는 귀한 생선이라 요즘은 아예 바코드를 심는다. 

세계 5대 악취 음식(동시에 진미 음식으로 중국의 취두부, 일본의 쿠사야도 포함)에도 당당히 등극했던 홍어는 같은 가오리과의 생선들과 달리 잘 삭을수록 깊은 맛이 나는 오묘한 바닷 물고기다. '날씨가 추우면 홍어생각, 날씨가 따뜻하면 굴비생각'이라는 전라도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바닷물고기 홍어는 12월에서 3월까지가 제철이며, 대부분의 동물들이 그렇듯 암컷에 비해 수컷은 맛이 덜해 인기가 없다.

 

 


"홍어는 암컷이 비싸. 그랑께 '거시기(성기)'가 보이면 싹둑 잘라버리재. 암컷으로 팔라고.
우짜까이, 젤로 소중한 것인디." - 목포항 수산시장에서 만난 상인 
 
목포항 종합수산시장과 항동시장, 건어물 시장이 이어져 있다.

보기만해도 쫄깃한 식감이 느껴지는 홍어 살

홍어(洪魚)라는 이름은 몸이 크고 넓적해 '넓을 홍(洪)' 자가 붙었다 한다. 현존하는 지리지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경상도 지리지』에는 울산군의 토산공물로 실려 있고, 『세종실록』 지리지 토산조에는 ‘’ 또는 ‘’로 기재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이 홍어를 어획하여 이용한 역사가 깊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전북 군산을 비롯한 서해안 지역에서는 홍어를 '간재미'라고 부른다.  사실은 간재미의 진짜 이름이 '홍어'로, 우리가 알고 있는 홍어의 이름은 '참홍어'라고 한다. 간재미의 배는 희고 등은 갈색으로 많은 회백색 반점이 있어 참홍어와 쉽게 구분할 수 있다.
- KBS1 '한국인의 밥상'에서

홍어는 홍도와 이웃한 전라남도 신안군의 섬인 흑산도에서 나는 것을 제일로 치지만, 삭힌(발효한) 홍어는 목포나 나주가 더 유명하다.홍어는 조선시대 때 임금에게도 진상됐다고 한다. 흑산도 홍어는 진상되기 위해 영산강을 따라 목포, 나주 영산포까지 뱃길로 운송됐다. 그런데 날씨가 습하고 더운 여름에는 운반과정에서 홍어가 변질됐다. 뱃사람들은 처음엔 변질된 홍어를 버렸다가 잘 삭힌 홍어의 맛이 특별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명물 홍어가 탄생한 건 이렇게 홍어의 숙성 덕이다. 흑산도에서는 거의 삭히지 않은 신선한 회 상태가 인기있고, 목포는 그 중간이며, 나주는 푹 삭힌 것이 더 대접받는다. 내륙으로 갈수록 삭힌 정도가 더해지는 홍어는 목포에선 그 맛이 온순하다. 홍어요리에 덜 익숙한 나같은 사람들에게 적합한 곳이다. 영산강을 따라 북상하며 홍어가 스스로 숙성되었으므로 그 종착지인 나주에는 아주 푹 삭힌 것이 도달했으리라. 김치, 된장, 막걸리, 젓갈, 홍어까지….우리는  진정한 발효 민족이 아닐까 싶다. 


 
바코드까지 붙은 귀한 흑산도 홍어

 
 
 
삭힘의 미학 홍어회
 

냉장과 교통이 발달한 덕택에 요즘엔 이런 구별이 별로 의미가 없다. 항아리에 소나무를 넣고 볏짚 깔아 숙성한다는 말은 옛말이고 김치냉장고 같은 저온 냉장고로 숙성을 조절한단다. 목포에서도 남녀노소 사람마다 다른 기호에 따라 삭힘을 달리해 홍어 요리를 즐길 수 있다. 그 덕에 6개월 이상 천천히 숙성시킨 홍어, 나처럼 초심자를 위해 살짝 삭힌 홍어도 맛볼 수 있다. 

