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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으로 떠난 자전거 여행

등록날짜 [ 2016년07월06일 10시42분 ]

 

전남 강진으로 떠난 자전거 여행

 

 

"지역적 편애라는 혐의를 피할 수만 있다면 강진은 '남도답사 1번지'가 아니라 '남한답사 1번지'라고 불렸을

답사의 진수처인 것이다." -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中

 



전남 장흥을 보듬으며 흐르던 탐진강이 만(灣)을 이루며 남해로 흐드러지게 흘러가는 고장 강진(康津 : 편안할 강, 나루 진). 유홍준 선생이 '남한답사 1번지'로 부르고 싶었다는 전남 강진은 흐르는 강진만(灣)을 따라 자전거 여행하기 좋다. 갈대숲이 반갑게 손 흔드는 바닷가. 질펀하고 기름진 갯벌과 평야가 고장의 이름대로 편안하고 평화롭게 이어진다.

강진은 홀로 여행자였던 내게 배부른 한정식 한상을 내줬던 인심 좋은 곳으로 기억된다. 보통 다른 지역에선 2인 이상이 되어야 먹을 수 있는 밥상이었던 터라 여행자에겐 더욱 고마웠다. 답사여행을 많이 하는 곳이지만, 이번엔 자전거를 타고 강진을 여행했다.

강진읍에서 강진만을 따라 요즘 명소가 된 작은 섬 가우도 출렁다리까지 자전거도로가 잘 깔려있다. 이번 여정은 가우도까지 갔다가 다시 강진읍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로 왕복 약 45km의 거리. 강진만은 남해안의 잔잔함과 한적한 분위기에 푸근함을 더한 곳이었다.


유배 온 다산을 떠올리게 하는

동문주막

 

유배 온 다산 정약용 선생이 처음 머문 '사의재'안 밥집 동문주막 ⓒ 김종성
 
 
전남 강진읍 버스터미널에 내리자마자 꼬르륵거리는 배를 달래며 가까운 강진군청 옆에 있는 '사의재(四宜齋, 전남 강진군 강진읍 동성리)'로 갔다. 강진읍엔 갖가지 맛집들이 수두룩하지만, 사의재 안에 있는 작은 밥집 '동문주막'은 여행자에게 잊기 힘든 곳으로 남는다. 사의재는 다산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를 온 후 처음 묵었던 주막집으로, 당시 이름은 '동문매반가(東門賣飯家)'였다.

주막집 주인 할머니가 내어준 골방 하나를 거처로 삼은 다산이 몸과 마음을 다잡아 학문에 헌신하기로 다짐하면서 붙인 이름 '사의재'. '네 가지를 마땅히 해야 할 방'이라는 뜻으로, 네 가지는 맑은 생각과 엄숙한 용모, 과묵한 말씨, 신중한 행동이다.
 
다산은 주막집 할머니와 그 외동딸의 보살핌을 받으며 1801년 겨울부터 1805년까지 이곳에 머물렀다. 모녀의 따스한 보살핌이 없었다면 다산이 강진에서 집필한 귀중한 책들은 아마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의재엔 강진군에서 운영하는 한옥 민박집도 딸려있다.

밥집을 혼자 운영하다보니 밥값(5천 원)을 저렴하게 할 수 있었다는 아주머니는 강진에서 25년 동안 식당을 했단다. 주모의 능숙하고도 고된 노동이 서려있는 고마운 밥 한 끼. 입에 착착 달라붙으면서도 왠지 마음 한 구석이 짠했다.
거지꼴로 유배왔을 정약용을 보살펴주었던 주모처럼 정다웠다. 자칫 음식 낭비를 부르기 쉬운 상다리 부러지게 나오는 한정식보단 이렇게 소수정예의 밥상이 더 좋다.

다산 선생이 즐겨 먹었다는 아욱국, 칼칼하면서도 부드러웠던 추어탕, 어떤 맛이 날까 궁금한 매생이전 등 단출하고 정갈하고 맛깔난 음식에 착한 가격까지….
 
너무 좋았다. 고려청자와 옹기의 고장답게 밥과 찬이 담긴 청자색 옹골진 그릇도 맘에 들어 구입처를 물어보기도 했다. 

