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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강화나들길을 아시나요?

인천 강화도 호국돈대길
등록날짜 [ 2016년07월19일 17시16분 ]

 

 

인천 강화나들길을 아시나요? 

 

 

인천 강화군 강화도는 제주 올레길 못지 않게 좋은 강화나들길이 20곳이나 있는 보물 같은 섬이다. 한반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큰 섬으로, 저마다 강화나들길이 나있는 교동도, 석모도, 주문도 등 아우섬을 품고 있다. 육지와 다리가 이어져있어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섬 아닌 섬이다. 

모니터에 강화도 지도를 쫙 펼쳐놓고 어디를 먼저 가볼까 살펴보던 중 제일 먼저 눈에 띈 곳이 해안가에 이어진 강화나들길(2코스)이었다. 처음엔 그저 애마 자전거를 타고 가기에 적당해서 골랐는데, 자세히 보니 무척이나 호기심을 끄는 길이었다.

 

'돈대'라는 이름의 옛 해안 초소들이 해안가에 줄지어 서 있다. 갑곶돈대, 화도돈대, 용두돈대, 손돌목돈대….

돈대마다 이름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다. 이 나들길의 별칭은 그래서 '호국돈대길'이다. 길을 따라 안타까운 사연들이 흩뿌려져 있을 것만 같은 길이다.

 

바닷가·갯벌, 농로, 둑길을 왼쪽에 끼고 돈대와 강화외성의 흔적을 따라 간다. 갑곶돈대 ~ 광성보 ~ 초지진 까지 17km의 해안길로 강화버스터미널이 가까운 갑곶돈대로 다시 돌아와야 하니 약 34km의 거리다. 갈 때는 돈대마다 들리며 여유롭게 나들길을 지나다 올 때는 해안도로 옆에 난 자전거길을 달려 돌아오면 된다.

 

 


21세기에도 유효한 해안요새 '돈대'


 

▲  강화풍물시장에서 먹을 수 있는 특별한 밴댕이 요리

 

애마 자전거를 실은 버스를 타고 강화버스터미널에 내렸다. 버스터미널에서 호국돈대길의 들머리 갑곶돈대가 10여 분 거리로 가깝다. 호국돈대길 코스가 좋은 건 강화버스터미널 옆에 강화풍물시장이 있어서다.

 

5일마다(매 2일, 7일) 닷새장도 열리는 상설시장으로 주말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강화도의 명소다. 풋풋한 옛 장터의 모습이 남아있는데다 강화도만의 먹거리가 많다.

풍물시장의 식당가인 2층 장옥에 들어갔다. 많은 메뉴 가운데 밴댕이 회덮밥을 골랐다. 본래 메뉴는 밴댕이 회무침이었는데, 금속말(자전거) 탄 여행자에겐 밥이 연료다. 주말이라 섬 주민, 관광객들로 북적북적한 풍물시장.

 

옆자리 일행들과 함께 앉아있던 아저씨도 자전거 애호가였나보다. 친근한 눈빛으로 강화도 어디를 가느냐며 드시던 인삼 막걸리를 연신 권하신다. 강화도에 사신다며 동생섬 석모도, 교동도의 자전거 여행 정보도 알려 주셨다. 아저씬 자전거 여행가가 틀림없었다. 길에서 만난 여느 어르신들처럼 왜 혼자 다니는지 궁금해(혹은 걱정해) 하지 않는 걸 보면. '알콜허약체질'이라 아쉽게도 인삼 막걸리는 조금만 마셨지만, 처음 만난 반백의 60대 아저씨와 주거니 받거니 얘기를 나눌 수 있다니 다 자전거 덕이다.

 

 

▲  강화도에 20코스나 있는 강화나들길

  

▲  생경한 해안 풍경이 펼쳐지는 강화도 동쪽의 바다 강화해협

 

 

강화도 해안으로 가는 길. 맨손으로 자전거 핸들바를 잡고 달리는 기분은 푹신한 해변을 맨발로 걷는 것만큼 기분이 좋다. 미세먼지의 잦은 공습으로 여행하기 힘든 요즘, 자전거 여행자는 더욱 부지런히 페달을 밟아야한다.  

강화도를 육지와 잇는 강화대교 밑으로 들어서면 해안도로와 함께 호국돈대길이 나온다. 건너편에 김포땅이 훤히 보이는 강화도 동쪽 바다, 강화해협은 내가 알던 바다가 아니었다. 동해, 남해, 심지어 같은 서해바다와도 다른 생경한 바닷길이 이어졌다. 파도와 모래밭 없는 회색빛 해변, 바다를 가린 칙칙하고 높다란 철책, 초병 없는 쓸쓸한 초소.

북한과 인접한 변경의 풍경이 고스란했다. 분단은 한반도에 사는 국민들의 심성뿐 아니라 풍경도 파괴하는구나 싶었다. 몽골의 침략에 대비 강화외성을 쌓은 고려 때 연유한 호국돈대길은 21세기 현재에도 유효한 길이었다. 실제로 강화도 북쪽 북한 방면의 돈대는 참호로 쓰이고 있다.