이렇게 홍어는 숙성도에 따라 각기 맛이 다르다. 겉절이처럼 신선한 놈도, 묵은지처럼 아주 푹 삭은 것도 제각각 별미를 내는 게 홍어의 매력이다. 숙성은 시간이 만들어낸 맛이고 모든 발효음식의 특징이다. 선어회라 하여 홍어가 아닌 일반 생선도 일정시간 숙성을 하면 맛이 좋아진다. 하지만 홍어만큼 독특한 풍미가 나진 않는다. 홍어는 어느 물고기보다 '삭힘의 미학'에 어울리는 깊이가 있는 물고기다.

김치, 된장, 젓갈, 치즈 등 발효 음식은 한번 맛을 들이면 도저히 끊지 못하게 하는 특성이 있다. 푹 삭힌 홍어에 한번 맛들이면 어떤 음식을 먹어도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서남해안·광주의 시민들이나 홍어 매니아들은 흔히 주장한다. 그래서인지 전남 서남해안 지방에선 잔치나 울력이 벌어지면 반드시 삭힌 홍어를 올렸고 홍어가 빠진 잔치는 아무리 잘 차렸어도 먹을 것이 없는 잔치라며 허전해 했단다.

 

 


숙성도에 따라 맛이 다르게 나는 홍어회 

홍어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는 시장통 안


홍어로 유명한 시장이라 여기저기서 오이 썰 듯 삭힌 홍어를 익숙하게 써는 아낙네들의 손놀림이 분주했다. 잘 삭힌 홍어라 그런지 냄새도 심하게 안 나고 보기만 해도 쫀득해 보였다. 한 아주머니가 먹어보라며 두어 점 주어 넙죽 먹었다. 삭힌 홍어의 톡 쏘는 감칠맛과 숙성한 고기의 쫄깃함이 잘 어우러져 있었다. 홍어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입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코를 찌르는 지독한 냄새와 톡 쏘는 자극에 기겁을 하지만, 그 맛에 한번 빠지고 보면 뇌리에 깊이 각인된 그 맛을 못 잊어 또 찾게된다. 

"입 천장 벗겨져도 그 뒷날 보면 나서부러. 참 희한하구만. 그래서 좋다는거여 그것이"

상인 아주머니는 코를 찡긋거리는 나를 보고 웃으시며 홍어 먹으면서 눈물 콧물 흘려봐야 어디 가서 홍어 제대로 먹었다고 말할 수 있단다. 그래서인지 싫어하는 사람은 입에도 대지 않으려고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중독되었다고 할 정도로 좋아하는 호불호가 강한 물고기이기도 하다. 홍어는 부위에 따라 맛이 다른데, 홍어 매니아들은 1:코, 2:날개, 3:꼬리 등으로 등급을 구분 짓는다. 홍어 코 한 점이면 홍어 한 마리를 다 먹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한다.

흔히 홍어는 돼지수육, 묵은 김치와 함께 삼합으로 먹는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세 가지가 어울려 절묘한 맛을 낸다. 여기에 곁들이는 탁주(막걸리)는 홍어의 소화에도 도움이 되고 홍어 특유의 독특한 자극적인 맛까지 중화시켜 준다. 성질이 찬 홍어와 막걸리의 따뜻한 성질은 서로의 기운을 상쇄시켜준다니, 음식에도 조화와 궁합을 중시하는 선인들의 지혜가 새삼 놀랍다. 

홍어, 돼지수육, 묵은 김치에 막걸리. 이질적이고 묘한 조합의 음식 홍탁삼합
 
 

 
남도 문화의 정수
'홍탁삼합'이 생겨난 재미진 사연

홍어 요리의 진수로 꼽히는 이것이 바로 홍탁삼합(洪濁三合)이다. 잘 삭힌 홍어와 비곗살이 붙은 삶은 돼지고기 수육을 적당히 익은 김치에 싼 다음 새콤한 초고추장 혹은 새우젓에 찍어 오물거리면 콧구멍이 뻥 뚫린다. 눈물이 찔끔 솟고 숨이 막힐 것 같다. 그래서 막사발에 넘치도록 따른 막걸리를 단숨에 쭈욱 들이키게 된다. 