아욱은 '국을 끓여 삼 년을 먹으면 (살이 쪄서) 외짝문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가을 아욱국은 (맛이 너무 좋아) 문을 걸어 잠그고 먹는다'는 속담이 있는 한해살이 풀로, 다산 선생은 건강을 위한 보양식으로 아욱국을 즐겨 먹었다고 한다. 실제로 아욱은 시금치보다 단백질이 두 배, 지방은 세배가 많으며 무기질과 칼슘함량도 높단다. 그런 인연 때문이었는지 아욱은 다산의 시구에도 나온다.
 
"집 앞 남새(나물)밭의 이슬 젖은 아욱을 아침에 꺾고, 동쪽 골짜기의 누런 기장을 밤에 찧는다"
 
 
 
 
푸근하고 풍성한 강진읍, 강진만
 

 
단출하고 정갈하며 맛깔난 동문주막 밥상(추어탕).ⓒ 김종성
 

강진읍에 모여있는 영랑 시인의 생가와 향토문학관. ⓒ 김종성
 
 
강진읍엔 닷새장(매 4일, 9일)이 열리는 큰 장터가 있는가 하면, 시장 옆에 '오감통(www.ogamtong.com)'이라는 먹거리 장터가 있다. 강진에서 먹을 수 있는 갖가지 '게미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다. 게미는 '음식에 녹아 있는 독특한 맛'을 뜻하는 전라도 사투리다. 산해진미가 올라오는 강진 한정식은 가짓수에서도 맛에서도 전라도 음식 중에 최고로 꼽힌다.

대표 한정식 외에 강진 토하 비빔밥, 매생이탕, 전복 비빔밥, 짱뚱어탕…. 평소 맛보기 힘든 귀한 음식들이 오감통 먹거리 장터에 한가득이다. 어느 식당엔 '대통령 밥상'이라는 메뉴도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을 메뉴로 구성한 것이란다. 오감통엔 녹음시설과 연습실, 숙식이 가능한 게스트하우스와 실내·야외 공연장을 갖춘 음악창작소도 있다. 주말에는 흥겨운 공연이 펼쳐지고, 가수들의 음반제작과 지역주민들의 음악 활동이 이어지는 곳이라고.

강진읍엔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를 와 처음 묵었던 '사의재' 외에도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시인 영랑 생가와 향토문학관 등이 모여 있어 둘러보기 좋다. 강진읍에서 태어난 영랑 김윤식(1903∼1950)은 대표적인 서정 시인으로 '모란이 피기까지는'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등 국어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작품을 남겼다. 일제강점기 내내 일본식 성명 강요와 신사참배, 삭발령을 거부하며 의롭게 산 민족 시인으로, 강진군에서 생가를 복원하고 기릴 만한 분이다.
 
 

푸근한 풍경이 펼쳐지는 강진만 해안가. ⓒ 김종성
 

강진만의 갈대숲 사이로 바다를 향하는 노젓는 어부 ⓒ김종성
 
 
강진읍을 조금만 벗어나면 질펀한 바다가 펼쳐지는 강진만이 여행자를 반긴다. 해안가 도로 옆으로 자전거 길이 나 있어 강진만 풍경을 실컷 음미하며 안전하게 달렸다. 바닷가에 자리한 어장, 갯벌에서 열심히 수렵 중인 목청 좋은 거위, 언제 봐도 느긋한 왜가리, 몸에 진귀한 무늬가 그려진 오리들. 친근한 바다 풍경이 내내 펼쳐졌다.
 
잔잔한 바닷바람에 맞춰 춤을 추는 갈대숲 사이로 정박한 작은 어선들이 마치 숨바꼭질하듯 숨어 있었다.
 
마침 한 어부 아저씨가 배를 타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모터가 아닌 노를 저으며 휘적휘적 강진만 바다로 나아가고 있었다. 말이 어선이지 나룻배 같은 작은 배를 보니 어릴 적 기억에 남는 몇 안 되는 소설 『노인과 바다』가 떠올랐다. 말없이 노 젓는 어부의 모습은 페달을 발로 저으며 길 위를 달려야 하는 자전거 여행자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했다.
 