여느 바다와 달린 파도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해안, 두어 척 어선이 떠있는 손바닥만한 포구에 따개비처럼 붙어있는 횟집들도 왠지 쓸쓸해 보였다. 그럼에도 해안 풍경이 색다르게 다가오는 건 바닷가 1.3km마다 돌로 만든 작은 성곽 돈대가 있어서였다. 바닷가 모래사장 대신 자리한 늪 같은 갯벌과 갈대숲 사이로 들려오는 바람소리는 귓가를 간질였다. 자전거 여행이 아니었음 느끼지 못했을 잔잔한 바람이었다.

 

 


아름다운 풍경 품은 돈대의 아픈 역사


 

▲  역사박물관, 바다가 보이는 아름다운 산책로가 있는 갑곶돈대


▲  신미양요(1871, 고종8) 당시 승전한 미군이 기록으로 남긴 사진 - 강화 전쟁박물관내 촬영

 

 

* 돈대(墩臺) : 바다를 통한 외적의 침입을 감시하기 위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만든 해안요새. 주변보다 높은 곳의 작은 초소나 성첩을 이르는 것으로 서해바다가 시야에 훤하게 들어오는 전망 좋은 위치에 있다. 지금도 북한 방면의 강화 북쪽 돈대는 참호로 쓰이고 있다.


강화역사관과 강화전쟁박물관이 있는 갑곶돈대(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갑곳리)는 해안을 바라보며 산책하기 좋은 공원이 되어 여행자를 맞이한다. 바닷물 반 갯벌 반의 질펀한 강화도 앞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군사적 요충지였던 갑곶돈대는 그런 이유로 조망 좋고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 관광지가 됐다.

 

이곳엔 보기 드문 탱자나무가 산다. 무려 400살이나 먹은 천연기념물 나무답게 하늘을 향해 성긴 가지를 펼친 모습이 신묘하게 보였다.

조선시대 벌어졌던 병자호란(1636년, 인조 14) 때 청나라 함대가 들이친 곳이 강화도 갑곶이었다. 고려시대 몽골과 달리 청나라는 항복한 명나라 수군 장수들을 활용하여 '강화 상륙작전'을 감행해 강화도를 침략한다. 이때 당시 강화도 방어 책임자는 김경징. 능양군(후일 인조)과 함께 인조반정을 일으켜 1등공신이 된 김류의 아들이자 반정에 참여해 2등 공신이 된 자였다. 이 사람을 자(놈 者)라고 한 건, 위기이자 중요한 때 잔치나 벌이고 술이나 퍼마시면서 아무런 방어 대책도 수립하지 않아서다. 역사가들은 그 용맹한 몽골병도 강화도 바다를 넘어오지 못했던 과거 역사를 떠올리며 방심했을 거라고 추측한다. 예나 지금이나 낙하산 인사는 자칫 큰 재앙을 부른다. 

 

 



▲  멋진 조망대, 아름다운 산책로가 된 강화도의 '돈대'
 



 

강화역사관에서 받은 지도를 보니 강화도와 김포시 사이를 흐르는 20km의 길쭉한 해안을 '염하'라고 써놓았다. 한자로 염하(鹽河)니 소금강이다. 강화해협 또는 김포강화해협이라고도 한다. 소금기가 많아 염하라 하니 천일염 만드는 염전이 있겠구나 했지만 해안가에 염전은 없고 갈대숲만 무성했다. 아마 고려 때부터 조선, 구한말까지 아니 현재까지도 군사 요충지 여서지 싶다.

 

북한 신의주까지 오가던 뱃길이었던 강화해협은 예로부터 우리나라 해상교통의 요지로, 조선시대엔 지방에서 서해를 북상해 온 세곡선(稅穀船, 세금으로 걷은 곡식을 운반하던 배)이 강화해협을 통해 한강으로 진입하여 한양으로 들어갔다.

건너편 김포 땅이 훤히 보일 정도로 폭이 넓지 않은 해협이지만 이곳의 조류는 만만치가 않다. 강화해협 물살 중에서 가장 빠르다는 손돌목(손돌목돈대가 있다)엔 큰 바위가 물살에 쓸려 다닐 정도란다. 이렇게 변화무쌍하고 드센 물살이 있어 고려가 강화도를 임시수도로 삼고 40년간이나 버텼던 대몽항쟁이 가능했던 거다. 

 

 

▲  여러 돈대와 나무 숲, 산책하기 좋은 오솔길이 있는 큰 진지 광성보

  

▲  돈대를 통해 보이는 강화의 바다는 무언가 다르다

  

 

강화도의 5진7보53돈대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광성보(인천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에 이르렀다. 입구에 커다란 성문과 높은 누각이 서 있고 풍광 좋은 돈대들과 울창한 나무 숲, 호젓한 오솔길이 있는 큰 진지다. 강화해협을 향해 툭 불거져 나온 광성보는 광성돈대 외에 해협을 발 아래로 내려다보는 높다란 돈대(용두돈대), 물살이 가장 빠르게 흐르는 곳에 돈대(손돌목돈대)를 갖춘 천혜의 요새다. 그 말은 곧 주변 풍광이 무척 아름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용두돈대는 손돌목돈대와 함께 53개의 강화도 돈대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 명소다. 강화해협에 용머리 모양으로 돌출된 암반위에 세운 멋들어진 돈대다. 용두돈대에서 바라다 보이는 강화도 앞 바다는 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했다. 이 바다가 한때 프랑스·미국·일본의 군함이 연이어 침략했던 치열한 전장이었다는 사실이 잘 믿기지 않았다.