 “참으로 이것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혀와 입과 코와 눈과 모든 오감을 일깨워 흔들어버리는 맛의 혁명이다.” 
"냄새나고 자극이 클수록 맛있는 역설의 미각." - 목포가 고향인 어느 작가 曰  


이런 맛의 표현이 절로 터져 나올만 하다. 바로 이 톡 쏘는 맛이 홍어요리의 매력인데 사람들은 이것을 남도의 맛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육지에서 나는 고기도 먹고 바다의 생선도 먹고 채소인 김치도 같이 먹는 방식이다. 언뜻봐도 이질적인 3가지 먹거리가 같이 묶여 있는데도 조화를 이루면서 묘한 맛을 낸다는 데에 삼합의 묘미가 있다. 탁(흐릴濁)자는 탁주 즉 막걸리를 뜻한다. 

나이 지긋한 시장 상인 아저씨가 걸죽한 남도 사투리로 홍어삼합에 관해 들려준 재미있는 사연 하나. 전라도의 잔치에선 홍어가 최고 인기 메뉴였지만 그 값이 비싼 것이 흠이었다. 그래서 잔치손님들은 귀한 홍어만 집어먹으면 염치없어 보일까봐 눈치 봐가며 돼지고기와 김치도 함께 집어먹기 시작했는데, 먹다 보니 이 셋의 궁합이 절묘해 어느새 ‘삼합’이란 메뉴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참기름에 찍어 먹기도 하는 고소한 맛의 홍어 애(간)

홍어 매니아들이 최고의 부위로 치는 홍어 코 


홍어는 연골어류인 만큼 뼈가 연해서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알짜 생선이다. 이른 봄 보리 싹과 함께 홍어 애(간)을 넣어 뭉근히 끓인 '홍어 앳국'은 코끝을 쏘는 매운 맛과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인 남도의 별미로 꼽힌다. (애는 보통 '애간장 녹인다'에서 보듯 동물의 내장을 일컫는 말이며, 홍어애는 통상 홍어간을 지칭한다) 이외에도 홍어는 회·구이·찜·포들로 먹는다. 근래 와서 흑산도 홍어가 사람들의 수요에 따르지 못하다보니 미국, 칠레나 아르헨티나산 홍어들이 시장통에 흔히 보인다. 

암컷에 비해 크기도 작고 살 맛이 덜한 수컷 홍어는 미식을 좇는 인간에게 찬밥 신세다.  뱃사람들은 거추장스러운 수놈 홍어의 생식기가 조업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잘못하면 생식기에 붙어 있는 가시에 손을 다치게 된다. 암컷보다 덩치가 작고, 맛도 적은 실속 없는 수컷이 잡히면  `아무 짝에도 못 쓸 것'이라 하며 배바닥에 냅다 패대기치거나, 숫제 수컷 생식기를 칼로 댕강 잘라 털벙 바다에 던져버리기 일쑤였다고 하니 안됐다.

옛날엔 홍어가 잘 삭지 않는 추운겨울이면 퇴비 썩히는 두엄자리에 홍어를 파묻어 두기도 했다고 한다. 메주를 띄우는 것이나 홍어를 삭힌다는 것은 모두다 일종의 발효(醱酵)로 사람 몸에 해가 되지 않는다. 홍어는 뜸 들이기 시작한 후 열흘쯤에 이산화탄소, 암모니아가 본격적으로 발생하고, 이 암모니아가스가 다른 세균 번식을 막기 때문에 홍어는 얼간을 해 오래 둬도 육살이 썩지 않는다. 옛부터 발효음식을 좋아한 한민족과 잘 맞는 바닷 물고기구나 싶다. 

김종성작가
전라남도>목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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