아저씨가 탄 배가 갈대숲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치 출근하는 아버지를 배웅 나온 자식처럼…. 혼자서 노를 젓고 그 물을 치고 물고기를 잡아야 하는 어부의 뒷모습은 흡사 고독을 운명으로 여기고 홀로 글을 써야 하는 소설가 같았다. 강진만 갈대숲은 쓸쓸하면서도 포근했다. 올가을부터 강진만 갈대숲 생태축제가 열린다니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벌써 기대된다.
 
 

평소엔 보기 드문 다양한 철새들을 만날 수 있는 강진만. ⓒ 김종성
 

들과 어울려 경건함을 더한 백련사의 울창한 동백나무숲 ⓒ김종성 
 
 
해안가 목 좋은 곳에 강진만을 찾아온 철새들을 관찰할 수 있는 탐조대가 있다. 커다란 망원경 덕분에 갯벌 위에 귀여운 발자국을 남기며 돌아다니는 오리들, 갯벌 속에 머리를 처박고 먹거리 사냥 중인 거위 등을 바로 눈앞인 양 볼 수 있어 좋았다. 갯벌에 주민들이 나가지 않는 때라 그런지 새들 몸집이 통통하고 목소리도 씩씩했다. 해안가를 지나가던 차들이 이곳에 멈춰 서서 쉬어갈 만했다.
 
해안가를 달리다 보면 천년고찰 '백련사(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이정표가 보인다. 절 입구까지 포장도로가 나 있어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면(1.5km) 절이 품은 울창한 동백나무 숲을 감상할 수 있다. 천연기념물이자 우리나라 3대 동백림으로, 한낮에도 짙은 그늘이 지는 울창한 숲을 보러 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무숲 속에 서 있는 작은 석탑을 부도(浮屠, 승려의 사리를 모셔놓은 일종의 무덤)라고 하는데, 석탑들과 동백림이 어울린 풍경은 당장 불자가 되고 싶을 정도로 기가 막히다.
 
천연기념물 나무숲과 오래되고 귀한 문화유산이 있음에도 입장료를 받지 않는 점도 강진의 넉넉한 인심을 닮았다. 백련사는 만 가지 덕을 품었다는 만덕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 산엔 예로부터 차밭이 많아 다산(茶山)이라는 별칭이 있단다. 바로 강진으로 유배 온 정약용 선생의 호다. 마당에서 보이는 고즈넉한 가람 풍경과 흐드러진 갯벌이 펼쳐진 강진만의 전경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강진만의 보물이 된
가우도


 
강진만 출렁다리를 건너면 나타나는 작은 섬 가우도 ⓒ 김종성
 

가우도 해안가 한 바퀴를 따라 난 아름다운 산책길.ⓒ 김종성
 
 
백련사를 나와 (나올 땐 완만한 내리막길이라 5분도 안 걸려 강진만에 닿았다) 다시 강진만 해안도로를 달렸다. 반갑게 마주친 동네 주민 아저씨 라이더와 함께 자전거 도로를 달려갔다. 내가 사는 동네의 한강 자전거도로는 일행이 있어도 옆으로 나란히 달리지 못하고 일렬로 달려야 하는데, 한갓진 강진만에선 나란히 달리며 얘기 나눌 수 있어 좋다. 상쾌한 바람을 일으키는 자전거 덕분에 대화가 더욱 즐거웠다.

아저씨도 가우도 출렁다리를 향해 간단다. 협곡처럼 길게 이어진 강진만 한가운데에 떠 있는 조그마한 섬 가우도(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신기리), 강진만이 품은 유일한 유인도다. 섬 이름이 독특해 한 번 들으면 기억에 남는 가우도(駕牛島)는 섬의 모양이 소의 멍에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해안선이 2.5km인 이 작은 섬엔 14가구 3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아저씬 차가 다니는 연륙교가 아닌 출렁거리는 인간미 있는 다리가 생겨 관광객은 물론 강진 주민들도 좋다고 하신다. 관광객뿐 아니라 지역주민들도 즐겨 찾는 곳이 좋은 관광지다.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던 가우도를 걸어서 들어갈 수 있게 되자, 매년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흔히 육지와 섬을 잇는 다리는 차량들이 다니는 큰 연륙교를 짓는데, 가우도 출렁다리는 차량이 아닌 보행자 전용의 인도교다. 실제로 건너보니 작은 섬에 잘 어울리는 다리구나 싶었다.  