 

 


다양한 매력 선보이는 돈대


용두돈대 가는 언덕 숲길 가에 웬 무덤들이 들어서 있고 그 너머로 비석(순절비와 쌍충비(雙忠碑))이 세워져 있었다. 미 군함 5척에 1200명의 해병대들을 태우고 이곳을 침략했던 신미양요(1871년, 고종8) 때 맞서 싸우다 전사한 장졸들을 묻은 무덤과 비석이다. 미군은 강화해협을 북상하며 초지진부터 덕진진, 광성보까지 초토화시켰다.

광성보에서 최후의 전투가 벌어졌고, 미군의 월등히 앞선 화력과 무기에 조선군은 사령관격인 어재연을 비롯해서 350명(미군 사망자는 3명)이 모두 전사하고 말았다. 제국주의 침략자들이 기록이랍시고 찍어놓은 신미양요 당시의 처참한 사진들이 후손의 마음을 더없이 아프게 했다.

얼마 전, 미국으로 건너가 한국전쟁 때 참전하다 사망한 미군 묘지와 참전용사들에게 감사의 큰 절을 해 빈축을 샀던 여당대표 국회의원이 떠올랐다. 누구보다 호국돈대길 여행이 필요한 사람이지 싶다. 차기 대통령 후보 1순위인 그에게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년 미국과 일본이 필리핀과 대한제국에 대한 서로의 지배를 인정한 협약)도 알려주고 싶다. 우리는 과거를 잊고 살지만, 과거는 우리를 잊지 않는다. 우리를 잊지 않고 기다리는 과거의 유산 '돈대'가 그것을 증언하고 있다. 

 

 

▲  침입한 미군과 싸우다 전사한 장졸들을 기리는 광성보의 충절비


▲ 
 수호신처럼 노거수 소나무가 지키고 서 있는 초지진 돈대

 

해안 산책로, 콘크리트 제방길을 달리다 푹신푹신한 논길을 만났다. 젊었을 땐 배를 탔던 어민이었다는 할아버지 한 분이 가을에 향긋한 파가 될 까만 씨앗을 텃밭에 뿌리고 있었다. 강화나들길이 밭 옆에 나있어 불편하진 않느냐고 여쭤봤더니, 이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오히려 나 같은 여행자가 오면 반갑단다.

 

길에 대한 명언에 한 줄 추가해야겠다. '좋은 길은 좁을수록 좋고, 한적하면 더 좋다.'

호국돈대길에서 만난 10개 돈대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다양한 형태다. 돈대가 자리한 지형에 맞춰 네모형, 둥근형, 타원형, ㄷ자형 등 여러 가지 생김새다. 돈대에 들를 적마다 이 돈대는 어떤 모양일까, 어떤 풍경을 보여줄까 궁금하고 흥미롭다. 가파른 절벽 위에 자리한 돈대는 우뚝한 성채 같고, 바닷가 언덕 나무들 사이에 들어선 돈대는 숲속의 안락한 요새처럼 보이고, 냉이꽃·민들레가 피어나는 편편한 평지에 있는 돈대는 포근한 마당 같았다.


 

 과거 돈대를 지키던 옛 대포들


마치 수호신처럼 위풍당당한 소나무들을 곁에 둔 돈대도 있었다. 1679년 조선 숙종 때 쌓은 초지진의 초지돈대(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다. 일본 군함 운요호와 벌인 포격사건의 현장이기도 하다. 일본은 이 사건을 빌미로 조선에 전함2척과 수송선, 군사를 보내 협상을 강요했다. 조선 조정에서는 하는 수 없이 협상에 응했고, 불평등한 '강화수호조약(1876년)'이 체결된다.

불과 22년 전인 1854년 미국의 무력에 문호를 개방한 후 서양을 따라 군사력을 키운 일본. 미국과 같은 방법인 대포와 함대를 동원하는 포함외교(砲艦外交)로 조선을 굴복시킨 것이다. 세상은 이미 저만큼 앞서 가고 있는데 과거에 머물러 기득권에 연연하며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소홀했던 조선은 결국 식민지가 되어 국권을 빼앗기고 만다.

초지돈대엔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 당시 전투현장을 목격했을 노거수 소나무와 성벽에 아직도 포탄의 흔적이 남아있다. 세월이 흘러 나들길, 공원이 생기고 강화도를 대표하는 관광지가 되었지만, 호국돈대길은 지날수록 숙연해지는 길이다. '나들이 가듯 걷는 길'인 여느 강화나들길과 무언가 달랐다. 강화 돈대는 이제 세계문화유산이 되려는 중이다.

김종성작가  

sunnyk21.blog.me 

인천광역시>강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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