도암면쪽 망호 출렁다리(716m)와 섬 건너편의 대구면 쪽 저두 출렁다리(438m)로 이어진 무척 긴 다리로 강진만 바다 위를 한참동안이나 지나가게 된다. 다리에 오르막 내리막이 있어 멀리서 보면 정말 출렁일 것 같지만 직접 다리를 건너보면 전혀 출렁거리지 않으니 안심해도 된다. 굳이 출렁다리라 이름 지은 건, 바다 위를 걷는 이채로운 기분에 마음이 출렁거려서인 듯싶었다.

공중 하강체험 놀이시설인 '짚 라인(또는 짚 와이어)'이 설치될 정도로 높다랗게 솟은 다리 중앙 꼭대기에 서면 강진만 하구의 바다같이 너른 풍경과 시원한 바닷바람이 기분을 더없이 상쾌하게 해준다. 손에 들어올 정도로 작아진 배들과 강진만이 어울린 풍경은 해가 저물수록 아름답고 운치가 배어나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봄이 오면 개불축제가 열릴 정도로 명물이 된 강진만 개불 ⓒ 김종성
 

사료가 아닌 진짜 생선을 먹고 있는 섬 마을 고양이. ⓒ 김종성
 

커다란 돌 표지석이 반기는 작은 섬 가우도는 육지와 이어진 출렁다리와 함께 해안 산책길이 놓여 있어 섬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한쪽은 바다, 다른 한쪽은 숲이 우거진 가우도 해안길은 빨리 지나가면 갈수록 손해다. 아예 자전거 안장에서 내려와 최대한 천천히 걸었다. 섬 둘레는 2.4km로 여유롭게 한 바퀴 산책하는 데 부담이 없다.

섬 선착장 앞엔 천혜의 낚시터 '가우도 복합낚시공원'이 있다. 감성돔 등 다양한 물고기들이 잡혀 낚시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단다. 가우도엔 어구 보관창고였던 마을 공동창고를 리모델링 해 만든 마을식당이 있다. 섬 주민들의 소득원으로 협동조합으로 운영한다. 싱싱한 수산물로 차린 '가우도 섬 밥상'과, 간식거리인 '황가오리 빵'을 개발, 올 하반기에 판매할 예정이란다.

선착장 주변에 있는 횟집 아저씨가 수족관에서 꺼내 보여준 '개불'은 누구나 한번 보면 잊기 힘들다. 강진만 개펄 속에 사는 개불은 길쭉한 호박처럼 큼직한 게 참 거시기하게 생겼다. 중국에서는 바다의 창자, 하이장(海腸)이라고 부른단다. 심해에 사는 희귀 물고기처럼 해안 갯벌 깊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개불. 지렁이처럼 진흙 속을 깨끗이 청소하는 착한 녀석이지만, 어쩌다 먹성 좋은 인간에게 포착되면서 사람들의 별미가 되고 말았다. 강진에서 봄을 알리는 것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산에서는 동백, 밭에서는 보리, 바다에서는 개불이다.  

출렁다리를 통해 가우도 너머 육지로 건너가면 칠량면의 강진청자박물관과, 토요일마다 장터(마량 놀토수산시장)가 펼쳐지는 강진의 '땅끝' 마량면 마량포구가 이어진다. 강진 자전거 여행의 두 번째 코스로 좋은 곳이지 싶다. 마량포구엔 방파제에서 열리는 토요 음악회 외에도 먹거리가 다양하고 풍성한 강진답게 다양한 먹거리가 있다니 더욱 기대 된다. 듣기만 해도 침이 고이는 몇 가지 음식을 들면 광어와 야채, 얼린 육수로 만든 '강진 된장물회', 라면과 전복, 매생이가 어우러진 '삼합라면', 쇠고기와 낙지 비빔밥을 김국과 곁들인 '소낙비' 등이다.


김종성 작가 

sunnyk21.blog.me

전라남도>강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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